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불란서 금고

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

by 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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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 불란서 금고 - 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

공연장소 :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

공연기간 : 2026년 3월 7일 ~ 2026년 5월 31일

관람시간 : 2026년 3월 8일 오후 2시




마치 텅 비어있는 금고에 범죄자들을 불러 모으듯, 혹은 허술한 연극에 배우들을 불러 모으듯, 이 연극은 공허한 극장에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금고 번호가 금고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딱히 개연성도, 재미도, 흥미도 없는 패러독스처럼, 나는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동안 보고 싶은 연극이 없어서 주구장창 쉬고 있다가 새 해가 밝은 뒤 처음으로, 그러니까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본 연극이었다. 훌륭한 연기로 자타공인된 배우들이 많이 참여한 연극이라 기대도 높았다. 그런데 나는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어떻게 이렇게 재미가 없나? 저는 보면서 시대가 바뀌었나, 내가 이상한가. 그 사람들이 이상하거나 제가 이상하거나 둘 중에 하나일 거 아니에요. 둘 다 이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제가 이상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이상한 것 같지는 않아요.

이 연극의 가장 큰 문제는 연극적 상상력의 부재이다. 나는 연출가가 연극이라는 매체와 영화라는 매체를 완전히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호흡이 너무 많이 자주 끊어지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한 인물이 대사 할 때면 마치 다른 배우들은 카메라 앵글 바깥에 있는 것처럼 정지되어 있다. 단순히 행동이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심장이, 영혼이, 실존이 정지된 것만 같다. 그것을 혹시 오히려 '연극적'이라고 심지어 '희극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강력하고 재치가 뛰어난 희곡이 무게 중심을 눌러주어야 하는데 이건 또 진부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으니 그냥 전부 다 헐렁헐렁해지는 것이다.

차라리 만약 이 희곡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물론 많은 수정 뒤에) 훨씬 나았을 것이다. 우리의 감각을 애초에 잘라버리는 편집, 과도한 인물 클로즈업, 사실주의와 현실주의의 극명한 불일치라는 영화적 특성은 본질적으로 희극적이기에 좀 더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은 롱테이크 영화가 아니다. 연극을 라이브 영화정도로 생각한다면 왜 연극을 만들까? 영화보다 제작비가 싸서? 실패해도 자존심이 덜 상해서? 연극이란 원래 실패하는 거니까?

개인적으로 연극으로 코미디를 만드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울리는 것보다 웃기기가 더 힘들고, 그 웃음이 냉소적이지 않기는 더더욱 힘들다. 반대로 실패한 비극에 대한 감상평을 늘어놓기는 비교적 쉽다. 온갖 연극 이론을 다 갖다 붙여가며, 그러니까 그리스 비극부터, 아니 까마득히 원시 제의부터 자근자근 밟아가며 잘난 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코미디는 그게 안된다. 웃음은 냄새처럼 휘발되어 텍스트에, 역사에 남지 않는다. 심지어 지금 당장 웃으면서도 왜 웃긴지, 지금 당장 웃지 않으면서도 왜 웃기지 않은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냥요. 바보 같지만 유일한 정답.

모든 연극이 그렇지만 코미디는 더더욱 희곡이 탄탄해야 한다. 그런데 이 희곡은 그냥 엉성하게 밑그림 작업만 한 것 같다. 솔직히 희곡을 쓰기도 전에 배우들이 먼저 섭외되고, 그 배우들에게 억지로 배역을 만들어주기 위해 급조된 연극 같다. 왜 금고를 따려 하는지 별로 공감도 안되고 흥미롭지도 않은 인물들 각각의 사연과, 진부고 전형적이며 개성 없는 캐릭터들, 그리고 이 인물들을 불러 모은 배후 인물의 정체가 정말 하나도 안 궁금한 스릴러 속에서, 배우들은 개성과 연기력을 자가발전하며 고군분투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런데 그나마 어찌어찌 말장난으로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간신히 긴장감을 유지하던 연극은 경비원의 등장으로 인해 결정적으로 무너지고 만다. 아니, 이 무슨 영구 없다 시절의 설정인가?

다시 말하지만 그런 설정도 영화였다면 오히려 코믹하게 풀어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기꺼이 바보가 될 수 있다. 왕자 공주가 될 수도 있고, 우주인이 될 수도 있고, 시간 여행자가 될 수도 있고, 뱀파이어가 될 수도 있고, 침팬지가 될 수도 있고, 뭐뭐뭐, 뭐든지 될 수 있다. 그러나 연극 관객은 아니다. 연극 소비자는 연극 생산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영화를 찍는 카메라보다, 훨씬 더 냉담하다. 그들은 웃을 줄을 모른다. 그들은 웃음이 뭔지 모른다. 심지어 웃고 있을 때조차. 코미디는 그런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불가능한 미션을 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설사 그 미션이 성공하더라도 아무도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이번에는 빵빵 터졌는데 그다음에는 터지지 않는다. 정말이지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북벽에 오르는 자의 욕망과 이 인물들의 욕망을, 또한 이 인물들간의 욕망 역시도, 단지 '욕망'이라는 단어를 공유한다고 해서 똑같은 욕망으로 퉁칠 수 있는 것인가? 예술품 밀수자가 이 금고를 따기 위해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내가 놓친 것인가? 건달의 실명이 밝혀지는, 아마 이 연극에서 가장 재미있었을 설정을 교수의 이름을 또 밝힘으로써 스스로 깎아먹는 건 왜인가? 금고 속에 금고 번호가 있다는 설정에 무슨 심오한 교훈이라도 있는 건가? 뭐어, 우리의 인생사가 결국 다 그렇다는? 쪽지를 품에 안는 은행원의 반응을 보니 금고 번호에 무슨 의미라도 있는 것 같던데? 교수의 뜬금없는 지킬 앤 하이드 혹은 골룸 원샷 장면에서 완전히 자포자기 한 건 나뿐인가?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 연극을 솔직하게 한 마디로 얘기하면 감이 너무 떨어진다. 텅빈 금고가 나오는 연극이 아니라 텅빈 연극이 나오는 금고를 만들 생각이었다면 성공이라고 하겠다. 연극을 보지 못한 4개월 간의 화력이 모여서 내 비판이 너무 과한가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저는 제가 이상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이상한 것 같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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