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해부학 (1)

로버트 버턴

by 곡도



다운로드.png [울고 있는 거미] - 오딜롱 르동 (1881)




데모크리토스⟦1⟧ 주니어가 자신의 책에게

운율을 갖춘 의역 번역⟦2⟧



책이여, 세상의 빛 속으로 나아가라.
세상의 요란한 눈이 너를 행복하게 해 준다면 다행이겠다.
이 넓은 세상 위를 여행하며 길을 가라.
그리고 너의 주인의 재능을 본받도록 힘써라.

세 분의 미의 여신⟦3⟧과 아홉 분의 뮤즈⟦4⟧께 인사를 올려라.
그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너의 학문을 익히려 할 것이다.
시골과 도시를 두루 방문하여, 위대한 왕좌에까지 나아가라.
그리고 그 앞에서 정중한 예의로 겸손히 머리 숙여라.

고귀하고 기품 있는 귀족이나, 솔직하고 용감한 군인들이
너와 교분을 맺고자 한다면, 그들의 첫 인사를 기꺼이 맞아라.
너의 유쾌한 기질이 그들을 근심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있고,
웃음을 자아내거나, 어쩌면 지혜를 베풀 수도 있을 것이다.

괴팍한 카토⟦5⟧, 엄격한 원로원 의원이
혹시 네 책을 들여다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닌 듯이 보이도록 하라 — 떨며 공경하라.

사나운 독수리나 나비는 결코 그런 것을 들여다보지 않을 것이다.⟦6⟧

그들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에게서는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차라리 너와 같은 한가한 독자들을 찾아라.

장난기 많은 부인이 살피며 손짓하거든 그 신호를 놓치지 말고,
허영과 재물로 번지르르한 백작부인이 부르거든 또한 따라라.
그들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읽어 나갈 것이다.
기이하다느니, 어리석다느니, 거칠다느니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미있어 할 것이다.

고운 아가씨들이 너를 배우려 찾아온다면,
네가 지닌 가장 좋은 것들을 펼쳐 보여라. 그들에게는 결코 인색하지 마.

이렇게 말해라. “아름다운 분이여, 주인께서는 당신을 생명처럼 사랑하십니다.

그가 이 자리에 있어서 당신의 고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이미 알려졌든 그렇지 않든, 어떤 학생이 논리와 학문의 다툼에서 벗어나 내 책을 살펴보려 한다면,

비평가 앞에서 자비를 구해라. 그리고 네 책을 거두어라.

비록 몇몇 잘못이 눈에 띄더라도, 그것들이 용서되기를 바래라.

겸손한 저자가 감히 간청하나니,
비록 마땅치 않더라도 너그럽게 관용을 베푸십시오.

우울한 사람이나 생각에 잠긴 연인,
궁정인이나 안락한 시민, 혹은 번듯하게 차린 겉치레 기사라 하더라도
우리의 꽃을 꺾어 간다면 그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이며,
가르침에서는 분별을, 우리의 익살에서는 웃음을 얻게 될 것이다.

학식 있는 의사가 근엄한 표정으로
네 책장을 펼치려 한다면, 조심하라. 예의를 지키고 지혜롭게 처신하라.
네 책에는 많은 현명한 가르침이 담겨 있을 것이니,
지식으로 가득 찬 그의 머리도 하찮은 것을 얻지는 않을 것이다.

교활한 변호사가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려 들면,

비열한 무리들아, 물러가라! 소란스러운 족속들아, 물러가라!

혹시라도 (흰 까마귀 같은) 정직한 자가 있다면,
그는 우리가 한 말 덕분에 더 나아지고 더 현명해져서 돌아갈 것이다.

온화하고 너그러운 어떤 원숙한 학자가

솔직함과 주의, 그리고 분별을 갖추고 너를 읽는다면,

그는 네 허물을 너그러이 잊어 줄 것이다.

그는 네 장점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가벼운 수다쟁이, 말만 번드르르하고 속은 빈 자가
다듬어진 문장과 운율을 찾으려고 너를 뒤질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은 싱거운 시에서나 찾으라고 해라.
내 문장은 육두구⟦7⟧를 가는 강판처럼 거칠다.

엉성한 시인이 너를 읽고 싶어 하거든
거절하지 말고, 네 익살과 이야기들을 주워 가게 하라.

