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운베난트

by 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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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 운베난트

공연장소 : 예스24스테이지 3관

공연기간 : 2026년 3월 27일 ~ 2026년 6월 7일

관람시간 : 2026년 3월 29일 오후 2시




연극을 보는 내내 설마설마했다. 너무 조마조마해서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였다. 사전에 알지 못했던 동성애 코드 때문이 아니라 동성애에 대한 단편적이고 유아적인 접근 때문이었다. 소녀감성 야오이도 아니고 미취학 아동용 야오이를 만들면서 무슨 셰익스피어 먹물을 그리도 뿌려댄단 말이냐. 고상한 유치함이야 말로 가장 유치찬란하기 마련이다. 엘리자베스 시대니 바다의 사람들이니 이런 되도 않는 얘기만 찍어 바르지 않았어도 나는 좀 더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텍스트 자체가 되도 않는다는 게 아니라 역사적 감성과 인간적 욕망을 엮으려던 시도가 되도 않게 엉성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의 소설 원작이 설마 이토록 개연성 없고 유치하지는 않았을 거라 믿는다. 아니, 사실 유치하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 유치하다는 건 어쨌거나 도전 정신을 내포하고 있으니까. 스스로 뭘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는 희곡을 스스로 뭘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는 연출가가 연극으로 만들면 이렇게 되는 걸까.

이 연극의 가장 큰 패착은 Y교수의 아내를 지워버린 것이다. 남편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숭고한 반려자이자, 욕정과 질투와 애증으로 뒤틀린 육체적 여성이자, 엄중하고 냉혹한 사회적 가치의 수호자이며 독재자이자, 남편과 어린 남학생의 사랑을 지켜봐야 하는 관객인 이 여자를 인격도 역할도 없이 그냥 대사에서나 간간히 언급되는 있으나 마나 한 그림자 병풍으로 만들어 놓았다. 심지어 이 이야기에서 가장 감정적 밀도가 높으며 절정이자 파국인 Y교수 아내와 롤란트의 정사를 노 프라브럼으로 훅 넘겨버리는 그 조악한 천진함.

이 연극은 단연코 2인극이 아닌 3인극으로 갔어야 한다. 만약 Y교수와 Y교수의 아내, 그리고 론란트의 삼각관계가 제대로 조명되었다면 이성애와 동성애, 사랑과 동경, 욕망과 육체, 사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 그리고 셰익스피어와 엘리자베스 여왕까지, 소위 성숙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풍부하고 진지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사람, 가장 문제적 인간, '햄릿'에서 햄릿을 지워버리고서 늙은 교수와 어린 학생이 소꿉장난처럼 썸만 타다가 흐지부지 끝나버리는 연극을 만들다니,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90분 연극이면 그리 긴 것도 아닌데 정말 너무너무 지루했다. 동성애를 다루면서 논점도 쟁점도 문제의식도, 진지함도, 진정성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심지어 로맨틱하지도 않았다. 감상글을 쓰기 위해 애써 펌프질 해 보아도 분노조차 일지 않는 이것은 세상 천진하고 무해한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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