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오펀스 (Orphans)
공연장소 : 대학로 TOM(티오엠) 1관
공연기간 : 2026년 3월 10일 ~ 2026년 5월 31일
관람시간 : 2026년 3월 15일 오후 2시
'불란서 금고'에 이어, 차라리 영화로 만들었다면 더 나았을 연극이 여기 또 하나 있다. 연극 공연에게 차라리 영화로 만들었다면 더 나았을 거라고 말하는 건 확연하게도 ('차라리'라는 부사로 확인사살을 했다시피) 모욕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이 있지만 나는 받은 만큼 되돌려주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다. 왕복 5-6시간의 소모와, 녹녹지 않은 티켓 가격, 거기다 장장 160분의 공연 시간, 그것도 내 면전에다 대 놓고서. 영화 관객은 관망자다. 그러나 연극 관객은 당사자다. 그런데도 나에게 분노할 자격이 없는가. '불란서 금고'와 '오펀스' 둘 중에 뭘 볼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불란서 금고'를 보시라.
희곡, 연출, 배우들의 연기,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이 연극은 분명 신파다. 맥락 없이 유치 찬란하다. 그러나 나는 그 점을 트집 잡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제대로 신파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도대체 얼렁뚱땅도 이런 얼렁뚱땅이 없다. 책상 앞에서 대본 연습만 하다가 곧바로 공연을 올렸단 말인가? 희곡, 연출에 대해서는 뭐라 말하고 싶지도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그래도 배우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가는 것이 연극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배우들마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하다. 나는 보통 감히 배우들의 연기를 지적하지 않지만 이번만은 모른 척할 수가 없다. 감정은 있지만 감정선은 없다. 캐릭터는 있지만 인물은 없다. 대사는 있지만 행간은 없다. 배우들 각자 따로따로 연기하고, 오직 그 순간에만 연기한다. 도대체 희곡에도, 연출에도, 인물들에게도 내면이 없다. 내면이 없는 이야기에, 내면이 없는 무대에, 내면이 없는 인물들에... 나는 대체 어디에 마음을 붙여야 한단 말인가.
이런, 글이 너무 짧게 나와서 더 쓰고 싶은데 더 욕할 건덕지조차 없네.
나는 마치 부모 없는 고아처럼 공연 내내 홀로 겉돌아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 제목만큼은 정확했다고 하겠다. 그런데 연극이 끝나고 보니 나는 정말 홀로 겉돌고 있었다. 관객 전체 기립 박수가 나왔으니 말이다. 눈물을 흘리며 박수 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돌아봐야만 했다. 이제 보니 '불란서 금고' 감상을 쓰면서 인용했던 유시민 씨의 말을 여기다 써먹을 걸 그랬다. 원본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