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마녀들
공연장소 : 선돌극장
공연기간 : 2024년 11월 28일 ~ 2024년 12월 8일
관람시간 : 2024년 11월 30일 오후 3시
셰익스피어의 희곡 전체를 통틀어 어쩌면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 바로 '멕베스'에 나오는 세명의 마녀들일 것이다. 이들은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령도 아니고, 마치 안개와 같고, 꿈속의 꿈속 같은, 운명의 신비, 욕망의 그림자, 죽음의 심연, 신이자 악마, 멕베스 이야기가 쓰여지기도 전에 '멕베스'를 끝까지 읽고 나서 그 이야기를 자신이 읽은 대로 완성하기 위해 다시 이야기 속에 개입한 알 수 없는 주체, 그리고 셰익스피어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그들은 연극이 무대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시공간을 무대로, 등장인물들을 배우로 만들어 버리는 절대적인 관객이기도 하다. 사실 이 마녀의 가장 신비로운 점은 그들이 세 명이라는 것이다. 이야기 진행 상 한 명이어도 충분했을 마녀는 왜 세 명이어야만 했던 걸까? 너, 나, 그리고 그/그녀. 우리들. 누가 누구라도 상관없는 세 명의 마녀는 이 세상을 수없이 많은 마녀들로 가득 채운다. 연극 '멕베스'가 끝났을 때 관객석에서 박수를 치는 것은 관객들이 아니라 이 수많은 세 명의 마녀들이다.
나는 이 연극이 이러한 마녀의 신성을 더 깊이 파고들 거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연극의 방향은 전혀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다. 신성의 세속화. 마녀들은 실은 마녀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었으며 이야기에서 소외된 약자들을 대변하고 있었다. 멕베스가 죽인 적군들, 멕베스로 인해 죽은 아군들, 전쟁에 휘말린 민간인들, 이름은 고사하고 언급조차 되지 못한 무지렁이들 말이다. 자발적으로 마녀로 위장하여 멕베스를 함정에 빠뜨릴 재능이나 용기도 없이, 그저 어쩌다 보니 얼떨결에 거짓말을 하게 된, 그리하여 모든 신비와 매력이 사라져 버린 이 평범한 여자들은 멕베스에게 호소한다. "모든 건 다 네가 선택한 거야. 그러니 자신이 피해자인 척 굴지 마." 뭐,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 무슨 재미가 있는가? 비극의 세속화.
이 연극은 너무 많은 주제를 너무 얕게 건드리면서 너무 뒤섞어버렸기 때문에 다소 난삽한 느낌을 준다. 스릴러, 취조물, 법정 드라마, 사이코 드라마, 심리극, 극중극 등등이 교차되는데, 사실 연극적인 재미가 없지 않다. 특히 '멕베스'의 장면을 맥베스 스스로, 혹은 '마녀들'과 함께, 혹은 '마녀들'끼리 재현하면서 다양한 관점과 흥미를 유발하여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자꾸만 김이 빠지고 시시해지는 것은 그러한 연극적인 재미를 문학적인 재미가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연극의 방향은 혼잡하기만 하다. 대체 정확하게 무얼 말하고 있는 걸까? 일단 권력자와 약자가 있다. 이건 알겠다. 권력자의 편에 선 셰익스피어와 달리 이 연극은 셰익스피어와 멕베스에게 소외당한 약자 편에 서고자 한다. 이것도 알겠다. 그런데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멕베스의 삶에 개입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멕베스'를 만들어낸 이 약자들에게도 멕베스의 운명과, 멕베스가 만들어낸 역사와, 멕베스가 희생시킨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인가, 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무시받는 약자들의 증오가 깊어지면 니 인생도 망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권력자-가해자에 대한 권고이자 경고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운명이나 신비는 없으며 그저 인과응보와 욕망과 의지의 필연적인 결과라는 세속적 교훈인가? 아니면 이름 없이 박해당하는 약자들이야 말로 바로 역사의 원동력이며 운명 그 자체라는 거시적이고 웅장한 비전인가? 무엇보다 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핵심이자 동력인, '마녀들'이 멕베스를 살려낸 이유가 이토록 흐리멍덩해서야 되겠는가? (사실 그 이유를 지금도 잘 모르겠다.) 게다가 마지막에 모든 등장인물들이 자살하는 건 왜 어째서 도대체 무슨 연유인가? 멕베스와 '마녀들'의 첫 번째 만남에서는 '마녀들'이 얼떨결에 했던 거짓 예언이었다가(사실 이것도 너무 어설프긴 하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는 멕베스가 미약에 취해 진짜 신비한 예언을 받게 되었다는 (이 부분만큼은 도저히 그럴듯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듯이) 부분에서는 솔직히 실소가 나오다 못해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이렇게 되면 그냥 아무 말 대잔치가 아닌가.
이 연극은 자처하는 무게와 비장함에 비해서 너무 얼렁뚱땅하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중심이 되는, 그리고 되어야만 하는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이상할 정도로 등장인물 각각의 인격과 개성이 없다는 것이 (심지어 멕베스조차)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인상적인 장면도 있었고, 연기자분들의 기운도 좋았으나, 결국 이 연극이 '멕베스'에서 보태거나 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멀찍이서 주변을 빙 겉돌았을 뿐. 이 연극에서 마녀들은 고유의 신비함을 빼앗겼으되 인간조차 되지 못한 채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듯 하다. 누군가가 제대로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면서 말이다.
"이 존재들은 대체 무엇인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듯 하구나. 그대들은 살아있나? 혹은 인간이 질문할 수 있는 무엇인가?"
만약 이들이 '약자'라면 '마녀'보다 더 신성한 대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