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물이-1

제1편. 너 홀로 집에

by 지형주

“싫어! 싫어!”

거실 바닥에 엎드려 개발새발 그림을 그리던 여물이가 발딱 몸을 일으켰다. 눈이 동그래지고 울먹이는 건지 무서운 건지 이를 앙다물었다.

“실어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을 길게 잡아 뺐다. 아빠는 아이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장바구니까지 챙기며 나갈 준비를 끝냈다. 뭔가 큰일을 시작하려는 것 같은 얼굴로 여물이 곁에 앉았다.

“여물아. 아빠가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요 앞에 슈퍼에 가는 거야. 너랑 맨날 가는 곳이잖아.”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가야지.”

“이제 혼자 있는 것도 해봐야지. 언제까지 아빠랑 같이 다녀?”

“유치원 가면.”

여물이는 우리 나이로 네 살이다. 둘이 같이 있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밖을 나갔다 와야 하는 일이 생긴다. 길어야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외출에 옷이며 양말에 신발까지 신기고 또 금방 돌아와 갈아입히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내년이면 유치원에도 가고 하니 이제 ‘혼자 있기’를 해보게 할 참이다.

“그럼, dvd 보여 줄게.”

여물이의 귀가 솔깃했다.

“영어 말고.”

“알았어. 우리말로 된 거.”

마지못해 하는 거라는 듯 여물이는 느릿느릿 일어섰다. 텔레비전을 될 수 있으면 보여주지 않으려고 거실에 있는 걸 작은 방으로 옮겼다. 여물이는 텔레비전 아래 가지런히 꽂혀 있는 영어 교육용 dvd는 거들떠보지 않고 애니메이션을 골랐다. 화면이 켜지자 푹신한 베개를 가슴에 꼭 안고 아빠를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빠, 빨리 와야 돼.”

“당연하지. 금방 다녀올게. 10분도 안 걸려.”

아빠가 신발을 신으며 얘기했다.

“응. 다녀와.”

여물이의 말을 듣자마자 현관문을 닫고, 아빠는 아파트 복도를 잰걸음으로 달려 승강기 앞에 섰다. 19층에 있는 승강기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뛰어 내려갈까 잠깐 생각해 봤지만 관두기로 했다. 13층에서 멈춘 승강기가 또 한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숫자를 바라보는 아빠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윽고 다시 움직이더니 띵- 소리와 함께 7층에서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있었으면 분명 한소리 했을 것이다. 아빠는 1층 버튼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다다닥- 세 번이나 눌렀다. 아파트를 나와 상가 건물로 뛰었다. 사실 10분이라고 했지만 5분이면 충분하다.

오늘따라 모모네 슈퍼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인아주머니에게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로 야채 코너로 갔다.

‘설마?’

대파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 저녁은 어묵 볶음과 된장찌개를 끓일 생각이었다. 파는 주재료는 아니지만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으뜸 양념이다. 우리나라 가정요리에 파를 넣지 않은 요리가 몇 개나 될까. 각종 찌개와 겉절이 그리고 모든 볶음 요리의 끝에는 꼭 파가 있어야 한다.

아빠는 다급하게 주인아주머니에게 갔다. 계산하느라 바빠 정신이 없었다.

“아주머니 대파가 안 보이는데요?”

아주머니는 이쪽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여물 아빠, 파 다 떨어졌어요.”

“아니, 슈퍼에 파가 없으면 어떡해요.”

한 사람 계산을 끝내고서야 아주머니는 아빠를 봤다. 평소 같았으면 아주머니는 여물이는 어떻게 하고 혼자 왔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몰라요. 오늘따라 손님이 많아.”

아빠는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저기, 길 건너 단지에 마트 새로 생겼잖아요. 거기로 가 봐요.”

아주머니가 말한 새로 생겼다는 마트는 사거리 큰길을 대각선으로 건너 아파트 한 동을 더 지나야 했다. 거길 갔다 온다면 10분을 훌쩍 넘길 것이다. 결정을 해야 했다. 그냥 집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새 마트까지 갈 것인지. 여물이의 우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아빠는 모모네 슈퍼를 나와 아파트 울타리에 난 쪽문을 지났다. 저 멀리 사거리가 보였다. 차로 다니다 보면 사거리 신호는 차량 통행이 우선이라 건널목 신호가 짧았다.

‘가자.’

