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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 Jun 01. 2018

나의 이름은.

[Day 1] 자기소개

1.

사실 난 내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것이 내 이름입니다, 나를 이렇게 불러주세요'라고 선뜻 말하지 못 하고 내 이름을 말할 때면 숨을 한 템포 끊어 쉬며 애써 어색함을 감추는 건 내가 숫기가 없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라(그럴리가요!) 그 이름으로 스스로를 칭할 때마다 그 이름이 도저히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세상이 나를 인지하는 그 이름은 이런 생김새의 여자애가 불리기엔 너무 세련되고, 왠지 '잔뜩 사랑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이 곁눈질로 보더라도 나는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너무나 쉽게 파악당하기 때문에 그저 부끄러울 뿐이었고, (부모가 내게 '줬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애정과는 달리) '잔뜩 사랑 받은' 기억 같은 건 전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위축되거나 부러 가시 돋힌 척 하곤 했습니다.


차라리 나는, '참을 인'자를 써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인희'라는 이름이나, 부모가 상당히 대의를 품고 지었을 법한 '민주' 같은 이름이 내 이름이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이 이름들이 덜 세련됐다거나 외롭게 살아온 인생을 대변한다는 의미로 오해하지 않기를.


2.

내 이름에도 대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의미'는 있습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내게 이름을 지어줘야 했을 나의 할아버지는 내 성별이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름짓기를 거부했고, 부모는 속상한 마음으로 이틀을 끙끙대다 그 당시 엄마가 즐겨 읽던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오다혜-을 따서 내 이름을 지었다고 해요. 그녀를 따라 '기자'가 되라는 바람도 뒤따랐고요. 그래서 내가 학부 전공으로 '신문방송학'을 선택했을 때, 엄마는 내가 이미 절반쯤은 기자가 됐다고 생각해서 '우리 다혜는 기자가 될 거라고' 온동네방네 자랑을 했고 (실제로 나는 뭣도 없는 스물 한 살짜리 학부생이었음에도) 끝내 평범한 회사원의 길을 걷게 되었을 땐 상당 기간 동안 주위에 내가 방송국 직원이라는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기자가 되지 못한 다혜.

오다혜처럼 '차 다'에 '은혜 혜'를 쓰는, 용감하면서도 사랑스럽고 발랄하면서도 지혜로운,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받는 다혜가 아닌 그냥 다혜.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여전히 나는 '내 이름값'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개명을 고려하거나 할 정도는 아니지만, 본명으로 불릴 때마다 그게 나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마치 전지적 시점으로 그 이름을 '읽는 것'처럼 생경한 기분이 들어요. 그게 나라고, 그 이름에 응답할 때마다 마치 무슨 벌칙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름값을 못하는 삶을 조롱당하는 벌칙 말입니다.


3.

내 이름을 아주 새롭게 해석해낸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전 직장 동료인데, 내 이름의 한자를 보더니 "아아, 아주 좋은 이름인데요? '많을 다'를 사이에 두고 금과 지혜가 양쪽에 있어요. 돈도 벌고 명예도 얻을 이름이에요."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이름과 끝내 친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의 그래프는 꾸준히 우상향 하고 있어서, 더 이상 X-JAPAN의 도쿄돔 라이브 버전 'Art or life'를 들으며 레드와인 한 병에 취해 펑펑 울 만큼의 불행은 이제 내게 없습니다. 시점도 방법도 모르지만 '나는 어쨌든 돈과 명예를 모두 얻을거야' 그렇게 막연한, 살기 위한, 절박한, 긍정에 빠져 있을 때도,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것이 내 이름 덕분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내 이름값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4. 

이런 사연으로, (어른의 사정에 의해) 회사에서 불릴 '영어이름'을 정해야 했을 때, 나는 (그 어른의 사정 때문에 술렁이는 주변 분위기와는 별개로) 사실 조금 신났습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동안 어색하기 그지 없는 내 본명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는 사실에 마음 놓이기도 했고, (숙련된 캐릭터 설정 경험으로) '어떤 이름을 지을까'하는 설렘도 있었습니다다.


