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안트로폴리스Ⅱ〈라이오스〉
공연장소 :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공연기간 : 2025년 11월 6일 ~ 2025년 11월 22일
관람시간 : 2025년 11월 9일 오후 3시
재미없다. 내가 앞자락을 깔 여유도 없이 지르고 시작하는 것은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안내 페이지에 도배가 되어 있는 선전 문구들은 현란하기 그지없다. '욕망이 낳은 비극의 대물림, 당신이 몰랐던 그리스 신화의 발칙한 이면' '감동적이고, 지적이며, 매력적인 독창적인 작품' '고대 신화의 날카롭고도 정치적인 해석으로 관객을 이끈다' 등등.... 전혀 모르겠는데?
나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여기서 몇 번인가 말했었다. 그러나 그건 비중을 강조한 것일 뿐 연극 역시도 결국은 감독의 예술이라는 걸 이 연극이 잘 보여준다. 배우의 연기는 훌륭했다. 아마도 배우로서는 자신의 다채로운 모습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흥미로운 역할이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1인극이니 이 연극에서 배우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연극을 보러 가는 것은 단지 배우의 연기력을 평가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 연극은 참 재미없다. 아무리 배우의 연기가 뛰어나고 매력적이라도, 아무리 대단한 원맨쇼로 종횡무진 무대를 휘젓고 다녀도, 어느 한순간 진심으로 눈물을 쏟아도, 그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솔직히 (이 연극이 희곡을 많이 훼손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희곡부터가 별로다. 뭐가 발칙한 이면이고, 뭐가 감동적이며, 뭐가 지적이고, 뭐가 매력적, 독창적인지 모르겠다. 희곡은 지극히 평이한 수준이다. 우선 도대체 애초에 왜 라이오스에 관심을 가졌는지부터가 미스터리다. 라이오스에 대한 색다른 조명도 없고, 딱히 인간적, 정치적, 신화적 접근도 없고, 거시적이지도 미시적이지도 않다. 그저 유치원생들에게나 들려줄 법한 정보의 나열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 희곡은 (그리고 이 연극은) 대체 라이오스에 대해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약간의 풍자로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양념처럼 끼워넣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그냥 억지스러운 농담 따먹기 수준이다. 도대체 왜 '라이오스'라는 인물로 연극 한 편이 만들어져야 했을까?
라이오스는 누구인가. 물론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서 이 정도 비극은 비극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리스 신화 전체가 인간 비극의 신화이며, 동시에 신성한 희극의 신화이니까. 라이오스가 관심을 받지 못한 건 오이디푸스의 그늘에 가려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다른 인물들에 비해 개성이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비극성 자체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이오스는 누구인가. 그는 사악하고 저주받은 인물이다. 그는 떠돌이, 아웃사이더, 강간범, 살인자, 신성모독자이다. 특히 그는 자신의 친아들마저 죽이려 한 패륜범이다. 그래, 그런데, 그래서, 라이오스는 누구인가. 라이오스는 외로운 인간이다. 그는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날 그의 아버지는 광신도에게 찢겨 죽었고, 어머니는 처음부터 완전히 잊혔으며, 그의 양아버지는 정적에게 살해당했다. 라이오스 자신도 정치 암투에 휘말려 어린 나이에 추방되고 방치되었다. 펠롭스 왕이 거두어주었지만 그의 외로움은 결코,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가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이 이 연극의 문제였을까? 우리가 내제적으로 접근해 그의 외로움에 공감하고 그것을 강조하다 보면 우리는 강간범, 살인자, 신성모독자를 편드는 셈이 된다. 그의 극악무도한 범죄가 희석된다. 그를 이해하고 동정하다가 결국 용서하게 된다. 이 연극의 치명적인 우유부단함이 그 때문이었을까? 기만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윤리적 결벽증.
라이오스는 자신을 거두어준 은인을 배신했다. 그의 아들을 납치하고 강간한 뒤 자살하도록 방치했다. 신의 신탁을 무시하고 아이를 가졌다. 그래놓고는 그 아이를 죽이라고 명했다. 이 정도면 자신의 친아들에게 맞아 죽어도 억울하다 항변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 그런데, 그래서, 라이오스는 누구인가. 왜 우리는 매일 쏟아지는 뉴스를 잠시 뒤로 한 채 여전히 신화를 뒤적이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연극을 보러 가는가. 이 세상에 법과 질서와 윤리가 부족해서? 이 세상에 재판장과 학교와 교회가 부족해서? 이 세상에 재판관과 교사와 설교자가 부족해서? 아니, 오히려 너무 많지.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갈라치며 쌍둥이같은 우리 출생의 비밀을 은폐하지. 우리가 여전히 신화를 뒤적이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연극을 보러 가는 건, 타인, 영웅이나 범죄자, 희생양뿐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바로 나 자신이야 말로 강간범, 살인자, 신성모독자라는 사실과 대면하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굳이 라이오스를 침묵에서 끄집어내어 연극으로 만들겠는가? 왜 강간범, 살인자, 신성모독자인 그에게 새로운 육신을 주고, 말할 수 있는 입을 주고, 우리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게 하는가? 자신의 아들에게 맞아 죽은 그를 또 다른 자식인 우리가 다시 한번 더 부관참시하기 위해? 그래, 그것도 좋다. 그럼 그거라도 제대로 하든지.
이 연극에서 라이오스는, 그리고 모든 인물들은 천박하고, 껄렁하며, 얄팍하기 그지없다. 나는 과연 이것이 원작 희곡에 충실한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가 희곡을 공정하게 평가하려면 그 연극의 연출을 심도 있게 고려해봐야 한다. 혹여 희곡을 심각하게 왜곡하거나 오염시키지 않았는지 말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연극의 (또한 영화의) 가장 심각한 고질병은 '지루함 포비아'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조금이라도 어려워할까봐 지루해할까봐 사시나무 떨듯이 전전긍긍하면서 원작에 맞지도 않고 본질을 해치는 되도 않는 유머와 설정을 남발하는 것이다. 꼭 빵빵 터져야만 관객들이 돈을 아까워하지 않을 거라는, 관객들이 포만감과 만족감을 느낄 거라는, 그래야 칭찬받을 수 있을 거라는 착한 광대 증후군. 과연 인물들 모두를 매 순간 언제나 그렇게 천박하고, 껄렁하고, 얄팍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이 연극의 인물들처럼 과연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는 정말 머리가 텅 비고, 경박하고, 서로 교태나 부리는 10대 불량 청소년 같은 인물들이었을까? 정치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싸구려 종이 인형처럼 납작한, 심지어 딱히 사악하지도 않은, 그들은 왜 무대 위를 어기적거리며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가? 그들의 대사들은 꼭 그렇게 하나같이 술주정처럼 혀꼬인 소리로 말해져야 했나? 최소한 그들이 정치적이고 관습적이며 현실적인 운명에 사로잡힌 우울하고 염세적인 젊은이들이었다면, 그들의 그 모든 대사가 그토록 시덥지 않고 하찮았을까? "라이오스, 우리 아기 가질까?" 이 대사마저도?
라이오스, 그는 외로운 인간이다. 그 어느 때보다 이 연극에서 가장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