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어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브랜드 언어의 기술
나는 쇼핑할 때 쿠팡보다 네이버를 더 이용한다.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의 초창기 가입자로서 혜택이 괜찮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구매할 때 마다 적립금이 쌓이는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고, 100원 단위, 1% 단위의 쪼잔한 적립금이 아니라 확실한 이득이 느껴졌다.
고양이 캣타워를 찾고 있어서 네이버플러스 스토어 어플에 접속을 했는데, 들어가는 브랜드마다 ‘넾다세일’을 한다고 팝업이 떴다. ‘넾다세일’을 처음 보고 든 생각은, ‘내가 아는 그 냅다인가? 넾다가 표준어였나?’ 였다. ‘냅다’는 ‘몹시 빠르고 세찬 모양’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부사이다. 비슷한 말로는 ‘마구, 막, 들입다’가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냅다’가 맞았다. 그런데 네이버는 왜 ‘넾다세일’이라고 했을까?
찾아보니 네이버의 '넾다세일'은 기존 ‘네이버쇼핑 페스타(네쇼페)’를 새롭게 리브랜딩한 행사로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의 초성 '넾'을 활용해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년 중 가장 풍성한 상품 라인업 및 할인 혜택과 한층 강화된 쿠폰 등을 제공한다고 광고하고 있다.
‘넾다’는 3가지 효과가 있는 이름이다.
- 즉각적인 행동 연상 : ‘몹시 빠르고 세찬’의 뜻을 가진 ‘냅다’가 바로 떠오르면서 아주 빠른 속도감, 거침없는 에너지, 순간적인 파워가 느껴진다. 근데 뒤에 바로 ‘세일’이라는 말이 붙으니, 세일도 엄청 많이 해주는 것 같다. 규모도 거대하게 느껴진다. 왠지 모르게 빨리 사야 할 것 같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될 것 같다. 행동을 자극하는 이름이다.
-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에너지 발산 : 표준어인 ‘냅다’를 쓰지 않고 ‘네이버플러스’를 활용해서 ‘넾다’라고 수정했다. 초성을 활용한 네이밍을 통해 언어 유희적 접근을 했다. 익숙하지만 신선하며, 경쾌한 느낌도 있다. ‘쇼핑 축제’에 어울리는 언어다. 소비자들에게도 친근하고 유머러스하게 와닿는다.
- 브랜드 정체성 연결 : 네이버의 ‘네’가 포함되면서 시작하여 모브랜드의 정체성을 언어적으로 연결시킨다.
위의 이유들로 ‘네쇼페’보다 ‘넵다세일’ 이라는 이름이 훨씬 좋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참여를 부르는 네이밍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 감각적 언어 – 감각을 자극 하는 언어
강한 발음, 짧은 리듬, 익숙하면서 신선함과 같은 자극은 이성보다 감각이 먼저 반응하게 만든다. 정보 중심이 아닌 감각 중심으로 표현해야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 생각하게 할 시간이 어디있나? 단어 자체로 시선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참여를 부르기 위해서는 ‘네이버쇼핑페스티벌, 네쇼페’처럼 정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넾다세일’과 같이 브랜드만의 리듬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먼저 꽂혀야 한다. 이런 이름은 단어 자체가 브랜드의 버튼이나 인터페이스처럼 작동하는 감각적 UX가 될 수 있다.
2. 공감적 언어 – 너와 내가 쓰는 언어
공감이라는 것은 너와 내가 같은 것을 느꼈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건 결국 같은 시대를 산다고 느끼고, 같은 맥락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당신이 느끼는 것을 우리도 똑같이 느낀다’는 태도로 말할 때, 그 언어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킨다. 브랜드를 같은 세계에 속한 존재로 느끼면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팬이 되고, 그가 하는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브랜드가 타깃 세대의 언어로 말할 때, 그 브랜드는 같은 세대의 감각으로 읽힐 수 있다.