'루나'라는 이름은, 몇 가지 조건과 서치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 조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 일단은 부르기 좋게 2음절일 것

 - 영어 표기 스펠링이 간결할 것

 - 흔하지 않을 것

위 조건에 내 신상정보와 관련된 몇 가지 사실을 조합해서 만든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이름이 꽤 마음에 들어서, LUNA라고 큼지막하게 새겨진 립스틱을 사모으기까지 했습니다. 온전한 나만의 시그니쳐였어요. 확실히 '다혜'보다는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5. 

며칠 전, 잊고 있던 이름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이루나'


대학교 1학년 때, 3월의 캠퍼스에서 만난 첫 '서울 친구들'. 그 중에서 키도 크고 눈도 크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던 그 '세련된' 친구의 이름이었습니다. 이름이 특이하다, 예쁘다,는 나의 칭찬에 수줍게 눈을 내려 깔며 '아빠가 흔하지 않은 이름으로 골랐대. 스페인어로 달이라는 뜻이래'라고 말하던 낮고 차분한 목소리. 큰 눈과 큰 키 뿐 아니라 세련됨까지 물려줬을 그 아빠가 선물했다는 초승달 모양의 팬던트를 어루만지던 희고 긴 손가락. 왜 까맣게 잊고 있었지. 


내 이름값에 대한 부채의식은 '애정결핍'이라는 키워드와 연결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 채워져야 이름값을 갚을 수 있을텐데, 나는 이미 할아버지, 그 다음은 아버지로부터 애정이라는 유산을 충분히 물려받지 못했으니까요. 금전적인 가치로 따진다면 이미 상속 따윈 포기하도고 남았을, 파산직전의 상태일 겁니다. 하지만 이건 포기할 방법조차 없죠. 


문재인 대통령의 딸의 이름이 나와 같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왜 저런 아버지를 가지지 못했는지 탄식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거의 두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상념에 빈 칸이 생길 때마다 저 생각이 고개를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어쩌면 우리 엄마가 저런 남편을 만날 기회가 있지는 않았을지, 물론 그 결과로 내가 태어나지는 않았겠지... 이런 초등학교 때 이후로 해본 적 없는 생각들이요.


6.

나는 이제 '루나'라는 이름에조차 빚을 져버렸습니다. 혼자서는 이 빚을 도저히 갚을 수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이 이름값은 사랑을 적립해야 모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돈이나 명예로라도 갚아야 하는데, 나는 그저 무명의 월급쟁이일 뿐입니다.


찰스 디킨즈의 <두 도시 이야기> 속 여자 주인공처럼, 남자 주인공의 목숨값으로 얻은 사랑이라면 이 빚을 한 방에 갚을 수 있겠죠. 하지만 나는 내 남편에게 '죽어달라'고 요구하지 않을 겁니다. (현실에선 그가 살아 있어야 사랑을 얻어요, 그리고 <두 도시 이야기>에서 여주인공을 위해 죽은 남자는...아, 이건 스포일러네요!) 


그래서 나는 이 부채를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겠지만, 당신에겐 거절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애정을 구걸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나마 내가 잘 하는 거라곤, 이렇게 주절주절 내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것 뿐입니다.

내가 드릴 수 있는 거라곤 그 뿐입니다.


백 일 동안, 어쩌면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전까지요.


영화 <패터슨>에서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 씨의 이야기처럼,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이 보이는 당신과 나의 일상도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랍니다. 마냥 철부지 같아 보이던 패터슨의 아내가 블랙 앤 화이트의 세련된 장식으로 멋들어진 컵케이크를 만들어내고, 컨트리 가수 뺨치는 노래로 패터슨을 위로했던 것처럼 당신의 하루 끝에 하얀 화면 속 나의 이야기들이 검은색 음표로 펼쳐질 것입니다.


그럼 당신은 내 이름을 불러 나를 응원해주십시오.

내가 사랑 받을 가치가 있고, 내 글은 시간을 들여 읽을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세요.


바라는 건 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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