나는 그와 같은 형제요, 보잘것없이 흉내 내는 부류에 속한다.
파르나소스⟦8⟧의 영광은 아폴론⟦9⟧이 소수에게만 허락한다.

시무룩한 이마를 찌푸린 비평가,
모모스⟦10⟧나 트로일루스⟦11⟧, 혹은 스코틀랜드의 평론가가 으름장을 놓거든,
털을 곤두세우고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대고 위협하라.

이렇게 하면 성질 고약한 적들은 한층 줄어들 것이다.
입이 거칠고 생각 없는 비난꾼들이 너를 깎아내리거든,
대꾸하지 말고 물러나 그들에게 등을 보여라.
그들은 찡그림 하나 받을 가치도 없다.
좋은 취향도 예의도 그들은 결코 배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떠들게 내버려 두어라.
거친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두려워하듯 귀를 닫고 돌아서라.

엄하지만 우정 어린 검열관이 너를 꾸짖는다면,
그런 이에게는 설명을 하고 등을 돌리지 말라.

아마도 그는 네 글이 지나치게 거침없고,
네 속된 말이 학식 있는 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럼 대답하라. 훌륭하신 선생님, 글 전체의 맥락을 봐주십시오.

생각은 생각을 다듬습니다. 그러니 부디 다시 판단해 주십시오.

게다가 비록 제 주인의 펜이 마땅히 벗어나지 말아야 할
우회하는 길에서 헤맬지라도,
그의 삶은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하여 비방의 입김이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니 용서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것은 그저 그의 방식일 뿐입니다.

어떤 거친 불한당이 소란을 피우거든—
몽둥이를 휘두르며 그를 흠씬 두들겨 주겠다고 위협하라.
그 더러운 버섯 같은 자를 멀리 내던져 버려라.

그런 해로운 자들과 어울리는 일은 결코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분노를 가라앉히고 신중히 절제해라,
형편이 허락한다면 언제나 예의를 지켜야 한다—
좋은 맥아⟦12⟧는 언제나 은은한 불에서 만들어진다.

벗들에게는 따뜻하게 대하고, 모두에게 예의 있게 인사해라.

때로는 꾸짖음이 사람을 바로잡는다.

가벼운 서리는 지나치게 무성한 작물을 정리한다.

그러니 솔직한 비난이라면 나는 화내지 않는다.

능숙한 정원사는 제멋대로 뻗은 가지를 잘라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라, 나의 책이여, 내 말을 마음에 새겨라.
그러면 그것이 너를 안전하게 이끌 것이며, 또한 즐거움도 줄 것이다.







1) Democritus - 기원전 5세기 말에서 4세기 초에 활동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원자론을 기반으로 한 우주론을 체계화시켰으며 유물론적 철학을 지향했다. 그는 세계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입자, 곧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고, 이 원자들이 텅 빈 공간 속에서 운동하며 결합과 분리를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사유에서 자연은 신의 의도나 목적이 아니라 필연과 우연의 결과로 움직인다. 감각은 원자들의 배열이 우리에게 남기는 인상일 뿐이며, 단맛·쓴맛 같은 성질은 관습적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원자와 공허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웃는 철학자’라는 별칭으로 전해지는데, 인간사와 운명의 어리석음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태도 때문이었다. 윤리에서도 쾌락을 단순한 방종이 아니라 영혼의 평정, 균형 잡힌 기쁨으로 이해했다. 후대의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가 그의 사상을 이어받아 서양 유물론의 한 줄기를 만들었다. 거의 동시대 사람이었던 플라톤의 관념론과 대립했다. (작가는 자신을 데모크리토스의 후계자로 자처하고 있다.)



2) 이 시 앞에는 라틴어 원본으로 된 시가 실려있고 이것은 영어 번역본이다.