사거리를 두 번 연속으로 건너기보다 중간쯤에 있는 건널목이 낫겠다 싶었다. 초록불이 깜박거렸다. 냅다 뛰었다. 5초가 남았다. 아빠의 달리기라면 충분히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채 신호가 바뀌기 전에 성질 급한 차가 먼저 출발하고 말았다. 뒤를 이어 우르르 차들이 도로를 덮었다. 하악- 숨을 내쉬며 아빠는 어쩔 수 없이 멈춰 섰다.

오늘따라 차는 많고 신호등은 좀처럼 초록불로 바뀔 생각을 않는 것 같았다. 혼자 있는 여물이 생각과 대파 살 생각이 번갈아 떠올랐다 사라졌다.

‘거기도 파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물이는 무서워서 안절부절못하고 있겠지? 파 없이 요리를 할까? 요리를 하다 보면 생략할 수 있는 게 있지. 하지만 파는 안 돼. 여물이도 아이답지 않게 파를 골라내거나 하진 않잖아.’

그 사이 드디어 신호가 바뀌었다. 발걸음을 막 떼려는데, 누군가 아빠의 옷소매를 당겼다. 뒤돌아보니 머리가 허연 할머니가 야윈 손으로 아빠의 옷소매를 잡고 있었다. 할머니는 두 발이 힘들어 네 발 보행기에 의지 한 채 떨리는 눈으로 아빠를 올려다봤다.

“나 저, 저기까지만 데려다주시오.”

느릿느릿한 말투였다.

“예?”

아빠는 초록불로 바뀐 신호등과 할머니를 번갈아 봤다.

“저, 저기까지……”

“어디요?”

“저기……”

할머니는 아빠의 옷소매를 놓고 그 손으로 길 어딘가를 가리켰다.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우리 아들이…… 마중 나왔어요.”

할머니가 가리키는 곳은 아까 지나왔던 아파트 쪽문 앞 버스 정류장 같았다.

“할머니, 제가 좀 바쁜데……”

초록불이 벌써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이……”

아빠는 난감해졌다.

“저기 버스정류장에요?”

“네, 네.”

할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아빠는 할머니의 팔을 잡았다.

“예,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고, 고맙습니다.”

할머니의 두 발과 보행기 네 발이 타닥타닥 정류장을 향해 갔다. 급한 마음에 할머니의 팔을 당기자 할머니는 어어 하며 넘어질 듯했다. 그래도 다리가 여섯이라 넘어지진 않았다. 아빠의 마음을 아는 건지 할머니도 용을 쓰며 따랐다. 할머니는 가쁜 숨을 내쉬며 정류장 앞까지 왔다.

“콩이 할머니!”

모모네 슈퍼 주인아주머니가 언제 봤는지 벌써 쪽문을 지나 인도로 나오며 소리쳤다. 할머니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아주머니를 봤다.

“아니, 왜 나오셨어요?”

아주머니는 할머니를 잘 아는지 볼멘소리를 냈다. 아주머니가 다른 한 팔을 마저 잡았다.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아들이 퇴근할 때라…… 마중 나왔어요.”

“예예, 알아요. 아드님 오실 때죠?”

슈퍼 안에서 한 손님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계산하다 말고 뭐하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주머니가 아빠를 봤습니다.

“여물 아빠, 파 사러 안 갔어요?”

“이 할머니께서 여기까지……”

“제가 연락할 테니까. 얼른 가세요.”

아주머니는 할머니를 부축해 정류장 벤치에 앉혔다.

“여기 꼭 앉아 계세요.”

그리고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며 슈퍼로 향했다. 어딘가로 급히 통화를 했다.

“콩이 엄마, 할머니 슈퍼 앞에 계세요. 얼른 오세요.”

대략 무슨 상황인지 이해한 아빠는 뒷걸음치듯 정류장을 벗어나 다시 건널목으로 뛰었다. 마침 신호가 바뀌고, 사거리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어쩐 일인지 아빠를 기다렸다는 듯 사거리 신호등도 마침 초록불로 바뀌었다. 아파트 한 동을 지나 왼쪽으로 꺾어들자 새로 생겼다는 마트가 나타났다. 마트 앞에서 한 청년이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자, 오늘은 오픈 기념 특별 세일입니다!”

