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tergrapher Aug 03. 2017

벌거벗은 임금님

진실을 외치는 소년은 현실에 없다.


잘 들어, 우린 너희한테 존댓말 안 쓸 거야. 훈련소에서 무슨 얘기를 들었건 잊어버려. 알았어?


 자대 전입 첫날, 자신을 부분대장이라 소개한 상병이 신병들을 앉혀 놓고 이렇게 말했다. 운 없게도, 우리는 '병 상호 간의 존중으로 병영 내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단장이 부임한 직후, 처음으로 자대에 배치된 기수였다.


 "여러분이 밖에서 듣던 무서운 군대는 이제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대에 가면, 여러분들의 선임병들은 여러분을 따뜻하고 존중의 자세로 맞아줄 것입니다. 지금 상병, 병장들은 조금 억울할 수 있겠지마는 앞으로 이렇게 바뀌어 나가야 합니다. 이등병이든 병장이든 똑같이 일을 하고,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는 군대, OO사단에서 복무하게 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입소식에서 투스타 사단장은 이렇게 말했다. 계급에 관계없이 존댓말을 쓰는 열린 문화, 얼차려와 구타 없는 병영생활. '설마 진짜 사단장이 말한 대로일까?'라는 의문을 조금은 가진채 자대로 향하는 두 돈 반 다찌 트럭에 올라탔다. 불행하게도 토요일 오후였고, 그렇게 간부들 없는 한적한 산 밑 부대에 떨궈진 우리는 쓰레빠가 복도에 난무한 내무실 침상 위에 각 잡힌 채로 앉아 신상을 탈탈 털렸다. 그리고 곧 우리에게 붙은 꼬리표,


 "야, 그 '상호존중 군번'이라 훈련소에서 그렇게 배웠냐? 쳐 돌았어? 이등병 새끼들이 미쳐가지고."


 고참들의 마음이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이등병, 일병 때 그렇게 당하고 이제 좀 편해질 때쯤 되니 갑자기 마음대로 후임들 다루지도 못하고, 존댓말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오니 열 받을 만도 했다. 그렇게 우린 혼날 일이 있을때면 항상 잘못한 것에 대한 갈굼 + 그들의 분풀이까지 듣고 서 있어야 했다.


 가끔씩 대대장이 주말에 순시를 돌면 고참들은 입을 다물었다. 후임들과 말을 섞다가 나오는 반말 때문에 대대장님한테 걸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에 TV를 보다가 대대장이 들어온다는 얘기가 들리면, TV 가까이에 누워있던 병장들은 끝에 앉아 있던 이등병들과 잽싸게 자리를 바꿨다. 항상 대대장이 끝에 앉아 있는 병사에게 계급을 묻고, 이등병이나 일병이라는 대답이 나오면 분대장들을 모아 기합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상병, 병장들의 불만은 나날이 쌓여갔고, 그때마다 더 힘든 건 우리 같은 힘없는 이등병들 뿐이었다.




 사단 본부에서는 자꾸 귀찮은 일들을 만들어 내려보냈다. '상호 존중과 배려' 글 쓰기 대회, 웅변대회, 표어 쓰기 대회, 촌극 대회 등등. 안 그래도 밀린 빨래도 해야 하고, 집에 전화도 걸어야 하는 바쁜 이등병의 주말에 이런 일들까지 하려니 힘에 부쳤다. 표어 쓰기나 촌극 대회는 어찌어찌 공익적인 내용으로 두리뭉실하게 지어낼 수 있었지만 경험담을 요구하는 글 쓰기는 없는 일을 지어내야 했기 때문에 쓸 때마다 괴로웠다. 한 번 쓰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다음 달도, 또 그다음 달도 계속 반복되었다. 물론 그 거짓말 대잔치 속에서 누군가는 상을 받고 포상휴가를 떠났다. 앞에서는 박수를 쳤지만 '쟤들도 다 뻥이겠지.' 하며 뒤돌아 생각했다.



 이렇게 시행된 '상호 존중과 배려' 캠페인이 실질적인 효과를 가질 리 만무했다. 1년이 되었지만 사단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탈영 사고는 전체 육군 평균보다 높은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참모들이 사단장실에 불려 가 호되게 혼나고, 훈련병을 잘 육성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신병교육대 조교 몇몇이 영창에 갔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상호 존중과 배려 인증식'


 사단장은 특단의 조치로 모든 예하 대대가 '상호 존중과 배려 인증'을 받을 것을 지시했다. 이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전 대대원이 전우를 마음속 깊이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한 마음 한 뜻으로 사단장 앞에서 보여주는 웃기는 쇼였다. 반드시 포함되는 몇 가지 항목이 있었는데, 이는 지금까지 개별로 사단본부에서 내려오던 각종 과제의 종합 선물세트 같은 것이었다.


