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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Jul 27. 2017

어느 월급날

노를 저어 풍랑을 넘기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


'0'


 입사 7년 반 만에 처음으로 성과급 0이 찍혔다. 사업이라는 것은 굴곡이 있어서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성과급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상반기에 불어 닥친 '사드' 효과가 컸다. 사업의 중국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피해갈 수 없었다. ‘불가항력’이라는 말을 써야 하나, 아니면 ‘속수무책’이었다고 해야 하나, 온 힘을 다해 손으로 둑을 막아도 엄청나게 몰려오는 해일을 막을 수 없듯, 오늘 개인의 능력의 미약함을 급여통장을 보며 느꼈다.




 무릇 성과급은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주는 보너스의 형태의 급여다. 이론상으로 보자면, 기업의 사업 성과는 구성원들의 노력과 열정으로 달성될 수 있고, 기업은 이에 따른 보상을 제공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나타난 일련의 거대 외부효과를 바라보면, 과연 개인의 노력과 기업의 성과 간에 얼마만큼의 상관관계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재작년 메르스 사태가 그러했고, 이번 '사드' 역시 개인의 힘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었다. 농부들이 애지중지 가꾸는 텃밭에 매년 태풍이 불어 닥쳐 모두 쓸어버리면 농부는 심기일전하여 다시 농사에 매진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인간이 태어나서 스스로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싶다. 태어나는 순간 이미 많은 것이 정해진다. 성별은 물론 가족과 모국어, 사회 시스템과 정치, 경제 발전 수준, 그리고 이 나라의 지정학적 국제관계 등. 인간은 존재하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사고할 수도 행동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우리 세대는 평생 죽는 날까지 미국과 중국의 G2 힘겨루기 패러다임 안에서 '사드'와 같은 분란을 몇 차례나 더 겪게 될지 모른다. 어쩌면 튼튼한 끈에 팔다리를 동여매고 힘겹게 기차를 끄는 차력사처럼, 우리 개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기차라는 거대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은 고작 몇 밀리미터에 불과한 일인지도.




 순풍이 불어야 노를 저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점점 바람은 멎고 파고가 높아지는 바다에서 왠지 우리 손에 들린 노 한 자루가 너무 비루해 보이는 날이다. 이렇게 보잘것 없는 노와 가녀린 팔뚝의 힘에 의지하여 목적지에 도달하는 꿈을 꾸는 것이 너무 순진한 공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어느 허탈한 월급날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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