brunch

매거진 우울의 해부학 ㅡ 번역

라이킷 10 댓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곡도 Nov 28. 2023

우울의 해부학 (32)

로버트 버턴

정의 by 라파엘

( 역자 - 라틴어는 명조체로 진하게 표시합니다. )

유토피아적인 평등이란 일종의 정부 체제로써, 독단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공화정을 위해 존재하는 정부입니다. 캄파넬라①의 태양의 도시 크리스티아노폴리타나와 새로운 아틸란티스②는 재치 있는 픽션이긴 하지만 단순히 망상에 불과합니다. 또한 플라톤의 공동체는 많은 면에서 불경하고,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울 뿐만 아니라 모든 화려함과 장엄함을 앗아가지요. 나는 귀족 계급에 관한 몇 가지 규칙들을 세울 것이며, 그러한 세습이 이루어질 때 어린 형제들을 배척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연금에 의해 충분히 생활할 수 있고, 또는 정직한 직업인으로 성장하여 스스로 자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모든 남작의 지위에게 토지를 할당할 것입니다. 토지를 사는 사람은 남작의 지위도 사는 것이며 방종으로 그 세습 재산과 옛 영토를 잃는 사람은 자신의 명예도 잃을 것입니다. 어떤 지위는 세습될 것이고, 어떤 것은 다시 선출될 것이며, 혹은 우리의 주교구, 성직자, 터키의 바사 궁전, 베니스의 행정관의 사옥과 사무실처럼 증여되기도 할 것입니다. (자유 공무원의 지위, 연금, 연금 보험은 제외하구요) 그것은 마치 가장 훌륭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황금 사과 같은 것입니다. 전쟁 때나 평화 때나 그들의 가치와 훌륭한 봉사에 대한 보상으로 그들은 그런 것들을 받아 마땅합니다. 모두를 위해 추구해야 할 목표가 너무 많은데다가 (기술을 장려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죠) 다른 이들을 고무하기 위해서지요. 나는 가혹하고, 부자연스럽고, 거친, 독일, 프랑스, 베네치아의 법령을 싫어합니다. 그것은 평민들을 명예로부터 제외하는 일이며, 결국 그들은 결코 현명하지도, 부유하지도, 고결하지도, 용감하지도, 자격을 갖추지도 못할 것입니다. 평민들은 결코 귀족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자신의 계급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소위 자연과 전쟁을 하는 격으로 하느님과 사람 모두에게 혐오스러운 일입니다. 나의 정부의 형태는 군주제가 될 것입니다.

자유는 고결한 군주가 보장하는 것보다 더 달콤하지 않습니다.

