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역할에 적응하기

삼시 세 끼의 위엄

by 지오바니

습관이란 건 참 무섭다.

부모님과 살면서 아이를 봐주시는 것도 모자라 집안일도 거의 다 해 주시기에 내가 하는 일이라곤 고작 설거지와 청소 정도다. 그렇기에 스스로 워킹맘이라고 칭하면서도 '워킹'은 맞는데 '맘'에 할당된 역할에 대해선 항상 자신이 없었다.


제주에서 안식월을 보내며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 것이 이렇게 큰 일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밥을 항상 엄마가 해주셨기에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밥이 없다는 걸 생각 못 했던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제 점심 먹을 시간이네~, 밥 먹을까" 라며 밥통을 여는데 생각해보니 이 곳엔 밥을 해줄 사람이 없다. 내가 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밥통은 까만 빈 바닥만 빼꼼히 보여준다.


배고프다며 밥 달라는 아이의 말에 놀라 서둘러 쌀을 씻어 앉히며 엄마 생각이 났다.

늘 밥통엔 찰진 밥이 가득했고 사위가 좋아하는 고기반찬을 매번 빠뜨리지 않고 상에 올리시는 우리 엄마. 코로나로 재택근무하는 사위에 아이까지 삼시 세 끼를 다 집에서 먹으니 힘드시지 않냐고 여쭈어도 "맨날 하던 건데 뭐 그냥 있는 거 먹는 거라 괜찮아" 라며 귀찮은 내색 한번 하지 않으시는 우리 엄마.


밖에서 일하지 않으면 다 노는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아침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새벽 공기 마시며 출근할 때 나도 집에 있고 싶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집에 있는다는 건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편히 쉴 수 있도록, 집이 집다워지기 위한 준비를 쉼 없이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내가 그런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앞으로 이 새로워진 일상을 보내며 깨닫게 될 것들이 아직도 많을 것이라는 예감이 밀려온다. 바쁘다는 핑계로 모른 척했던 것들, 내게 보이지 않던 것들,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라는 생각에 기대 반, 걱정 반 마음이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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