3) 그리스 신화에서 세 미의 여신은 아름다움과 우아함, 기쁨을 상징하는 세 자매로, 일반적으로 아글라이아, 에우프로시네, 탈리아로 불린다. 그중 ‘아글라이아’가 찬란하게 드러나는 아름다움의 빛을, ‘에우프로시네’가 웃음과 환희의 정서를, ‘탈리아’가 풍요와 번영의 넘침을 맡아 인간과 신 사이를 흐르는 기쁨과 호의의 질서를 이룬다.이들은 제우스와 에우리노메의 딸로 전해지며, 올림포스 신들의 연회와 춤, 예술과 사랑의 장면에 자주 등장한다. 로마에서는 그라티아에(Gratiae)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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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홉 명의 뮤즈는 ‘칼리오페’가 서사시와 웅변을, ‘클레이오’가 기억과 역사를, ‘에우테르페’가 음악과 서정시를, ‘탈레이아’가 희극을, ‘멜포메네’가 비극을, ‘테르프시코레’가 무용과 합창을, ‘에라토’가 사랑의 노래를, ‘폴리힘니아’가 성가와 침묵의 사유를, ‘우라니아’가 별과 우주의 질서를 관장하여 인간의 예술과 지식이 형식과 방향을 갖추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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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ato – 카토는 기원전 95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46년에 사망한 로마 공화정 말기의 원로원 의원으로, 스토아 철학을 삶의 규범으로 삼아 사치와 유희, 정치적 타협을 철저히 거부했고, 법과 전통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카이사르의 권력 집중과 현실주의 정치에 끝까지 반대했으며, 공화정이 회복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순간 우티카에서 자결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도덕적 입장을 생애 전체로 확정한 인물이다.



6) 독수리와 나비는 “두 극단의 독자 유형”을 상징한다. 하나는 과도하게 공격적인 비평가, 다른 하나는 피상적인 독자다.



7) 육두구는 향신료로 육두구나무의 씨를 말려 간 것이다. 따뜻하고 달콤하면서도 약간 자극적이고 톡 쏘는 향이 난다. 서양에서는 빵·디저트·소스·음료에 쓰이고, 소량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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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Parnassus – 파르나소스는 고대 그리스 중부 포키스 지방에 위치한 산으로, 신화에서 아폴론과 뮤즈들의 거처로 여겨지며 시와 음악, 예술의 상징이 된 장소다. 고전 문학에서 “파르나소스의 영광”은 실제 지리적 산을 가리키기보다 시적 재능과 문학적 명성을 뜻하는 비유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아폴론이 소수의 시인에게만 허락하는 영감과 명예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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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Apollo – 아폴론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신으로,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이며 아르테미스의 쌍둥이 형제로 전해진다. 그는 태양과 빛, 예언, 음악, 시, 치유를 관장하는 신이며, 특히 뮤즈들의 인도자로서 예술과 시적 영감의 수호자로 여겨졌다. 델포이의 신탁은 그의 이름과 결부되어 있으며, 고전 문학에서 아폴론은 시인에게 영감을 부여하는 존재로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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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omus - 그리스 신화에서 비판과 조롱, 흠잡기의 신. 제우스의 자식으로 전해지지만 어떤 신화에서도 존중받지 못하며, 오히려 신들 사이의 불편한 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는 무엇이든 완벽을 인정하지 못하고 반드시 결점을 찾아내는 성격으로 묘사된다. 신들이 인간과 동물을 창조했을 때 모무스는 모두에게 트집을 잡았다. 인간은 가슴에 마음의 창문이 없어 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고 비난했고, 소는 눈이 뿔 끝에 달려 있어야 더 안전하다고 말했으며 아프로디테에게는 신발이 시끄럽다고 흠을 잡다가 결국 신들로부터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고대 희극과 풍자 문학에서 자주 불려 나와 권위와 신성까지도 의심하게 만드는 목소리의 상징이 되었다. 모무스는 파괴자가 아니라 완전함이라는 가면을 찢는 불쾌한 이성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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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Troilus – 트로일루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로 전해지는 인물로, 트로이 전쟁과 관련된 비극적 운명의 젊은 영웅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에서는 크리세이다와의 사랑 이야기로 더욱 유명해졌으며, 특히 초서의 [트로일루스와 크리세이드]와 셰익스피어의 [트로일루스와 크레시다]에서 중요한 인물로 다루어진다. 문학 전통에서 그는 순수한 사랑과 배신, 그리고 비극적 몰락을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는 투덜대고 깎아내리는 인물 유형으로 인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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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맥아는 보리에 물을 부어 싹이 트게 한 다음에 말린 것이다. 녹말을 당분으로 바꾸는 효소를 함유하고 있으며, 식혜나 엿, 맥주나 위스키의 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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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우울증의 해부/우울의 해부/The Anatomy of Melancholy/Robert Burton/로버트 버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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