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박도 Mar 08. 2024

30년차 방송작가가 지켜온 두 가지 가치관

<박도수기> 메인작가와 막내작가의 대화기록 

몇 몇 사람들에게 선배가 되었지만 스스로 선배인가 생각하면 부끄러운, 후배로서 누군가를 공경하며 모시기에는 나 먹고 살기에도 급급한, 이래저래 아무도 아닌 것 같은 나이가 되었다. 후배에게 연락이 와도 “내가 낼게~”하며 턱 하고 비싼 밥을 사기엔 쫄리고, 선배에게 연락해서 밥을 얻어먹기에도 애매하다.  


“박도야, 어떻게 지내? 오랜만에 생각나서 연락한다.” 


대선배 한작가님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이게 얼마만이던가. 한작가님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 KBS 책 프로그램 막내작가로 일할 때 모시던(?) 상사였다. 보통 PD, 메인작가, 막내작가, FD 이렇게 넷이 팀을 이루는데, 선배들은 대체로 나와 경력이 20년차 차이가 나는 분들이었다. FD와 나는 앞에서 쭈구리, 뒤에서도 쭈구리로 그저 시키는 일을 했다. 다만 모 피디는 개새끼였다. 책 프로그램인데 난독증이라는 이유로 책도 안 읽고 컨펌을 받으려고 가면 욕부터 해대기 일쑤였다. FD에게는 쌍욕을 하며 비디오 테이프를 던지기까지 했다. 지금 같았으면 그런 사람도 웃으면서 대할 수 있을 텐데 (과연?) 그때는 순수한 사회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맨날 옥상에 올라가서 질질 짰다. 그리고 결심했다. ‘피디가 돼서 저 인간처럼 수신료로 낮술먹고 탱자탱자 놀자!’ 


하지만 방송3사의 언론고시를 통과하기가 어디 쉽던가. 나는 퇴사 후 시험준비겸 스터디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방황하다가 2년 후 SBS 동물농장의 애니멀봐 채널 운영팀 초창기 멤버로 채널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계약직 에디터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때 복도에서 스브스 다큐를 준비하시던 한작가님과 마주쳤다. 


“박도야 너 여기에 있었니? 요즘 뭐하고 있어?”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피디 된다고 그만두더니 별볼일없이 저러고 살고 있었나보네. 쯧쯧’ 단순하고 따듯한 안부가 그때는 그렇게 들렸다. 꼬인 것이 도무지 풀리지 않은 채 살다가 죽을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그후 거의 7년 만이었다. “문서 파일 정리하다가 네 자기소개서를 다시 봤어. 생각나서 연락한다~”


카톡 한 문장이 ‘얼음땡’하고 나를 녹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평소에 하지 않던 카톡을 그것도 장문으로 보내고 전화까지 드렸다. 마침 한국에 들어가니 만나달라고도 애원했다. 그 긴 시간동안 내가 변한 게 실감이 났다.


둘이서 밥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작가님을 만나는 것이 소개팅을 넘어서 집안 대 집안으로 연결된 맞선자리 만큼 묵직하게 와닿았다. 긴장한 탓인지 그 좋아하는 귀한 간장게장을 먹다가 체해서 두 번이나 화장실에 가서 토를 했다. 그러면서도 작가님과 저녁을 먹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아서 2차까지 가서 온갖 질문을 해댔다. 


“선배는 30년 동안 작가일을 하면서 어떠셨어요?” 


작가님은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 일이 너무 즐겁고 재미있다고 웃었다.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어 홀로 키우던 딸을 결혼 시킨 중년의 나이. 나는 작가님처럼 그렇게 해맑게 웃으며 일을 사랑한다고 하는 분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었다. 이 장면이 꽤 오래 나에게 각인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선배님, 인생을 저보다 오래 사셨잖아요. 경력도 엄청나시고. 선배가 깨달은 것, 인생에서 중요한 것 그런 거 다 저한테 알려주세요! 너무 궁금해요!”


작가님은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넌 그때도 참 독특했어.”라고 서두를 열었다. 그 후 덧붙인 한 마디가 나를 쿡 찌르는 것 같았다. 


