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vor 01. 청무화과 오픈 샌드위치
거의 끝물이라더라. 초록 껍질에 하얗게 흩뿌린 반점들—별빛이 터지다 멈춘 자리처럼—나는 그 표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누가 “요리를 참 좋아하나 봐요?”라고 물으면, 나는 늘 대답을 망설였다. 내가 정말 그렇게까지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일까. 요리가 직업인 것도, 자격증이 있는 것도, 거창한 레시피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곱씹는다. 나는 ‘요리’ 자체보다, 재료를 오래 바라보고 손으로 다듬는 그 시간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하고.
무화과는 늘 내 과일 목록의 바깥에 있었다. 뉴질랜드 어학연수 때, 홈스테이 마당의 나무에서 딴 자잘한 보랏빛 열매. "Fig야, 먹어봐."라며 아저씨가 손바닥에 올려 건네던 순간이 내 인생의 첫 무화과였다. 향이 유난하지도, 단맛이나 쓴맛이 또렷하지도 않았던 과일. 나는 그것을 할머니 옷장 깊숙이 들어앉은 오래된 스웨터 같은 과일이라고 기억했다. 그 이후로도 철마다 무화과가 콕콕 박힌 파운드케이크나 잼에서 다시 마주쳤지만, 쉽사리 손이 가진 않았다. 그런 내가 오늘 끝물의 청무화과 앞에 멈춰 섰다.
흐르는 물아래에서 과육을 조심스럽게 굴리며, 손바닥에 닿는 보드라운 표면의 감촉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청무화과의 하얀 반점들을 본다. 지그시 눌렀다가 놓으면, 단단함 속에 미세한 복원력이 느껴진다. 살짝 힘을 주어 무화과의 속살을 드러내면, 상처가 다문 자리의 무늬가 드러난다. 치유는 흔적을 지우지 않고 패턴으로 남긴다. 씨알 하나하나가 그 시간의 단추처럼 매달려 있고, 그 빽빽한 질서가 아름다워서 조금은 무서운 평온을 만든다. 한입 베어 물면 여느 과일처럼 단맛이 앞서 달려오지 않는다. 은은한 향, 늦게 오는 달콤함, 길게 남는 쫀득함. 청무화과는 급히 결론에 닿기보다 지금을 천천히 씹어 삼키는 과일이다.
나는 청무화과가 거리를 두는 맛이라서 좋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면, 가까이 지내던 이들이 힘든 일을 겪고 '회복이 필요하다'며 잠시 사라질 때가 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가가 위로를 덧대는 게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회복의 거리를 조심스럽게 유지해 주는 일이다. 먼저 향으로 와락 안기지 않는 과일처럼, 청무화과는 내가 고개를 숙여 냄새를 맡고, 천천히 씹어야 비로소 열린다. 나는 오늘도 부엌에서 재촉하지 않고, 멀어지는 시간을 붙잡지 않고, 다만 곁에서 온도를 지키는 일을 배운다. 그러면 어느 순간, 늦게 오는 달콤함이 스스로 다가와있다. 달콤함은 늦어도 좋다고 믿는 마음이, 누군가의 회복에도 가닿으리라 생각하며.
딸기잼과 크림치즈를 바르고 청무화과 올려주기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바르고, 하바티 치즈와 프로슈토를 얹어먹는 조합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