 1. '상호 존중과 배려' 주제가 대대원 전체 합창(+율동)
 2. '상호 존중과 배려' 개사송 경연
 3. '상호 존중과 배려' 실행 사례 연극
 4. '상호 존중과 배려' 수기 발표


 "아저씨, 그쪽 대대도 인증받았어요?"

 "아, 몰라요. 유격훈련 끝나자마자 그거 한다고 해서 죽는 줄 알았네. 듣자 하니 그 주제가 만든 애는 작곡하고 녹음한다는 핑계로 거의 몇 달 휴가 나갔다 왔다던데."


 결국 우리 대대도 인증식의 날짜가 잡혔다. 대령 진급에 목이 마른 대대장은 인증식 전 몇 주 전부터 외출 외박도 통제하며 연습을 강행했다. 말년 병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 종일 스피커를 통해 계속 반복해서 흘러나오는 주제가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고, 주말에는 당직 사령실에 한 명씩 불려 가서 주제가 암기 여부를 검사받아야 했다.


 '우리, 군대 왜 온 거지?'


 나와 옆 중대 선임 한 명은 차출되어 불침번을 열외 받고 밤마다 당직사령이 보는 앞에서 수기 발표 연습을 했다. 점호를 마치고 상황실에 앉아 원고를 쓰고, 발표 연습을 했다. 이발소에서는 개사송 경연팀이, 체력단련실에서는 연극 조가 불을 밝힌 채 연습에 매진했다. 물론, 다 같이 하는 합창 외에 별로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한 병사들은 부대 전체를 반짝반짝 빛나게 청소하는 일개미로 부려졌다.


 이윽고 아기다리고기다리지 않던 그 날이 왔다.


 미리 짜 맞춰 놓은 각본대로 사단장이 강당에 들어서자 우리는 '상호 존중과 배려' 주제가 목이 터져라 부르기 시작했다. 사단장이 입장하는 길 양 옆에 자리 잡은 병사들은 폭죽과 꽃가루를 뿌리며 꽥꽥 환호성을 질러댔다.


 "바~꿔 나가요. 상호 존중과 배려로~ 바~꿔 나가요. 밝은 내일을 꿈꾸며어어~~♬"


 사단장이 자리에 앉기 전에 이등병 하나가 달려 나가 사단장님께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마치 김정일이 양강도 어느 부대에 방문한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지만 이 모든 게 상당히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듯하다.


 "충성! 2중대 일병 요제린입니다. 사단장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 부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다행히 떨지 않고 외운 인사말을 읊고, 단상에 올라 준비한 원고를 한 자 한 자 차분히 읽어나갔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다 꾸며낸 이야기였다. 심지어 나와 같이 발표를 맡은 옆 중대 선임은 후임병들을 갈구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서로 챙겨주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주신 사단장님께 감사드린다.'며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할 때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모든 행사는 사고 없이 끝났다. 마지막으로 '상호 존중과 배려 인증 부대'라는 마크가 인쇄된 인증서가 대대장에게 전달됐다. 다 같이 모여 기념 촬영을 하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주제가를 부르는 가운데 사단장은 흡족한 모습으로 강당을 떠났다.


 수기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나와 선임 둘이 사단장 배웅에 따라 나갔다. 그는 수고했다며 사단마크가 새겨진 열쇠고리 하나씩을 우리 손에 쥐어주고 차에 올라탔다. 돌아오는 길에 선임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씨발, 포상휴가라도 주는 줄 알았더니, 사단장이 쪼잔하게."




 '상호 존중과 배려'하는 부대 인증을 받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짬밥을 먹으며 고참들한테 들은 욕을 그대로 후임들에게 했다. 그러는 사이 중대장도, 대대장도 바뀌었다. 여전히 글 쓰기, 표어 쓰기 과제는 계속 내려왔고, 적당히 누군가 써서 냈다. 이제 더 이상 유난 떨 것도 없었다.


 사단장은 내가 전역한 후 육군 훈련소장으로 부임했다고 했다. 복학 후, 어느 날 학교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식당 TV에서 매우 귀에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바~꿔 나가요오. 상호존중과 배려로오오~~♪"


 <청춘, 신고합니다>라는 군 위문 TV 프로그램에 '육군훈련소 편'이 한창이었다. 머리를 빡빡 깎은 계급도 없는 훈련병 수천 명이 연병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불쌍한 것들...'


