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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Aug 20. 2023

당신에게 좋은 회사는?

 그리스, 아테네로 향하는 비행기 안. 오랜만에 새벽 비행기를 탔더니 이코노미석에 구겨 앉은 불편한 자세에도 잠이 솔솔 온다. 렇게라도 잠시 눈을 붙였더니 금방 정신이 말짱해진다.


 입사한 지 딱 1년 4개월. 그 사이 해외출장만도 벌써 3번째다. 국내 출장은 거의 매달 다니는 꼴이니 짐 싸는 스킬도 나날이 발전 중이다. 최대한 짐을 줄여 이동 중에 무거운 가방에 허덕이지 않도록 필요한 날수의 딱 반절만큼의 옷을 챙기고 필수적이지 않은 건 현지에서 조달한다. 하지만 매일 먹어야 하는 영양제와 공진단, 소화제 등 비상약은 한 무더기다. 주변에서는 해외 출장이 잦은 내 직업이 너무 좋지 않냐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는 일이 많지만 건강에 자신이 없어진 뒤로는 비행기를 장시간 타는 것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가족과 함께 하지 않은 것이 영 아쉽다. 일이 아니면 언제 아테네까지 와보겠냐 싶기도 하고, 출장이지만 앞 뒤로 휴가를 붙여 가족들과 여행하는 것을 장려하는 우리 회사는 이번에도 공식 일정 마지막날에 온 가족과 함께하는 디너를 마련해 두었기 때문이다. 한국회사였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가족과의 동반 출장과 가족까지 초청한 근사한 디너라니... 이럴 때면 내가 외국회사에 다닌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가족의 일이 업무보다 우선되는 분위기도 느껴질 때가 많다. 정해진 해외출장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동료가 집에 일이 있어 출장을 못 가겠다고 하면 '어떨 수 없지'라며 외려 그 집안일을 걱정해 주는 이 회사. 몸이 조금이라도 안 좋아 팀회의에 참석 못하겠다고 채팅만 남겨놓으면 아무 문제없는 회사. 인간적이다 못해 감동적이다. 또한 대부분의 업무가 원격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화상회의가 일상인데 자신이 키우는 개나 고양이와 함께 화면에 등장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많다. 그러면 다들 그 아이에게 인사하고 귀엽다며 칭찬하느라 정신이 없다. 물론 동료들의 진짜 아이가 회의 중에 갑자기 화면에 나타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보통 그런 경우를 한국회사에선 실수라던가 일어나서는 안될 해프닝으로 생각하겠지만 여기서는 중요한 논의 중이었다 해도 아이에게 인사하는 것을 빼먹지 않고 귀엽다는 인사치레를 꼭 한다. 지난번엔 아직 내 아이 얼굴만 못 봤다며 한번 보여달라고까지 해서 어찌나 난감했던지...


회사에서 인격적으로 존중받으며 일한다는 느낌이 든 것이 처음이라 처음엔 얼떨떨했고 나중엔 이래도 되나 싶었으나 지금은 이것이 사람답게 일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결국 일을 하는 목적은 가족과 행복하게 살기 위함 아니던가?


이곳으로 이직하기 전 회사에서 워낙에 극과 극 체험을 했던 터라 지금 내가 손에 쥔 이 떡이 얼마나 귀한지 안다. 물론 이 회사가 누구에게나 완벽한 회사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제공하는 일명 복지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무료 건강검진이라던가 복지포인트, 경조사 혜택 등등 일반적인 개념의 복지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와 내 가족의 삶을 우선시하며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몇 백만 원의 복지포인트보다 훨씬 가치 있고 중요하다.


회사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다는 것이 입사할 때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네 번에 걸친 화상 인터뷰를 치르며 팀장부터 임원까지 모두 아이가 있다고 하면 반색하며 자신의 아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로의 아이 이야기를 하며 갑작스레 생겨났던 친밀감이 내 인터뷰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결정짓는 것에 일조했다고 믿는다. 얼마 전 입사 후 대면으로 처음 만나게 된 그 인터뷰 담당 임원은 내가 아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친근하게 내게 말을 걸기도 했다. 입사 후 1년이 넘게 지났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고 그 대화를 계기로 그녀와 더 친밀해질 수 있었다.


한국회사에 다닐 때는 아이가 있다는 티를 내는 것은 곧 업무에 집중하지 못할 방해요소가 하나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아이 이야기를 자제해야 했고 아이가 아파 병원에 입원해도 울면서 출장을 갔던 적도 있었다. 물론 말을 하고 출장을 포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일로 윗사람들에게 밉보일 것이 두려웠고 아기 엄마라는 이유로 제대로 일을 못 해내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회사는 내가 꿈꾸던 그곳이 맞다. 내가 짠 자유로운 스케줄에 맞춰 일을 하며 내 아이를 직접 돌볼 수 있고 오늘처럼 해외 출장을 통해 국제적인 업무 감각을 놓치지 않을 수 있으며 능력에 맞춘 보상제도를 통해 열심히 일한 만큼의 대가를 기대할 수 있는 곳. 지난 1년간 좌충우돌하며 허술한 시스템에 실망하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쏟아 놓은 불만들이 조금 미안해질 만큼 난 이 회사가 좋아져 버렸다.


 이번 출장에선 또 어떤 즐거운 일이 있을지 기대가 된다. 직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지금처럼 오래오래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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