숨 돌릴 틈 없이 곧장 들어가 야채 코너 쪽으로 갔다. 갖가지 과일과 야채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대파도 물론 있었다. 싱싱하고 굻기가 가지런한 묶음으로 골라 시장바구니에 담았다. 바로 계산대로 가려다 아빠는 과자 진열대로 가서 여물이가 좋아하는 과자 한 봉지를 담았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통도 꺼냈다. 한통 더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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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은 한결 가벼웠다. 여물이의 웃는 얼굴이 그려졌다. 사거리에 다다르자 이번에도 기다렸다는 듯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쿵!”

난데없는 소리에 깜짝 놀란 아빠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사거리 가운데를 봤다. 꼬리를 물고 달리던 택시 꽁무니를 급하게 출발한 택배 트럭이 받아버렸다. 받친 차가 빙글빙글 돌아 아빠가 있는 곳까지 밀려왔다. 차들이 뒤엉켰다. 경적소리 요란한 가운데, 받힌 차와 받은 차에서 운전자들이 문을 열고 나왔다. 한 사람은 허리를 잡고, 한 사람은 뒷목을 잡았다. 곧바로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이 오갔다.

두 운전자는 보험사에 연락할 생각은 않고 소리만 질러댔다. 급기야 받힌 쪽 운전자가 아빠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아저씨가 보셨죠? 누가 잘못한 거요? 예?”

“아, 네? 저, 저는……”

“경찰 오면 증언 좀 해주죠.”

“아, 아니 제가 좀 바빠서……”

그때, 차가 막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승용차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

“아저씨들, 제 차 블랙박스에 다 찍혔거든요. 이리 연락 주세요. 동영상 보내드릴게.”

하고는 명함을 꺼내 한 장씩 두 운전자에게 나눠줬다.

“얼른 차부터 빼세요.”

명함을 건네받은 운전자들이 엉거주춤 자기 차로 가서 부서진 차들을 도로 가로 움직였다. 아빠는 그 자리를 어느새 빠져나와 집을 향해 달려갔다. 경찰차가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지났다.

중간 건널목을 다 건널 쯤에 네 발 보행기를 짚은 할머니가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다 아빠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할머니를 봤다. 할머니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나, 나 저기까지만 데려다주시오.”

느릿느릿한 말투로 할머니가 말했다.

“예? 아, 아까 데려다 드렸는데……”

“우리 아들이…… 마중 나왔어요.”

아빠는 잠시 망설였다.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저, 저기까지……”

할머니는 버스정류장 쪽을 가리켰다.

“모셔다 드릴게요. 얼른 가요.”

“고, 고맙습니다.”

아빠는 할머니를 모시고 아파트 쪽문 앞 버스정류장에 다다랐다.

“콩이 할머니! 아니 왜 나오셨어요.”

모모네 슈퍼 아주머니가 정류장으로 달려 나왔다.

“우리 아들이 퇴근할 때라…… 마중 나왔어요.”

할머니가 느릿느릿 말했다.

“예예, 알아요. 아드님 오실 때죠?”

슈퍼 안에서 한 손님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계산하다 말고 뭐하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주머니는 할머니를 부축해 정류장 벤치에 앉혔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다 아빠를 봤다.

“여물 아빠, 파 사러 안 갔어요?”

“……?”

아주머니는 어딘가로 급히 통화를 하며 슈퍼로 향했다.

“콩이 엄마, 할머니 슈퍼 앞에 계세요.”

“네?”

전화기 너머에서 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아주머니를 보다, 정류소 벤치에 얌전히 앉은 할머니를 보다, 뒷걸음치며 쪽문으로 들어섰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와 얼른 승강기를 탔다. 7층에 내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여물아. 아빠 왔다!”

신발을 벗자마자 작은 방 안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베개에 가슴을 묻고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던 여물이가 고개를 돌려 아빠를 봤다.

“아빠, 벌써 왔어?”

“으, 응.”

“나 이거 끝까지 봐도 되지?”

“그래.”

아빠는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고 막걸리 두 통을 넣었다. 과자는 식탁에 올려놓고, 파단을 풀어 두 쪽은 개수대 안에 놓고 나머지는 선선한 베란다에 가져다 놓았다.

깨끗한 물로 파를 씻어 도마 위에 올렸다. 부엌과 거실 안에 통통통 파 써는 소리가 울렸다. 저녁 해가 느릿느릿 아파트 사이로 지고 있다. 잠깐 칼을 멈추고 아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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