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찾아온 휴식

휴직계를 내던 날

by 지오바니

항상 꿈만 꾸던 일이었는데 일주일만 있으면 현실이 된다니...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학교 앞에서 아이 친구 엄마들과 소소하게 수다도 떨고, 그러다 마음 맞는 사람이 생기면 함께 우아하게 브런치도 먹고, 아무 때나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훤한 대낮에 요가나 필라테스를 할 수 있는 삶.

13년 차 워킹맘이 그리는 휴직은 그런 삶이다. 물론 그 기세를 맹렬히 떨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이와 같은 소소한 행복이 가까운 시일 내에 현실이 되기는 요원해 보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100% 자발적인 휴직은 아니다.

한국 직장인들 중 쉬고 싶다고, 힘들다고 휴직계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게다가 막상 휴직계를 낸다고 해도 이를 순순히 받아주는 회사는 더욱이 찾기 힘들다. 휴직 승인이 아닌 사직서를 들이밀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듯.


5년 동안 맡아서 운영하던 국제기구의 프로젝트가 종료되었다.

시작할 때부터 언제 끝나는지 알고 있었지만 종료 후 새로운 론칭 시점까지 1년이라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내 마음에 휴직이라는 당찬 꿈이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엄청난 대학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치열한 삶을 살았을 때부터 꼽자면 꼬박 17년을 쉼이라는 것과 먼 삶을 살았다. 이런 내게 휴직이라는 단어는 달콤한 꿀과 같은 휴식의 상징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의 잉여를 감당해야 한다는 압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평생 나에게 다시는 오지 않을 절호의 찬스라는 것을 내가 모를 리 없었다. 마침 팀장 보직을 맡고 있는 나를 1년 동안 다른 팀에 팀원으로내기 곤란했던 회사는 내게 휴직을 제안했고 난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 휴직계를 제출했다.


하지만 휴직이 결정되자마자 벌써부터 '1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후회하지 않을까' 라며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며 아침마다 책을 읽을까? 운동은 규칙적으로 매일 1시간씩 러닝을 하면 충분하겠지? 이제껏 못했던 엄마 역할에 충실하게 요리에도 취미를 좀 붙여볼까?'

휴직을 해도 시간은 여전히 24시간인데 업무와 통근에 사용했던 하루 11시간이 '날 좀 채워줘!' 라며 빈 시간표를 들이미는 것만 같다.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 나에게 꼼군(우리 아이 아빠다.)은 "일단 조금 쉬어, 그동안 힘들었잖아. 조금 쉬고 생각해도 늦지 않아" 라며 안쓰러운 눈빛을 보낸다. 나 스스로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나의 성향을 알기에, 예상치 못하게 내가 선택한 휴직이라는 카드에 짐짓 놀랐던 그는 이제 이 시간이 나에게 있어 쉬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가 되길 바라고 있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며 생각을 좀 정리할 시간을 갖기 위해 다음 달 제주에서 안식월을 보낸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예상과 달리 해방감보다는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쉼을 배우기 위한 이 여정의 첫 단추를 잘 꿰어 1년 후에는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한 사람이 되어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