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술 취한 사람들
공연장소 : 대학로 씨어터쿰
공연기간 : 2026년 3월 11일 ~ 2026년 3월 22일
관람시간 : 2026년 3월 14일 오후 3시
올림포스 산 위에서는 신들이 넥타르를 마시며 연회를 즐기고 있다. 제우스와 그의 부인 헤라와 그의 연인이었던 데메테르, 레토가 함께, 아프로디테와 그녀의 남편 헤파이스토스와 그녀의 연인이었던 아레스가 함께, 경쟁관계였던 아테네와 포세이돈이 함께, 최고의 아름다움을 두고 다투었던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함께. 서로를 경멸하는 아테네와 아레스가 함께, 데메테르와 그녀의 딸을 납치했던 하데스가 함께... 이 모든 다사다난한 사연들과 이야기들을 뒤에 묻어두고서 그들은 함께 술을 마신다. 왜 신들은 영원히 사는가. 그들이 영원히 취해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취해있는 한 연회는 끝나지 않는다.
연극이 시작되고 마르크가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끝없이 외칠 때 나는 이미 이 연극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이제껏 누군가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해 크게 외쳐주기를, 계속해서 외쳐주기를, 우리가 그 말을 믿을 때까지 외쳐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당신은 알고 있나? 우리는 살아 있는 한 죽지 않아. 우리는 살아 있는 한 죽지 않아. 우리는 살아 있는 한 죽지 않아. 몰랐지. 그럼 반대로 우리는 죽지 않는 한 살아있느냐고? 아니, 그건 아니야. 그게 또 그렇진 않아. 그게 문제야. 그래서 우리는 술을 마시나 봐.
우리의 태어남과 죽음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우리가 반드시 태어나야 하고 또 반드시 죽어야 한다면, 우리의 운명이 그토록 뻔하고 틀림없고 가혹하다면, 우리는 왜 당장 죽어버리지 않을까? 우리의 모든 사연들과 이야기들이, 고통과 고뇌와 노력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무슨 의미가 있고, 네가 무슨 의미가 있고, 내가 살아서 무엇하고, 네가 살아서 무엇 하나? 내가 너를 죽여버리거나, 네가 나를 죽여버리거나, 자살해 버리면 뭐 어때? 우리는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잖아. 그것도 너무나 잘하고 있잖아. 너를 죽이고, 너에게 죽고, 자살하고, 또 죽이고, 또 죽고, 또 자살하고. 하지만 살아있는 자들은 술을 마신다.
우리는 왜 술을 마시나? 기도하기 위해서. 종교를 잃은 우리는, 신의 음성을 잃은 우리는, 고아가 된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 장님 신과 마주 보기 위해서, 귀머거리 신에게 모든 걸 말하기 위해서, 벙어리 신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서. 하지만 신은 없어. 아냐, 신은 있어. 여기 내가 있잖아. 여기 네가 있잖아. 여기 우리가 있잖아. 우리는 모든 걸 보고, 모든 걸 말하고, 모든 걸 듣고, 모든 걸 용서하고, 모든 걸 용서받고, 마침내 아멘이라고 말하기 위해 우리는 술을 마신다.
우리는 왜 술을 마시나? 사랑하기 위해서.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네가 아니라, 내가 잘 알고 있는 네가 아니라, 네가 누구든 상관없이, 지금 바로 내 앞에 있는 너를, 바로 네 앞에 있는 나를, 내가 모르는 너를, 네가 모르는 나를, 나를 바라보는 너를, 너를 바라보는 나를, 내 말을 듣는 너를, 네 말을 듣는 나를, 내게 말하는 너를, 네게 말하는 나를, 나를 용서하는 너를, 너를 용서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서 우리는 술을 마신다.
우리는 왜 술을 마시나? 영원하기 위해서. 죽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어도 괜찮기 위해서. 죽어서도, 언제까지나, 기도하고 사랑하고 영속하기 위해서. 네가 있으면 나도 있는 거니까. 내가 있으면 너도 있는 거니까. 나는 죽어도 우리는 죽지 않으니까. 너는 죽어도 우리는 죽지 않으니까. 그럼 누구도 죽지 않는 거니까. 언제나 부활하기 위해 우리는 술을 마신다.
이 연극은 자칫 뻔하고 지루하고 교훈적일 수 있는 주제를 거창하게 호들갑 떨지 않고 지그시 눌러가며 차분하게 전달한다. 등장인물들 모두 술에 취해 눈을 개슴츠레 뜨고, 몸을 가누지 못해 고꾸라지고, 혀가 꼬여 발음마저 불분명하지만, 눈을 말똥말똥 뜨고 앉아있는 그 어떤 관객보다 멀쩡하다. 나는 그들이 굳이 취한 척을 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눈을 개슴츠레 뜨지 않고, 몸을 가누지 못해 고꾸라지지도 않고, 관객들을 향해 명료하게 말한다 해도 그들은 이미 충분히 취해있으니까.
사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연극을 보나 보다. 무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배우들이 흘리는 피로 우리 모두가 취하니까. 그래서 극장에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연극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술을 마시는가. 취기에서 깨기 위해서. 연극도 마찬가지다.
PS. 연극은 뒤로 갈수록 점점 동력이 떨어진다. 그건 희곡 때문일 수도 있고, 연출 때문일 수도 있고, 배우들 때문일 수도 있다. 거기다가 지나치게 막연하고, 지나치게 전능하고, 지나치게 순진무구하고, 지나치게 인간적이어서 거의 비인간적인, 아마도 신들만이 가능할 그 '사랑만능주의'가 개인적으로는 마땅치 않다. 그러나 그 모든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지 않을 만큼 나는 몰입해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