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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Aug 02. 2024

2024 뜨거운 여름

<월간 오글오글 : 7월호 여름>

 <월간 오글오글>은 글쓰기 모임 오글오글 작가들이 매 월 같은 주제로 발행하는 매거진입니다. 7월호 주제는 '여름' 입니다.


출산 예정일을 들으면 열 명 중 여덟 명은 '아이고 더워서 어떡해'라고 말했다. 여름 산모는 힘들단다. 하지만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에어컨이라는 첨단과학이 발달한 이 21세기에 여름 산모 겨울 산모 따로 있을까, 어차피 신생아를 데리고 바깥을 못 나가는데 똑같겠지라고 생각했다. 하하하 하지만 그건 정말 정말 정말 바보 같은. 멍청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여름 산모는 정말, 정말 힘들다.


출산한 병원에서 입원한 나흘 밤 동안에 병실 에어컨을 끄는 테러를 당한 거나 산후 조리원에서 누가 틀어놨는지도 모르는 방 보일러가 고장 나서 불가마에서 수유한 경험은 나만의 특별한 경험으로 '여름 산모 푸념 대회'에서 동상 정도 받을 에피소드로 남겨두려 했다. 집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기업(?)이 만든 바람이 안부는 듯 바람을 불게 하는 시스템 에어컨이 방방마다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신생아가 지내기에 가장 적합한 온도인 '22~24도'를 유지하며 살 수 있으니 누구보다 시원한 여름을 날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에어컨을 24도에 맞추고 수유를 했는데.


여름 산모가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아이를 안으면 집안 온도와 상관없이 우리는 너무나 뜨거워졌다.


아이가 그야말로 젖 먹던 힘을 내며 낑낑거리며 젖을 먹으니 아이는 아이대로 최대로 발열하고 있었고, 이 아이를 안고 젖을 물리는 나는 나대로 낑낑대며 열을 같이 내고 있으니 나와 아이가 합체하면 활활 타오르는 장작이 되는 것 같았다. 수유할 때가 되면 추워서 꽁꽁 싸매고 입었던 기모 잠옷과 양말을 벗고 아이를 안았고, 이내 열이 올라 끈적해지는 아이의 접힌 목에 바람을 연신 불어넣으며 여기저기서 솟아오르는 나의 땀을 닦기에 바빴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있던 '여름 징역'이 떠올랐다. 감옥에서는 겨울보다 여름이 더욱 싫은 계절이라고 했던 그 글. 옆 사람을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해서 사람을 증오하게 만들고 자신을 혐오하게 하는 계절이라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는 겨울이 더 낫다고 했던 그 명문장들이. 이렇게. 신영복 선생은 증오와 자기혐오의 부정적 감정을 여름 징역살이에서 느꼈지만 나의 여름 셀프 감금살이에서 느끼는 감정은 우려와 불안함이었다. 내가 아이를 안으면 땀띠가 올라올까 봐 미안함과 걱정만 들게 하니 꼭 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려놓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어 이런 여름 고난이 따로 없었다.


아이를 내려놓고서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이렇게 메쉬 나시 바디 슈트를 입혀 놓고 추우면 어떡하나, 그러다가 인견 인불로 덮어놓고 더우면 어떡하나, 아이를 보고 열을 재고 손을 만져보고 뺨을 대보고 온도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초보 엄마는 자꾸만 겁이 났다.


겨울이었으면 적당히 따뜻하게 하고 울 때 열심히 안아주고 이불도 덮어줄 텐데 여름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하며 여름을 타박하고만 있었다. 매일 기록을 경신하는 열대야의 더위가 야속하고 또 미웠다. 그러다 생각했다.


우리에게 이 여름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걸


땀을 뻘뻘 흘리며 서로의 가슴을 맞대고 바라보는 이 여름은 이렇게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걸. 내 두 손에 들어오는 작은 아이를 한껏 끌어안고 지내는 이 뜨거운 여름이 언제까지나 그리울 거라는 걸.


2024년 뜨거운 여름은 이렇게 강렬하게 기억되겠지. 끌어안고 땀내며


그렇게, 뜨겁게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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