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모솔새 Jan 10. 2022

면사무소로 가는 한 가지 방법

지하철도 시내버스도 없는 그곳에서

대학생일 때, 나는 어떤 직장에 다니게 될지도 몰랐으면서 막연하게 출퇴근은 지하철로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아니면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시골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그건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일단 지하철이 있어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지 않겠는가?


지하철은 당연히 없고 농어촌 버스가 하루에 겨우 서너 번 다니는 곳이니 취직은 곧 운전을 뜻했다. 그 전까지 나는 운전석에 앉은 내 미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조차 없었으므로 운전해서 출퇴근을 한다는 건 큰 부담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딴 운전면허는 말 그대로 장롱면허여서 운전 연수도 따로 받아야 했다. 이내 내 운명이 결정되었다. 첫 발령지는 집에서 차로 30분 걸리는 곳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도시의 통근자분들께, 시골의 거리 감각은 도시와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잠깐 알려드리려 한다. 서울에서 30분은 환승이 없다면 잠깐 넋 놓고 있으면 도착할 거리지만 여기서 30분은 꽤 먼 거리다. 교통 체증이랄 것도 없으니까 시속 60km 정도로 달릴 수 있다 치면 거의 30km가량 떨어져 있는 셈이다. 조금만 더 가면 다른 도시에 갈 수도 있다. 아무튼 첫 발령지는 우리 지역 내에서는 상당히 먼 곳이었다는 뜻이다.

집에서 출발해서 산을 2번 넘으면 면사무소가 나왔다. 엄마와 예행연습을 두 번 하고도 혼자서 첫 출근하는 날은 무척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설상가상 출근 며칠 만에 면장님과 나, 또 다른 신규 직원 하나가 관할지역을 한 바퀴 돌게 되었다. 신규 직원들에게 면 지리를 익히게 하겠다는 명목이었다. 참고로 관용 차량으로는 1톤 트럭 한 대가 있는 상황, 과연 누가 운전을 해야 할까. 최연장자이면서 최고직위이신 면장님? 아니면 2종 보통면허만 있는 동기 언니? 내 운전 실력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지만 나에게는 1종 보통 면허가 있다. 당연한 수순으로 그날 운전대는 내가 맡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마을을 빠져나오다가 후진하며 트럭 뒤를 살짝 박은 건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정 운전이 어려우면 카풀을 하는 방법도 있고, 발령지에 숙소가 될 만한 시설이 있으면 아예 면사무소 근처에 거주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운전을 피할 수 없는 건 출장 때문이다. 업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면사무소 공무원은 출장이 잦은 편이다. 고유 업무 때문에 현장방문을 하는 일 외에도 본청에 교육을 간다든가, 수령할 물품이 있다든가, 산불조심 점검을 한다든가, 민원이 들어와서 현지 확인을 한다든가 하는 일들을 위해서는 자동차가 필수다. 가까운 곳이라 한들 자전거를 타고 갈 수는 없잖은가. 심지어 점심을 먹을 때에도 직원들이 차를 타고 주변의 (상대적) 번화가로 나가야 한다. 면사무소에서는 운전도 직장생활 필수 기술이다. 그것도 생존 기술. 


출근 일주일도 안 되어 관용차량에 흠집을 내고 말았던 신규 직원은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운전을 잘 못 한다. 새로운 곳에 갈 때에는 무척 긴장하고, 다니던 장소라도 옆에 누군가를 태우게 되면 몸이 바짝 굳는다. 살면서 운전이 이렇게나 중요한 줄 알았더라면 더 열심히 배워둘 걸 싶다가도 타고난 운전 감각이 없는 걸 어찌하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십 년쯤 지나면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여기서 운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니까, 조금이라도 실력이 늘기를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 위의 동물들은 어디로 가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