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네안데르탈

by 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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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 네안데르탈

공연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공연기간 : 2025년 10월 31일 ~ 2025년 11월 2일

관람시간 : 2025년 11월 2일 오후 3시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이 세계에는, 공허가 있다. 공허, 무無, 공백, 어둠, 침묵, 검은 상자, 신, 무지, 죽음, 카오스, 혼탁함, 불투명, 부조리, 기원, 타인, 비존재, 틈, 소통 불가, 잘려나간 페이지, 무의식, 아버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없음, 이야기되지 않는 이야기, 무의미, 우연, 확률, 기하학, 물질, 육체....... 사실 우리는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것에 대한 단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에 대해서는 비유로만, 더 정확히 말하면 비유의 비유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하게 있다. 절대적으로 있다. 그것이 없다고 믿는 자는 미친자이거나 신비주의자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본질이나 성질은 고사하고 그 힘과 크기조차 가늠하지 못한다. 나의, 우리의, 이 세계의 50%? 정도 될까? 70%? 99%? 99.999999999..........? 어쩌면 더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무한한 우주 속에 있는 그저 먼지보다 더 작은 지구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 아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지구를 중앙에 놓아서는 안된다. 이 공허가 지구를 중심으로 주변 바깥을 둘러싸고 있다고 상상해서는 안된다. 이 공허, 무無,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그것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의 기원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탄생시키고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모든 것의 영향을 빨아들이며 결국 모든 것의 종착지다. 이 공허는 우리의 일부이며 더 정확히 말하면 바로 우리가 이 공허의 일부이다. 어쩌면 나 자신은, 우리는, 우리의 삶과 죽음은 이 공허에 우연하고도 찰나에 생긴 흑점이나 거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각자의 본질과 실존, 인격과 개성, 모든 생각과 감정과 결정 역시 그 공허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누군가는 그것에 빛을 밝히려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연구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부정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모른 척하고, 누군가는 그것으로부터 도망가고, 누군가는 그것과 싸우고, 누군가는 그것과 타협하고, 누군가를 그것을 소독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통과하려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채우려 하고, 누군가는 그 속으로 뛰어든다. 그 '누군가'는 각각의 사람이면서 단 한 사람 이기도 하다. 이 공허가 존재들 간의, 인간들 간의, 이 세계와 시점에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 차이는, 틈은, 균열은 무한하다. 그것이 우리를 점점 더 결벽증 환자로 만들지만 애초에 이 공허야말로 우리 모두의 공통점이다.

이 연극은 쉽지 않은 얘기를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으면서도 길을 잃지 않고 효과적으로 풀어낸다. 개인적인 인상으로는, 지적이고 잰체하는 분위기와, 인물들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주제를 병렬식으로 나열하고 엮어내며 풀어내는 방식이 (순전히 내 경험에 한해서는) 유럽 연극에서 다소 진부하게 반복되는 것 같지만 어쨌든 상당히 재미있게 관람했다. 결국 '사랑'으로 그 공허를, 타인을, 나 자신을 감싸 안아야 한다는 윤리적인 결말은 글쎄, 진부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체 이것 외에 우리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겠는가. 모든 철학과 예술과 심지어 과학까지 결국은 윤리학이 아닌가. 진부하다면 '사랑'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말을 또 하고 있다는 것일 뿐, 그런데도 여전히 희귀한 것이 '사랑'이니 그들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사랑'이라는, 너무나 관념적이고 막연하며 언제나 비유적이어서 거의 공허에 가까운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용서'라는 말로 대체해보려 한다. 우리는 공허를 용서해야 하고, 무無를 용서해야 하고, 공백을 용서해야 하고, 어둠을 용서해야 하고, 침묵을 용서해야 하고, 검은 상자를 용서해야 하고, 신를 용서해야 하고, 무지를 용서해야 하고, 죽음을 용서해야 하고, 카오스를 용서해야 하고, 혼탁함을 용서해야 하고, 불투명을 용서해야 하고, 부조리를 용서해야 하고, 기원을 용서해야 하고, 타인을 용서해야 하고, 비존재를 용서해야 하고, 틈을 용서해야 하고, 소통 불가를 용서해야 하고, 잘려나간 페이지를 용서해야 하고, 무의식을 용서해야 하고, 아버지를 용서해야 하고,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없음을 용서해야 하고, 이야기되지 않는 이야기를 용서해야 하고, 무의미를 용서해야 하고, 우연을 용서해야 하고, 확률을 용서해야 하고, 기하학을 용서해야 하고, 물질을 용서해야 하고, 육체를 용서해야 하고....... 솔직히 우리가 용서할 수 있을까. 내 아이를 죽인 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닌 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용서해야만 할 텐데, 언제나 내가 아닌 당신이 먼저 날 용서해야 하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용서하지도 용서받지도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마저도 용서해야 할까?

사랑. 그래, 사랑.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사랑'이 그것에 빛을 밝히는 것인지, 그것을 연구하는 것인지, 그것을 부정하는 것인지, 그것을 모른 척하는 것인지, 그것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인지, 그것과 싸우는 것인지, 그것과 타협하는 것인지, 그것을 소독하는 것인지, 그것을 통과하는 것인지, 그것을 채우려는 것인지, 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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