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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May 29. 2023

취미가 중요한 이유

워커홀릭 치료제

햇수로 입사 2년 차. 이제 회사 시스템에는 완벽히 적응했고 업무도 제법 손에 익은 시점이 왔다. 그 시간 동안 100% 원격으로 근무한다는 것은 집에 고립되어 혼자 일한다는 뜻이고, 시간에 구애 없이 일한다는 것은 동료들이 사는 나라와 요일이 달라질 만큼 커다란 시차를 감안하여 밤낮 구분 없이 일해야 한다는 뜻임을 알아버렸다. 그러나 평일 대낮에 여유롭게 즐기는 친구와의 브런치와 미술관 나들이로 이 단점을 상쇄하고 나니 이런 패턴도 제법 나쁘지 않다. 허나 문제는 8시간 업무 시간을 오전과 저녁, 대개는 밤늦은 시간까지로 나누는 대신 잠깐 쉬는 낮 시간에도 온통 머리로는 업무에 매몰되어 있다는 점이다. 업무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관람하는 미술작품은 아무리 친절한 도슨트가 상세히 설명해 줘도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몸은 노트북에서 잠시 떨어져 있더라도 정신적으로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온통 업무에 매달려있는 상황이 되었다. 실은 가끔은 꿈에서도 업무 생각이 나서 오늘처럼 새벽 4시에 기상하기도 한다. 잠자다가도 해야 할 일이 번뜩 떠 오르면 그걸 바로 해치워버려야 하는 이놈의 성격 때문이다. 지금쯤이면 한국 시간을 기준으로 어제의 오후를 살고 있는 미국 서부에 있는 동료들이 한창 일할 시간. 채팅창이 꽤 활발하다.   




돌이켜보면 내 삶을 이루는 많은 요소 중 직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항상 제일 컸다. 가족과 부모님, 종교, 운동, 친구 등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들과 그들이 지닌 가치는 물론 직업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 가치와 내가 쏟아붓는 시간은 정비례하지 않는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들을 지키려면 직업이 필수적이고 그 필수적인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선 내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쏟아부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루 중 3분의 1 이상의 고정된 물리적인 시간과 나이가 들어가면서 뒤처지지 않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추가적인 배움의 시간까지 더하면 내 인생을 지배하는 건 직업, 바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인생의 대부분을 일에 매몰되어 살면 나에게 더 큰 가치를 갖는 요소들에게는 소홀하기 마련이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일을 하지만 결국 그 일 때문에 더 중요한 것에 소홀하게 되는 모순과 악순환의 연속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런 와중에 잠자는 시간까지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일명 워커홀릭이라 불리는 이들의 책을 보니 나랑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이 꽤 많다. 일에 완벽을 꾀하고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이 뱉은 말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만 직성이 풀리고 자기 회사도 아니면서 높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대하는 사람들.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문제 해결 자체에 중점을 두고 일하는 사람들.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확인해야지만 마음이 편한 사람들.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우울해지는 사람들. 그 사람들 속에 나도 있다. 하지만 성공을 이뤘다는 그들은 나와 다른 한 가지를 갖고 있다. 바로 하루 중 잠깐이라도 일에서부터 완벽히 벗어나는 시간을 가진다는 점이다. 운동을 하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들은 일과 자신의 삶을 분리해 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머리를 쉬게 하고 다시 일터로 나갈 에너지를 재충전을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이 분명한데 무엇부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얼마 전 예능 토크쇼에 나온 천재 피아니스트 조성민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취미가 뭐냐고 묻자 피아노만큼 열정을 쏟을 그 무언가를 찾지 못해 매번 취미를 만들겠다고 결심만 하고 실행에 옮길라치면 다음 콘서트를 위해 다시 투어를 떠나야 한다며 계면쩍게 웃던 수줍은 얼굴. 나를 그 대단한 피아니스트에 비교하겠다는 뜻은 아니나 그의 생각이 나의 상황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게 무엇이든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잘 해내기 위한 배움이 아닌 온전히 즐기기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당최 개념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내게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던가?


여유 시간이 나면 난 보통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가끔씩 좋은 책을 만나면 그 책에 몰입되어 업무 생각을 잊을 때도 있다. 아주 짧지만 그런 순간이 오면 몸속에 엔도르핀이 돌며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골치 아프던 업무 스트레스도 그냥 훌훌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무한한 긍정의 힘이 솟아오른다. 문제는 그런 좋은 책을 매번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또 머리를 쓰며 생각해야 하는 활동은 머리를 쉬게 한다는 취미의 목적과는 동떨어져있다. 그런 차원에서 취미를 하나도 아닌 여러 개를 가졌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신기하기 그지없다. 얼핏 보면 그들이 취미에 쏟는 돈과 시간과 열정이 소모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그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쳐버린 나를 비우고 새로운 나를 채워 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일매일 죽은 세포 대신 생겨나는 새로운 새포처럼 말이다.


얼마 전 읽었던 미야자키 신지의 '시간 연금술사'란 책은 단순히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충고가 아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시간을 생산하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해야만 해서 하는 일 말고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내기에도 짧은 인생이니 말이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언젠가 아니 어쩌면 당장 내일이라도 하루의 3분의 2이상을 쏟아 부을 직업이 없어졌을 때 그 헛헛함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밀려온다. 취미를 찾는게 이렇게도 힘든 일이었다니...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매일 일에 매몰된 나를 구원해줄 그것을 찾아나서야겠다.


워커홀릭은 이제 그만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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