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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Jan 13. 2022

당신의 주민등록번호는 안녕하시죠?

출생신고와 주민등록번호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규임용 인사발령 통지서를 열었는데 생각지 못한 곳으로 발령이 났다. 20년 넘게 거주한 A면도 아니고 당시에 살던 B면도 아니었다. 인사팀에선 생뚱맞게도 나를 C면으로 보냈다. 꼭 연고에 따라 근무지를 배치하란 법은 없지, 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C면도 엄마가 예전에 근무하시던 곳이긴 하다. 기억에는 없지만 내가 세 살 때까지 살던 곳. 


출근하고 민원대에 앉고서야 깨달았다. 이곳이 내 출생지이기도 하다는 걸.


지금은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지역번호 대신 임의번호가 부여된다지만 2020년 10월 이전에 주민번호를 부여받은 사람은 뒷자리에 지역번호 네 자리가 들어있다. 민원 업무를 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주민번호를 본다. 자연스레 이 지역 토박이와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 구분된다. 그러다 보니 어라, 내 주민번호 뒷자리가 이 지역 토박이들과 같지 않은가. 엄마가 당시에 여기 근무하면서 나를 낳으셨으니 출생신고도 여기에서 한 거였다. 


사람이 태어나면 할 일이 아주 많은데 그중 하나가 출생신고다. 출생신고 이후에야 가족관계등록부에 이름을 올리고 주민번호를 부여받아 법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이 되는 셈이다. 


워낙 인구도 적은 데다 고령 인구비율도 높아 C면에서 출생신고는 연례행사나 다름없었다. 어느 집 딸내미가 아들을 낳았다더라, ㅇㅇ마을 이장님이 손주를 보셨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금세 면사무소에 도착했다. 그러면 주민등록담당인 나와 우리 계장님은 일찍부터 긴장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자주 하는 업무가 아니다 보니 하는 방법을 까먹고 나면 새로 출생신고가 들어왔다. 틈 나면 편람을 앞에서부터 읽어보는데도 그랬다(물론 출생신고는 편람 앞부분에 나오긴 하지만). 아무래도 실전에서 단련된 사람들과는 숙련도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며칠이 지나 예고된 일이 일어난다. 이장님은 환한 얼굴로 들어오셔서는 손주 자랑을 늘어놓으시고, 그동안 나는 다시 책을 펼쳐 절차를 꼼꼼히 확인하고는 업무를 본다.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하고 기본증명서가 나오도록 법원에 신고서를 송부하는 건 계장님의 역할이지만 주민등록번호를 '따는' 건 내 몫이다. 


근무 당시만 해도 매년 정부에서 내려보내 주는 종이로 된 주민등록번호 조립부가 있었다. 평소엔 이중 금고에 보관하는 조립부를 꺼내어, 방금 부여한 번호에 동그라미를 친다. 부여한 번호는 수기로 관리하는 주민등록번호 부여대장에 기재한다. 무려 손으로 적는다! 몇 번 안 되는 출생신고를 할 때마다 손이 떨렸다. 관용적 표현이 아니고 실제로. 주민등록번호 부여에 문제가 있으면 몇십 년 전 것도 다시 꺼내어 사본을 보내줘야 한다. 내가 쓴 이 기록이 먼 훗날 언제고 쓰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덜덜 떨면서 담당자 칸에 내 이름을 적었다. 그러고 나면 전산처리는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출생신고에 문제가 있었던 경우가 많다. 문제가 많아서 지금의 방식으로 바뀌었으려나? 나이가 잘못된 경우는 예사다. 양가 부모님 중에 아빠 빼고는 생년월일이 맞게 출생신고가 되신 분이 없다.


우리 형님은 이름이 조금 남성적이신데 그 탓인지 담당 직원이 출생신고 때 남자로 신고했다고 한다. 두 살 즈음 병원에 갈 일이 있어 그제야 아셨다나. 딸이 아들로 호적에 올라 있어 황당했을 어머님의 심정보다는 그런 사고를 치고 수습해야 했을 직원의 마음에 더 이입하게 되는 건 주민등록 업무를 본 경험 때문일 테다. 법원에 가서 증거를 제출하고 난리도 아니었단다.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그분은 진작에 퇴직하셨겠지만 지역이 같으니 남일 같지가 않다. 


내가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한 아이들은 평생 그런 문제 없이 지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왕이면 건강하면 더욱 좋고.




p.s. 2017년도 주민등록 사무편람을 보면서 근무한 세대(?)입니다. 민원업무를 본 지 몇 년이 지나 현재 업무내용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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