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야기의 시작

서점, 미녀, 그리고 책장

by 다래


움막 앞 굴러다니던 돌멩이 위에 존재의 증명을 새기던 그 옛날부터

‘클라우드'만 있다면 모든 장소에 존재할 수 있는 현대까지

책과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책과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보기 드문 것이 되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은

이 도시의 ‘낭만'을 캐내어 바칩니다.




판교 테크노밸리에 있는 줄기세포 연구소와 인터넷 포털 기업 사이에 위치한 10층짜리 건물은, 판교 어디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통유리 건물이지만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1층 모퉁이에 위치한 작은 서점의 존재. 이 서점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는데, 이 땅값 비싼 동네의 임대료를 제대로 감당할 수나 있을지, 그 서점에는 IT나 경영, 자기개발 서적은 하나도 없고 출간된 지 50년 가까이 된 외국 고전소설들만 취급하기 때문이었죠. 심지어 커피나 술도 팔지 않는답니다! 그 흔한 워크숍이나 독서모임도 없어요!


이름부터가 ‘테크노밸리’인 이 동네의 서점에 그나마 손님이 들락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미인에다 친절한' 아가씨가 거의 24시간 서점에 상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손님에게 “별 일 없으셨나요?”라고 안부를 물어주는 서점의 아가씨 ‘이오'의 인기 덕분에 이 삭막한 판교에 소설의 꽃이 핀다고나 할까요.


2월의 어느 날, 근처 인터넷 포털 기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공시생 ‘지우’는 우연히 들른 이 서점에서 이오의 추천으로 대실 해밋의 단편소설집을 추천받게 되고, 그날 밤 자기 전 읽은 <크게 한탕> 때문인지 책 속의 인물이 되어 ‘콘티넨털 오프’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너무나도 생생한 꿈을 꾸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찾은 서점에서, 이오는 예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지우에게 묻죠.


“별 일 없으셨나요?”


그리고 이런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 건 지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우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준 엔지니어 ‘형태’, 게임회사 총무팀에서 일하는 계약직 사원 ‘묘진’, 천재 일러스트레이터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아웃사이더에 왕따인 ‘오솔’, 권태에 빠진 젊은 회계사 ‘우진’, 야망에 가득 찬 컨설턴트 ‘세준’ 등… 우연히 들른 이오의 책방에서 접하게 된 H. P. 러브크래프트, 히구치 이치요, 제인 오스틴, 스콧 피츠제럴드 등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낭만을, 잘 알고 있었다고 착각했던 욕망을, 이룰 수 없었던 소망을 바라보게 됩니다.


저마다의 상처와 낭만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도시 노동자들에게 이오가 추천하는 책 한 권의 의미, 그리고 책장 속의 모험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리고, 이오에게는 또 어떤 상처와 낭만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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