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적 인지부조화'에 대하여
고등학교 시절, 활동하던 써클(방송반)에 참 열정적이었던 한 기수 위 선배, S가 있었다.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라 선배들로부터 전수받을 노하우도 많지 않았던 시절, S 선배는 스스로 늦게까지 방송실에 홀로 남아 새로 들어온 기자재의 설명서를 읽으며 사용법을 익혔고, 그 어떤 회의와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의견을 개진했다. 때로는 그런 자신의 열정을 따라와 주지 못하는 후배들과 동기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적지 않은 독선도 보였지만 어쨌든 그에게 방송반은 고교 생활의 모든 것이었고 단 하나의 이유인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흘러, 그는 3학년으로 진급했다.
여느 고등학교가 그러하듯, 3학년이 되면 입시에 전념하기 위해 써클 활동을 후배들에게 물려준다. 마지막 인수인계가 끝나고, 작별인사를 하던 날. 그는 소감을 이야기하다 후배들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 날 어찌나 울었는지 그의 담임선생님 조차 방송실에 들러 이렇게 물을 정도였다.
"방송반에 S가 어제 울면서 집에 가던데 무슨 일 있었니?"
하지만, 그게 마지막인 것처럼 서럽게 운 것이 무색하게도, 그는 너무나 자주 방송실을 찾았다.
공부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또 새롭게 주도권을 가진 2학년 후배들이 자율성을 갖고 이끌어 나가기 위해 가급적이면 써클실을 찾지 않는 게 3학년들의 암묵적인 관례였다. 그 이전 선배들이 그러했듯 S 선배도 출입을 자제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는 여전히 자주 얼굴을 비추며 우리를 불편하게 했다. 선배가 옆에 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싫은 소리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또 선배가 된 우리들이 하는 일에도 옆에서 참견을 하여 1학년 후배들 보기에 부끄러운 상황도 몇 번 발생했다.
불편한 일이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이야기할 수 없었다.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써클 내 문화 때문이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자기가 대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후배들 들어오고 선배 되어서 변했다'더니, '이럴 거면 방송실 다시는 안오겠다'느니 하는 말로 투정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S 선배가 2년 동안 방송반에 쏟은 열정을 비추어보았을 때 그런 행동이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써클에 기여한 부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방송반에 남긴 자산에 대해 후배들도 감사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현역 시절 자신의 화려했던 추억에 갇혀 새로운 인생의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과거에 머무르려 하는 그의 태도를 일컬어 나는 '퇴행적 인지부조화'라고 불렀다.
과거에 어떤 대상에 자신의 많은 부분을 헌신한 나머지 떠나야 할 시점에도 떠나지 못하고 그 대상에 머무르고 존중받고자 하는 심리다.
사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다. 쉬운 예로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애착이 있다. 금전과 정성을 쏟아 명문대학에 보낸 후, 보상을 받고자 하는 심리가 여기에 속한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은 선배가 "이럴 거면 나 다신 방송실 안 와!"라는 심리와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었다. 떠나야 할 때 떠나고 다음 세대에게 맡겨두는 것이 가장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는 방법임에도, 사람에게 '미련'이란 쉽게 뿌리칠 수 없는 감정인가보다. 그곳에 두고 온 자신의 의미란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일 테니.
또한, 그 헌신의 대상이 사라지게 되면, 이를 대체할 다른 대상이 없는 것도 이러한 심리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S 선배는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중학교 동창이 몇 없었고, 고등학교 1, 2학년 때 방송반 활동에 너무 전념한 나머지 방송반 동기들 외에 충분한 교우 관계를 쌓지 못했다. 게다가 학업에도 큰 흥미가 없었던 탓에, 덜컥 수험생의 길에 들어서자 자신이 잘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침에 일찍 등교하여 방송반에 기계를 켜고, 쉬는 시간에 내려와 안내방송을 하고, 방과 후에 선후배, 동기들과 방송제 회의를 하며 웃고 떠들던 것들을 대체할 것이 하루아침에 없어졌으니. 마치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시집 장가를 보낸 우리네 많은 어머니들이 우울증을 앓는 것처럼 중간중간 텅 비어버린 시간을 채워줄 것이 필요했던 선배는, 결국 익숙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쉬는 시간에, 점심시간에, 그리고 방과 후에 그렇게 찾아온 것이다.
최근, 회사에 인사발령이 있었다.
인사발령은 새로운 별들이 데뷔하는 무대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오랫동안 청춘을 바쳐 일한 직장을 떠나야 하는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하다. 이번 발령에는 40년 가까이 근무하시던 높은 직급의 임원의 퇴직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회사에서는 오랜 기간 조직에 헌신한 그를 예우하여 이례적인 환송회도 열어주었다. 물론, 20대 후반부터 60대가 된 지금까지 일하던 회사를 떠나는 게 쉽지 않은 일일 줄은 알지만, 일반적인 정년을 초과하여 근무하시기도 했고, 또 후배들에게 물려준다는 마음으로 웃으며 가시는 것도 멋진 마무리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하지만 인사발령이 있은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주에도 그는 계속 회사에 출근하고 있었다. 딱히 하는 일이 없어도 자문역으로 계속 출근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변(辯)이었다. 물론 그는 순수한 의도로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오랫동안 고위 임원으로 근무하면서 아랫사람들에 대한 배려마저 잊어버린 것인지 나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오래전 고교 시절 S 선배를 떠올렸다. 물론 예전처럼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경영 일선에 나서지는 않으시겠지만, 그의 존재만으로도 새롭게 부임한 분이나 아래에서 그를 모시던 사람들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하다못해 점심을 챙겨드리는 일이나, 중요 보고 자료들을 챙겨드리는 일 등).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사 발령 통보를 받은 다음 날, 그는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원래는 기사가 집 앞으로 오기로 되어 있지만,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오랜 임원 생활로 지하철, 버스 요금도 모르는 그에게 회사 말고는 갈 곳도 없고, 만날 친구도 없다.
그래서 결국 나를 대우해 줄 수 있는 회사에 출근하기로 했다. 나를 '사장님'이라 부르는 임직원들과 비서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후배들에게 인수인계를 마치고 울며 방송실을 나온 다음 날, 그는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원래는 방송실에 들러서 청소상태를 확인하며 후배들을 갈궈야 하지만, 이제 그 후배들은 선배들이 되었다. 2년 간의 방송반 생활로 친구들은 거의 사귀지 못했고, 새로 바뀐 반의 교실 분위기는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는 결국 나의 존재를 확인해 줄 방송실에 교복 재킷을 걸치고 쉬는 시간에 내려갔다. 나를 '선배님'이라 부르며 깍듯하게 90도 인사를 하는 후배들이 언제나 있으니까.
하지만 진짜 그들에게 필요한 건 변치 않는 예우가 아니다. 사람의 인생은 적지 않은 수의 전환기를 거쳐간다. 우리는 여러 번 입학과 졸업을 걸치며 선배와 후배의 자리를 반복하여 오르내리고, 머물던 자리에서 경험을 쌓아 어느 순간 권위자가 되지만, 시간이 흘러 우리를 대체할 후배들에게 넘겨줘야 할 시기를 맞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때가 되면 인생의 새로운 변곡점을 통과할 준비를 해야 한다. 공허하기 때문에, 어떻게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에 과거에 머물며 무의미한 유예를 지속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내 자리를 이어갈 후배들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수년 전에 만났던 좋은 친구 하나를 갖고 싶어 입학과 졸업을 반복하며 학창생활을 이어가던 여고괴담의 주인공처럼 계속 퇴행적 인지부조화를 겪으며 나와 주변을 불편하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