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가 최선인가. 그것은 무엇을 남기는가.
첫째가 7살이었을 때 둘째를 임신할 수 있었다.
오래기다렸고, 두 번이나 유산의 아픔도 있었다.
출산 후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것을 선물받았다는 생각에
도파민이 솓구쳤다.
낮밤으로 신생아 케어.
낮엔 큰아이와 놀아주기.
(코로나 때라 유치원 거의 못감)
중간중간 집안일.
그러면서 매달 한권씩 책리뷰도 썼다.
임신전부터 맘카페에서 해오던 일이었다.
의뢰받아, 심지어 도서지원금까지 받으며
하던 일이라 책임감때문에
신생아가 8개월 될 때까지 했다.
2시간씩 쪽잠 자며 책을 읽고 리뷰를 썼다.
신생아가 낮잠 자고, 큰아이가 TV를 볼 때.
신생아 밤기저귀 갈다가, 내 잠이 깼을 때.
남편 출근 배웅을 하고, 아이들이 아직 자고있을
새벽 6시에.
틈만 나면 읽고 썼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내가 가장 최선을 다해 살았던 때.
모든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지금도 필요할 때 마다, 그때를 꺼내본다.
그러면 이런 효과가 있다.
최선을 다 했던 그때의 내가
노력이 필요한 순간 기준점이 된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
근.거.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인생에 그런 시절 한번쯤은 만들어 주는 것이, 내 양육목표이다.
라이프코치이자, 엄마니까.
새벽 3시30분.
오늘은 둘째의 감기 기침으로 내가 잠이 깨서, 글을 쓴다.
그때의 내가 떠올라서.
그때의 내가 멋있어서.
ㅡ 시작을 돕는 라이프코치, 지금코치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