2018년 출시했던 CU의 디저트 케이크 ‘ㅇㄱㄹㅇ ㅂㅂㅂㄱ(이거레알 반박불가)’는 출시 3개월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개를 돌파, 당시 디저트 카테고리 매출을 3배 이상(210.6%) 끌어올리는 인기 상품이었다. 24년에는 6년 만에 재출시를 하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주 소비층인 2030세대의 최신 코드에 맞춰 ‘부제’를 지은 것이라고 한다. 브랜드의 메시지 보다는 일시적인 유행에 편승한 사례지만, 초성을 사용한 네이밍으로 입소문이 퍼진 점은 공감적 언어의 힘을 보여준다.
팔도는 35주년 기념으로 팔도비빔면을 야민정음식(한글 자모를 모양이 비슷한 것으로 바꾸어 단어를 다르게 표기하는 인터넷 밈 : 명작->띵작, 멍멍이->댕댕이) 표기로 바꿔 ‘괄도네넴띤’으로 한정판을 출시했다. 23시간 만에 7만5000세트 전량이 완판시켰다. 기발하고 재밌다는 반응과 한글 파괴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았다. 이처럼 공감적 언어는 세대별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전세대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언어가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2030 세대가 즐겨 쓰는 밈, 육아를 하는 40대 부모의 생활 언어, 70대 어르신들에게 익숙한 표현이 모두 다르다. 브랜드가 공감적 언어를 네이밍 전략으로 택했다면, 무엇보다 브랜드의 타깃을 먼저 명확히 하고, 그 타깃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의 결을 고심해야 한다. 무작정 유행만 좇는 네이밍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무관하게 휘발될 수 있다. 공감적 언어는 유행이 아닌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그렇게 탄생된 언어는 마음에 오래 남을 것이다.
3. 몰입적 언어 – 브랜드를 체험하게 하는 언어
몰입적 언어는 단어 하나로 브랜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언어이다. 읽는 순간 몰입할 수 있는 브랜드 씬(scene)을 제공한다.
2016년 SSG.COM은 브랜드 인지 강화를 위해 SSG=ㅅㅅㄱ '쓱' 이라는 메시지를 선보였다. '쓱'은 빠르고 한번에 다양한 서비스를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이미지 소구를 통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브랜드 경험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손가락으로 쓱 탐색을 하고 결제창을 쓱 미는 순간. ‘에스에스지닷컴’을 ‘쓱’이라는 부사 하나로 브랜드 씬을 완성한 것이다. 간편함, 세련됨, 기발함, 빠름 등의 이미지도 따라왔다. 엄밀히 말하면 ‘쓱’은 브랜드 네임이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쓱’이라고 하지 ‘에스에스지닷컴’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25년 3월, 숙박 앱 ‘야놀자’는 인터파크트리플과 통합되어 통합 법인명 놀유니버스(Nol Universe Co., Ltd.) 아래에서 플랫폼명을 ‘놀(NOL)’로 바꾸며 ‘나의 세계를 놀랍게’라는 슬로건으로 커뮤니케이션했다. ‘숙박 앱’이라는 한정적인 이미지를 제거하고 여행 · 여가 · 문화 카테고리를 아우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야놀자’가 사람들에게 외치는 것이라면 ‘놀’은 앞의 ‘야’가 빠지면서 보다 보편적이고 상징적인 언어가 되었다. 사실 ‘놀(NOL)’이라는 단어가 앞의 ‘쓱’ 사례처럼 완성된 몰입형은 아니다. 그 단어 자체로 여가의 감각이나 여행의 여정 등이 생생히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자’가 빠지면서 특정 세대나 말투의 느낌을 벗어나 보다 확장 가능한 열린 언어로 진화하였다. 이는 ‘누구나 마음 편히 놀 수 있게’라는 브랜드 미션 중 ‘누구나’에 부합하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제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은 ‘놀(NOL)’이라는 단어 안에 여행 · 여가 · 문화의 실제 경험을 채우는 것이다. 마침 해당 카테고리는 경험 그 자체가 중심이 되는 산업이다. 사람들이 각자의 ‘놀’라운 순간을 체험할 수 있을 때, ‘놀(NOL)’은 진정한 몰입적 언어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몰입적 언어는 브랜드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 브랜드를 통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고, 어떤 감각을 느낄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한 단어만으로도 브랜드 경험의 지평을 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