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첫날. 하지만 내 몸은 여전히 지난 10여 년 간의 루틴에 맞춰져 있다.
6시 30분이 되자 자동으로 퍼뜩 눈이 떠진다. 7시가 되니 배가 고프고, 9시가 되니 무얼 해야 할지 몰라 결국 컴퓨터 앞에 앉아 한 동안 시간을 보냈다.
회사에서의 시간은 모든 것이 내 컨트롤 아래 있었다.
1분 1초 단위까지는 아니어도 최소 한 시간 단위로 할 일이 계획되어 있었고, 그 미션들을 완수하는 순간을 즐겼다.
일단 출근시간보다 30분-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 회사 주변을 빠르게 산책을 하며 TED TALK을 듣고 각종 기사를 검색한다. 출근 후엔 따뜻한 차 한 잔 하며 처리 못한 이메일에 회신을 하고 때때로 회의도 하며 대부분의 오전 시간을 보낸다. 점심 먹고 동료들과 산책하며 소소하게 사는 얘기도 하고, 늘어지기 쉬운 오후 시간은 가장 집중력이 필요한 업무에 할애한다. 한참 집중을 하다 보면 어느새 가장 견디기 힘든 오후 3-4시 마의 벽이 깨져 있기 때문이다.
오랜 습관이 되어버린 이러한 루틴에 더해 강박에 가까운 나의 시간관념은 단 5분도 허투루 보내는 걸 허용치 않았다.
이런 내게 갑자기 구멍이 생긴 듯한 하루는 당황의 연속이다.
학원에 간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나 대신 언제나 아이 픽업을 책임졌던 어머니에게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이제 제가 하면 된다고 큰소리치고 나왔다. 그러다 이내 아이가 다니는 아파트 단지 내 공부방이 몇 동 인지도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끝나는 시간이 자주 변동되는 탓에 어머니는 항상 그 앞에서 아이가 나올 때까지 몇십 분을 그냥 기다리셨다고 한다. 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반응은 '말도 안 돼'였다. '왜 그렇게 비효율적인 일을 하신 거지? 학원 선생님한테 끝날 때 연락을 주라고 하면 되잖아'.
하지만 곧 아이 공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이 추운 겨울에 밖에 서서 매일 같이 이제나 저제나 아이가 나오길 기다렸을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졌다. 손녀가 배고플까 양손 가득 간식을 들고.......
모든 일이 효율성으로 그 가치를 평가받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
언 손을 불어가며 아이를 기다리는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이제부터 나의 시간은 이전과 다른 속도와 개념으로 흐르게 되리란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토록 싫어하던 기다리는 법을 연습해야 하고 어쩔 땐 그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설렘일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