법은 적지만 엄중하게 지켜질 것이며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모국어로 명백하게 명시될 것입니다. 모든 도시에는 고유의 사업이나 특권이 있어서 이것을 중점적으로 유지해야만 합니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적어도 세 가지 중에 하나는 가르쳐야 하고, 부양해야 하며, 그들 자신의 상업의 비법을 전수해야 합니다. 각각의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위험이나 공격을 당하지 않도록 여러 상인들이 적절히 배치되어야 합니다. 대장장이, 양조업자, 제빵사, 금속 세공인처럼 불을 다루는 기술자들은 따로 거주해야 합니다. 염색업자, 무두질업자, 모피업자 같은 기술자들은 물을 쓰기 편리한 장소에 자리 잡도록 합니다. 도살장의 푸주한, 잡화상, 제혁공처럼 역하고 과하게 나쁜 냄새를 풍기는 일을 하는 기술자들은 멀리 떨어진 장소와 뒷골목에 터를 잡습니다. 상인 거래소, 약제사 대학, 의사, 음악가 등등처럼 승인을 받은 협동 단체와 회사들도 자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거래는 상품 판매를 통해 평가될 것입니다. 우리 시장의 직원들이 제빵사나 양조자에게 하듯이 말이죠. 옥수수가 아무리 부족할지라도 가격을 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운송되고 반입되는 물품 중에 널리 필요한 것이 있다면, 예를 들어 옥수수, 목재, 석탄 등등처럼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것이라면, 누구도 원하지 않는 그런 규제를 적용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거기에 관세를 거의 혹은 전혀 부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금이 없는 것이죠. 그러나 와인, 향신료, 담배, 비단, 벨벳, 금으로 만든 옷감, 레이스, 보석 등등처럼 유흥, 즐거움, 장식품을 위한 것들에는 더 큰 부과금을 물릴 것입니다. 나는 매년 새로운 발견을 위해 몇 척씩 배를 파견할 것이고, 몇몇 사려 깊은 사람들을 임명해서 육로를 통해 이웃나라로 보낼 것입니다. 공동 선에 도움이 되도록 전쟁과 평화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다른 나라의 기술적인 발명과 훌륭한 법, 관습, 변화, 그 밖의 어떤 것이든 알아오도록 말이죠. 교회에 관한 규율은 주교에게 맡기겠지만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종속적입니다. 교회의 수입을 속인에게 넘기지 않으며, 교회 운영에 대해 후원자나 사사로운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회 전체 사람들과 조합 등과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또한 성직의 총장들은 마치 중국의 지식 계급처럼 대학교에서 선출될 것이며 심사와 승인을 받을 것입니다. 천명이 넘는 감사관을 둔 교구는 없습니다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성직자,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변호사, 절제하고 겸손한 의사,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정치가,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는 철학자, 정직하게 사는 귀족, 거짓말과 속임수를 쓰지 않는 상인, 부패하지 않은 행정관 등등을 갖추겠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가능한 한 해내야만 합니다. 그리고 변호사, 판사, 대변인, 내과 의사, 외과 의사 등등도 마련해야지요. 특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능한 재판관에게 자신의 사정을 전달하기 위해 변호인을 통해서 자신의 송사를 탄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페스③, 반탐④, 알레포⑤, 라구사⑥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소송을 탄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변호인들, 외과 의사들, 내과 의사들은 공동 재정에 의해 유지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그들이 수수료를 받을 경우 자신의 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다만 소송이 완전히 끝나고 난 뒤에야 그들은 아주 적은 액수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소송을 건다면 서약을 해야 합니다. 만약 그가 무모하거나 악의적으로 상대방을 고소한 것이 입증된다면 그의 재산은 몰수되고 소송에서 패하게 될 것입니다. 그 밖에도 어떤 소송을 진행하기 전에 원고는 자신의 불만 사항을 지정된 대표자에게 탄원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했는데도 그가 여전히 전처럼 고통에 시달린다면 소송은 계속 진행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거기서 종료될 것입니다. 만약 일부 상황이 달리 요구되지 않는다면, 모든 소송은 익명으로 처리될 것이며, 당사자들의 이름 역시 가려질 것입니다. 판사와 그 밖의 공무원들은 소송에 대해 판단하는 공공의 중개인으로서 각 지방, 마을, 도시마다 적절하게 배치될 것이며, 모든 논란을 종결할 것입니다. 혼자서 최종 판결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 소송 당 판사석에 최소한 3명이 임해야 하며, 그것이 계속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교대를 하거나 제비를 뽑아 교체되어야 합니다. 1년 이상 지속되는 논란은 없어야 하며 모든 지연이나 추가 항소를 신속하게 해결함으로써 정해진 시간 안에 최종 결론이 나와야 합니다. 이들과 모든 하급 판사들은 중국의 지식인들처럼 선발되거나 베네치아 사람들의 엄밀한 선거를 통해 임명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학식과 태도가 대리 심사관의 엄격한 승인을 통해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않는다면, 그들은 판사, 명예, 직책을 맡을 자격이나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먼저 학자들이 나타나면, 그다음으로 군인들이 등장하지요. 나는 베게티우스⑦의 의견에 동조합니다. 철학자가 군인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걸요. 한 시대 있어서 어떤 일이 힘에 의해 이루어지더라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기록이야말로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군인의 일은 한 시대에만 지속되고, 학자의 일은 영원하지요. 만약 그들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그들은 면직되어야 하며 그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무원들이 연간 직책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그들은 1년에 한 번 소환되어 질의를 받고 보고를 해야 합니다. 사람은 편파적이고, 감정적이고, 무자비하고, 탐욕스럽고, 타락하고, 애정에 약하고, 증오심이 많고, 두려워하고, 편애하는 등등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든 군주는 더 큰 군주에게 복종해야만 합니다. 솔론⑧의 아레오파고스⑨나 로마 감찰관⑩처럼, 그들은 다른 사람을 감시하면서 자기 자신도 감시받을 것입니다. 권위의 깃발 아래서 공무원이 마치 수많은 들짐승처럼 압제하고, 위세를 부리고, 가혹하게 굴고, 진을 빼고, 짓밟고, 편파적으로 굴면서 아랫사람을 모욕하려고 기웃거리지 않도록 감시할 것입니다. 우리가 친구와 형제로서 살아간다면 정의는 평등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세셀리우스⑪가 자신의 프랑스 왕국에서 너무도 소망했던 것입니다. "국왕, 군주, 귀족, 평민들은 화합과 달콤한 조화 속에서 서로에게 결합되어 있으며 법이나 권위만큼이나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반목하거나, 모욕하거나, 다른 사람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직분에 합당하다면 그는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1) Campanella - 16-17세기 경 이탈리아 도미니크회 수도사. 옥중에서 '태양의 도시'를 썼다. '태양의 도시'는 생산수단의 사유화가 폐지된 후 노동이 모든 시민의 권리가 되는 이상사회를 그리고 있다.

2) New Atlantis - 영국의 정치가이며 철학자인 베이컨의 유토피아 소설로서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해 인간 사회의 번영과 복지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3) Fez - 아프리카 모로코의 도시.

4) Bantam - 자바 섬 북서부의 마을. 옛 반탐 왕국의 수도로서 유럽과의 향료 무역 기지였다고 함.

5) Aleppo - 시리아의 도시로 예로부터 동서교통의 요지가 되어 무역이 번성하였다.

6) Ragusa -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도시.

7) Vigetius - 4세기 경 후기 로마 제국의 작가. 그는 전쟁과 군사 조직에 대해 쓴 자신의 책의 도입부에서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밝히고 있다.

8) Solon - 기원전 7-6세기 경 그리스에서 활동했던 철학자로 '그리스 7현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정치가이자 시인이었으며 아테네 민주 정치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듣는다.

9) Areopagites - 고대 아테네에서 귀족정치 초기에 존재한 평의회로서 차후에는 대법원의 역할로 그 기능이 제한되었다. 신 아레스의 언덕 '아레오 파고스'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자신의 딸을 강간한 사촌 형제 호티우스를 살해하자 신들이 이곳에 모여 재판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