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름은 욕심을 덜어내는 데서 시작된다.
브랜드 네이밍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이런 요구를 자주 듣는다.
“이 모든 강점을 이름에 다 담았으면 좋겠어요.”
“닷컴 확보가 되어야 합니다.”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상표 등록이 되어야 해요.”
“혹시 모르니까 최대한 많은 상품류에 등록하고 싶습니다.”
“하나로 의견이 모이지 않습니다. 과반수가 좋아하질 않아요.”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데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네이밍으로 월급 받는 사람으로서 그 누구보다 자신 있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원하는 모든 것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이름은 불가능하다’라는 것이다.
좋은 이름은 모든 것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브랜드의 방향을 명확하게 가리키는 깃발이어야 한다. 늘 브랜드를 위해 고심하고 있는 실무자, 결정권자, 창업자에게 브랜드 네이밍을 위한 네 가지 기준을 소개한다.
1. 모든 것을 담고 싶어요 - 욕심을 덜어야 선명해진다
브랜드의 가치, 철학, 비전, 제품 특징까지… 모든 것을 다 담고 싶어 하거나, ‘알기 쉽지만 새로운 듯한 이름’처럼, 양 극단의 특징을 모두 표현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걸 담으려 하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름은 핵심의 압축이지, 소개서의 요약본이 아니다.
제설제 브랜드의 이름을 짓는다고 생각해 보자. 이 제설제는 성분도 친환경적이고, 도로의 부식 반응도 적고, 눈을 녹이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이 모든 장점을 이름에 다 담을 수는 없다. 좋은 이름은 선택의 결과이다.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친환경 성분을 강조할 것인지, 부식률이 낮다는 것을 강조할 것인지, 아주 손쉽게 눈을 녹일 수 있다를 강조할 것인지를. 이 브랜드가 진짜로 세상에 던지고 싶은 한 가지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을 찾는 순간, 이름은 선명해진다.
2. 애플 같은 이름은 안 되나요? – 신생 브랜드의 착각
‘애플’ 같은 이름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클라이언트에게 ‘애플’ 같은 이름, 즉 사업 영역이나 브랜드의 특징과는 상관없이 아주 상징적인 이름 ‘체리’를 제안한다면 백이면 백 모두 질타를 할 것이다. 물론 전략적으로 그런 이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 같은 이름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는 전략적 판단보다 착각인 경우가 많다. ‘애플’이라는 이름이 멋져 보이는 이유는 ‘애플’이라는 브랜드 때문이다. 즉 이름 그 자체보다, 그 위에 쌓인 수년간의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다. 이미 성공한 브랜드의 결과를 이름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현재 우리의 맥락에서 어떤 이름이 전략적으로 유효한가를 판단해야 한다. 아무것도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성공한 브랜드처럼 보이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이름은 브랜드의 시작점이지, 결과물이 아니다. 신생아에게 어른의 옷을 입혀서는 안 된다.
3. 완전무결한 이름을 지어주세요 – 문제를 극복할 전략이 우선이다
한 대기업의 북미 법인의 이름을 짓는 프로젝트를 한 적 있다. 약 1년 동안 8차례 제안을 했지만 결국 어떤 이름도 결정짓지 못하고 프로젝트는 종료되었다. 제안되었던 후보안이 거절된 이유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가 가장 많았지만, ‘닷컴(.com) 확보가 되지 않는다’도 있었다. 이름도 괜찮고, 상표도 등록 가능한데, 고작 닷컴 확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포기하다니… 정말 안타까웠다. 요즘 누가 주소창에 직접 도메인 주소를 치고 접속하는가. 보통 검색 엔진을 통해서 들어간다. 물론 브랜드 네임.com 으로 도메인이 확보가 되면 가장 좋겠지만 이름을 결정할 때 우선순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닷컴이 아니더라도 다른 확장자를 적용한 도메인이 매력적인 경우도 많다. 구글의 지주사 알파벳의 도메인은 www.abc.xyz 이다.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은 브랜드 네임을 새로 개발할 때 기본적으로 상표 등록을 고려한다. 그래야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으며 자산화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보안을 제안할 때는 상표 등록 가능성을 검토한 후에 등록 가능성이 높은 안들만 제안하게 된다. 문제는 너무 많은 국가에 상표 등록을 원하든가 상관없는 상품류까지 무리하게 등록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수출을 하는 국가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제품이 해당 영역에서 상업적인 활동을 할 것이기 때문과 같은 명확한 이유 없이, 할 것 같아서, 혹시나 해서라는 이유로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상표법은 유사성을 기준으로 등록 여부를 판단하는데, 여기서 유사성은 심사관의 주관적인 판단이고 범위가 매우 넓다. 고려해야 하는 국가 수와 상품류 수가 늘어날수록 유사한 상표들을 피해야 하는 경우도 늘어난다. 네이밍의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어떤 이름이라도 어느 한 국가 이상 유사한 이름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을 늘 경험했다. 세계는 아주 넓고, 사람의 생각은 비슷하고, 등록된 상표는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모두가 원하는 짧고, 발음하기 쉬운 이름은 이미 등록되어 있거나 유사한 상표가 이미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전략적 판단으로 상표를 출원할 국가와 상품류를 지정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이유다. 2021년 10월, 페이스북은 메타로 사명을 변경했다. Beyond의 의미를 가지는 접두사 Meta. 짧고, 발음하기 쉽고, 기억하기 얼마나 쉬운가. 게다가 기업의 비전과도 너무 잘 연결된다. 처음 이 이름을 보고 들었던 생각은, ‘이게 등록이 될까?’였다. 아니나 다를까 페이스북은 ‘meta’라는 상표를 원소유주로부터 400억 원에 인수했다. 동일한 상표가 이미 등록되어 있는 상황에서 페이스북은 그 상표를 아예 구입하는 것으로 문제를 극복했다. 그러나 모든 기업들이 메타처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름은 현실의 제약 안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없느냐가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관리하고 극복할 수 있느냐이다. 완벽한 이름을 찾기보다 완벽하게 맞는 방향으로 이름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4. 모두가 좋아해야 합니다 – 취향과 다수결이 아닌, 전략으로 결정하라
이름을 결정할 때 큰 함정은 바로 다수결이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후보안이 압축되면, 내부 구성원들에게 선호도 투표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은 것은 이해하지만, 투표를 통해 이름이 순탄하게 결정되는 경우는 잘 없다.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데요?” 라며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파국적 결말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브랜드 네임 후보안을 과정까지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다. 후보안을 처음 접하는 구성원들은 처음부터 긴 호흡을 가지고 과정을 지켜봤던 유관 부서와는 달리, 깊게 고민하기보다는 개인의 취향으로 선택한다. 브랜드 네임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전략적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좋다/싫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브랜드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관성이 있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생각과 취향이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듯이, 모두가 좋아하는 이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과반수가 아니라 49:51만 되어도 그 이름을 선택하라고 추천한다.
좋은 이름은 완벽한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브랜드 네이밍의 목표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타협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날을 뾰족하게 만드는 ‘선택’을 잘하는 것이다. 결과가 아니라 선택을 해 나가며 브랜드를 더 선명하게 만드는 것. 우리의 전략적 선택이 결국 고객에게 선택 받는 브랜드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