“결국 중요한 건 두 가지더라. 관계와 긍정. 그것 밖에 없어. 인생은”  


관계와 긍정이라


요즘 내가 하는 생각도 마침 비슷했는데 이유는 워낙에 쓰레기같은 관계가 많았고 그로인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그 반대인 좋은 관계와 긍정이 저절로 너무 간절해졌다. 이렇게 한 마디로 정갈하게 요약하는 법은 몰랐다. 심장이 계속 쿵쿵 뛰었다. 


작가님은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긴다. 인연이 끊기는 게 당연한 사람들의 경조사부터 혼자 친정엄마의 친구들 열댓명을 모시고 매년 효도여행을 떠나기까지 한다. 1년 남짓 일했던 한낱 막내였던 나에게도 기꺼이 먼저 손내밀어 다정한 안부를 묻는다. 30년 동안 막내작가를 100명도 넘게 봤던 분이 그렇게나 사람을, 관계를 챙길 줄은 상상도 못했다. 


“모든 관계에 진심을 다할 순 없잖아요. 사는 게 바쁘고 또 일도 엄청 많으셨잖아요. 근데 어찌 그렇게 다 평생을 챙기셨어요? 좀 쉬고 싶지 않으셨어요? 모두에게 친절하게 할 때 마음이 힘들지 않았어요?”


작가님은 자신이 정한 기준 하에서, 자기 자신을 챙기는 선에서 관계를 위해 애썼다고 했다. 그러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를 지켜나가는 자기만의 방식을 찾게 되어 스트레스가 되는 관계는 끊기보다는 적당히 두른 테두리 안에서만 신경을 쓰는 것이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 그렇듯 상처받으면서 성장해나갔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었다. 


“그럼 두 번째 가치인 ‘긍정’ 이것도 더 설명해주세요!”


계속 질문을 하다보니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 제자의 질문공격이 살짝 떠올랐다.


선배는 말 그대로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이 중요하다고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아온 경험에서 오는 강한 신념이 느껴졌다.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들과 맺은 묵은 관계를 끊고나니 나도 부정적인 기운에서 회복이 되며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기에는 아직도 연습중이라서 말해도 될까 싶지만 단순하게 내가 요즘 생각하는 생활 긍정연습을 적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심플 생활 긍정연습 12가지>


1. 어떤 일이 일어나도 누구도 탓하지 않기

2.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기

3. 좋은 일이 올 거라고 믿기

4. 안될 가능성에 대해 아예 생각하지 않기

5. 나는 된다, 나는 할 수 있다, 딱 이 생각만 하기

6. 삶에 감사하기

7. 토달지 않기

8. 내 사람들을 신뢰하기

9. 나와 내 사람들의 선택을 믿고 지지하기

10. 운동으로 다져지는 건강한 신체에 깃든 건강한 정신을 믿고 운동하기 

11. 멋진 미래를 상상하기

12. 추측하지 않기



그러니까 내가 연습하고 있는 긍정법이란 쉽게 말하면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노출되어온 부정적인 것을 배척하는 것이다. 왜 주변에 유독 불평불만이 많고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지 않나. 정확히 그 사람들과 반대로 살거나 되도록 어울리지 않아야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영향을 받아서 부정적인 사람들을 보면 특히 더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었다. 손절하기 힘든 관계라면 나 자신의 벽을 만들어서 나쁜 말들을 배척하고 용기내서 나를 보호해야 한다.


긍정적으로 살자, 라는 말처럼 뻔하지만 실천이 어려운 말도 없다. 하지만 삶에서 그보다 중요한 대단한 말도 별로 없다. 관계와 긍정. 마음에 타투로 새긴다. 더 잘 살고 싶으니까. 





소식1.


작가 박도의 세 번째 에세이 <홈페일기 뉴욕편>이 출간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 외에는 홍보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은 터라 이렇게나마 소식 전합니다. 제 인스타그램 @hem_allowing 에 오셔서 후기도 확인하실 수 있으니 구독과 팔로우 및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forms.gle/X99sUzL2U5bzxeXe9


작가의 이전글 3년치 뉴욕의 기쁨과 슬픔 <홈페일기 뉴욕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