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youtube 영상을 업로드하며 글도 함께 써봤다. 둘 다 주제는 '운'이다. 영상을 먼저 보고 글을 봐줘도 좋겠다.
나는 세 달에 한 번쯤 복권을 산다. 나름의 분석과 신조와 규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없다. 우연히 ‘로또 복권 1등 나온 집’ 현수막이 걸린 복권집을 만나면 홀린듯 들어가 복권을 구매한다. 서울에 1등 나온 집이 왜 이리 많은지. 논현에도 있고 대학로에도 있고 종로에도 있다. 하여간 우연히 발견하기 쉽게 어디든 포진해 나를 덮친다.
그 수많은 번호 중 내가 반갑게 똥그라미 칠 번호는 한 개에서 두 개 사이다. 무슨 뜻이냐면 너란 사람은 당첨될 확률이 없으니 썩 꺼지란 뜻이다. 수십 번 샀던 모든 로또가 그랬다. 이런 일도 있었다. 재미로 복권을 사 친구와 나눠가졌는데 나 말고 친구가 당첨됐다. 다행히 친구 사이가 어색해질 정도의 당첨은 아니었다. 턱걸이로 5등 정도. 친구가 내게 물었다.
“이거 상금 수령하려면 어떻게 하는 거야?”
내 대답은 이러했다.
“몰라”
정말 몰라서 답변할 수 없었다. 몇 가지 상황이 쌓이고 결과가 쌓이면 나란 사람의 ‘운’이 좋은지 나쁜지 데이터로 판단하게 된다. 언젠가 친구 H는 “난 절대 이벤트에 당첨되지 않는 운을 가졌어”라고 말했다. 나는 위로했다. “저런, 그래도 이번 이벤트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친구는 말했다. “아니야 난 이제 당첨 안 돼도 실망하지 않거든? 그렇게 위로할 필요 없어. 난 운이 없으니 열심히 살아야 돼” 아니 얼마나 건실한 대화인가. 무조건 반사로 위로의 말이 나갔던 내 태도에 반성했다.
또 다른 친구 Y는 자신의 운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냥 운이 좋았다고 퉁친다. 그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일까? 옆에서 그를 자주 본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사건에 대해 이걸 운으로 치부하는 경향은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판단할 때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증거다. Y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진짜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데 뭐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만은 잘 알겠어”라고 말했다.
두 상반된 친구들의 태도가 재미있어 친구 A에게 이 이야길 전했다. 친구 A는 반대로 ‘운’의 존재를 입 밖에 꺼내지 않는 사람이다. 본인 스스로가 말하더라. 자기는 “내 입으로 운이 좋다 나쁘다 하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그러더니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리뷰에 누가 인용한 대사라며 읊어줬다. "냇가에서 그물을 촘촘하게 엮다보면 운이라는 물고기가 알아서 잡힌대." 그 인용 대사 출처가 어디냐 물었더니 답변을 미뤘다. 불교인지 힌두교인지 어디 종교에서 나온 말 같은데 당시에 봤던 리뷰를 못 찾겠다며.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빈민가 출신의 18살 고아 ‘자말’이 퀴즈쇼에서 우연히 퀴즈를 다 맞춰 우승을 차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 배운 게 없는 그가 우승을 하다니? 부정행위일 거라 생각한 경찰은 ‘자말’을 사기죄로 체포한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퀴즈의 답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자말’. 그렇게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살아온 모든 순간이 정답과 맞닿아 있더라는 이야기다. 내가 이걸 안다고? 싶을 만큼 나와 상관없던 정보를 살다 보니 알게 되는 경우 있지 않나. 딱 그렇게 그의 인생이 그를 우승자로 만들었다.
운을 받아들이는 모두의 태도가 좋았다. 운이 나쁘면 나쁜 대로 어쩔 수 없으니까 자기가 더 노력한다는 친구, 운이 좋으면 운이 좋았기 때문에 좀 더 겸손해지는 친구, 열심히 살다 보면 좋아진다고 믿는 친구. 각자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상상 안 되면서도 상상되었다.
나도 나름 운이 좋다고 말하고 사는 편이다. 복권 당첨은 절대 안 되는데 자잘한 이벤트 당첨 운은 좋다. 그러나 이젠 이런 분석 따윈 인생에 도움 되지 않는다 생각한다. 좋은지 나쁜지 분별해 봤자 어쩔 것이냐. 나는 내 운이 좋아질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설계한다. 내가 원하는 것에 이르도록 도움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찾아달라 지인들에게 부탁하기도 하며 널리 내 욕망에 대한 소문을 들은 이가 나를 찾아올 수 있도록 내 생각을 글로 영상으로 표현해둔다. 운을 받아들이는 각자의 방법이 이렇게 다양하다. 정도가 이 글의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