 훈련소를 퇴소하고 전국 각지에 있는 부대로 배속되면, 그들이 마주칠 일상은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의 사단장이었던 그 육군 훈련소장은 그 후 '병 상호 간 존중과 배려'의 공로를 인정받아 쓰리스타를 달고 군단장이 되었다고 했다. 비육사 출신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전역을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보니 직장생활이란 것도 별 게 없었다. 기업 문화가 조금 딱딱하고 부드러운 차이일 뿐, 한국에 있는 어느 조직이든 '까라면 까'는 분위기가 공통적으로 지배하는듯 했다.


 군대와 마찬가지로 윗선에서는 문제 개선을 통한 가시적인 결과를 요구한다. 설령 그것이 실제 업무 성과를 높이는 것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일지라도. 하지만 진짜 문제는 누구 하나 나서서 그것이 쓸 데 없는 자위행위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건 요식행위에 불과한 일이기 때문에 안 하고 있습니다."라고 용감하게 말하기보다는, 그냥 적당히 덮어 포장하는 시늉을 보여주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다치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보성만 싸움에서 돌아올 때, 송여종은 물에 뜬 적병의 시체를 갈고리로 건져 올려서 머리 열다섯 통을 잘라왔다. 죽은 적병의 머리를 자르지 말고, 다만 적선을 부수는 데 화력을 집중시키라고 늘 일렀지만, 도원수부는 물증을 요구하고 있었다. 전투가 끝난 바다에서 적병의 머리 몇 통을 챙기는 일은 늘 불가피했다. 송여종은 고리짝 세 개에 머리 다섯 통씩을 담아왔다. 나는 선착장에서 머리를 점검했다."

- 김훈, <칼의 노래> 中


  회사 연말 시상식에서 나는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를 떠올렸다.


 뛰어난 ppt기술과 언변, 그리고 적절한 감동으로 마치 올 한 해 회사에는 훈훈한 미담만 존재한 것 같다. 게 중 진짜로 뛰어난 사례도 있지만 알 사람들은 다 안다. 발표 내용 뒤에는 보여주기 민망한 진실이 한 바가지고, 그들이 부각하는 성과에는 과장된 측면도 상당하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밑바닥까지 세세하게 알지 못하는 최고 경영층에서는 그저 잘했다고 박수를 보낸다. 설사 속사정을 알고 있다고 한들, 이렇게 좋은 축제 분위기를 깰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없다. 그저 누군가는 표창장과 상금, 그리고 박수를 받고, 이런 쇼를 눈 앞에서 지켜보는 권력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핀다. 그렇게 적당히 감추어진 불편한 진실은 평화의 필요조건인지도.


 인증식이 있던 13년 전 그날도 그랬다. 그 부대의 강당에서 우리는 다 같이 사단장 한 명을 속이고 바보로 만들었다. 비록 사단장은 그날 나체로 거리를 행진하는 '벌거벗은 임금님' 역할이었겠지만, "임금님 벌거벗었대!"라고 말하는 동화 속 소년은 그 쇼에 없었다. 동화의 결말과 달리 임금님은 무사히 행진을 마치고 흡족하게 궁으로 돌아왔고, 사기꾼 재봉사들에게는 포상이 내려졌다.


 아마, 전 대대를 돌며 인증식에 참여한 사단장의 눈에는 자신을 환영하는 어린 병사들과, 진심인 것처럼 목 놓아 로고송을 부르는 감동적인 장면만이 가슴에 남았을 것이다. 아마 그는 자신의 의지로 군 전체의 문화가 바뀌었다고 진짜로 믿었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그는 삼성 장군이 되었고, 직접적인 연관성은 많지 않았겠지만 우리 대대장도 제때 대령 승진에 성공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는 변화가 없었다. 인증서를 받고 석 달 뒤, 전입한 지 얼마 안 된 신병 하나가 탈영을 시도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등병 하나가 긁은 소원수리 때문에 또 두 명이 영창에 가고 강제 전출을 당했다. 어쩌면 진정한 병영문화의 개선보다는 인증서를 주고, 사진을 찍고, 사단 본부 중앙현관에 걸 수 있는 무언가가 사단장에게 더 중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임진왜란 때 적선을 격퇴하는 것보다 적군의 머리를 한양에 올려 공로를 인정받는 게 더 중요했던 도원수부가 그랬듯이.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월급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