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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Sep 30. 2023

당신은 꼭 필요한 사람인가요?

 매일 차가운 냉수만 찾는 꼼군을 위해 보리차를 끓여 냉장고에 넣어놨다. 처음엔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어느 날부터는 은근슬쩍 다 먹은 보리차 물병을 슬쩍 잘 보이는 곳에 가져다 둔다. 그래도 내가 눈치를 못 채면 "보리차 끓여줘~"라고 콕 집어 부탁을 한다. 소소한 일이지만 그가 좋아하는 것을 직접 해 줄 수 있어서 뿌듯하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처럼 내 존재 의미를 일깨워 주는 것이 또 있던가. 


 결혼 직후부터 거의 10년간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겼었다. 분명 체력적으로 힘이 드실 텐데도 나보다 더 큰 사랑으로 아이를 길러주신 어머니.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러 분가를 앞둔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너만 괜찮다면  계속 같이 살아도 상관없어". 엄마에게 더 이상 짐이 되기 싫었다. 그래서 연로하신 부모님 여생이라도 편하게 보내시라는 마음으로 아이가 혼자서도 제법 앞가림을 할 나이가 되자마자 서둘러 택한 분가였다. 그런데 막상 엄마는 이제 당신의 도움이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이 못내 서운한 눈치다. 이사 가던 날, 짐을 다 싣고 떠나는 우리 모습을 보기 힘드셨는지 언제나 살가웠던 엄마는 잘 가란 인사한마디만 겨우 건네고 서둘러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새 집으로 향하는 내내 감사함과 죄송함이 뒤섞인 눈물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이제 자식, 손주 뒤치다꺼리에서 벗어나 엄마, 아빠 두 분이서 의지하며 오순도순 건강하게 사시는 일만 남은 건데 엄마는 왜 이렇게도 서운해하시는 걸까. 하지만 그때서야 깨달았다. 몸이 편한 자유로운 인생보다 자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엄마로 살고 싶어 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지난 10년간 엄마에겐 삶의 이유였다는 것을. 


 그러나 회사에서 누구나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다. 회사라는 커다란 조직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누구라도 쉽게 대체될 만한 일을 한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개인은 더 작은 부속품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부속품이 고장 나거나 빠지면 언제든 교체될 여분이 존재한다. 그러나 파레토의 '80-20 법칙'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20%의 사람은 회사가 존속하는데 꼭 필요한 일을 한다. 나머지 80%를 이끌며 회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이들이야말로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다. 물론 그들이 없어져도 누구든 대체는 하겠지만 분명 회사의 성과에 어느 정도 타격을 줄 수 있는 사람들. 그렇다면 "나는 그 20%에 속하는 사람인가?" 지금껏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 대신 튀지 않게, 눈에 보이지 않게, 상사의 심기를 건들지 않게 조용히, 없는 듯이 살지는 못했다. 내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목소리 높여 내 의견을 관철시켜야 했고 상대방을 설득해야 했으며 때론 상사와 부딪쳐야 하는 일도 있었다. 새로운 업무 방식을 도입하고 싶거나 기존의 것을 타파하고 싶을 때, 이제껏 해보지 못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을 때도 망설이지 않았다. 언제나 주도권을 쥐고 일의 성과를 중시하며 일을 해왔다.


 그렇게 10여 년이 넘게 경력을 쌓다 보니 어느덧 나는 언제든 싸움닭으로 변신이 가능한 사람이 되었다. 특히 부당한 일을 목도하거나 상식적으로 납득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그걸 간과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일을 짚고 넘어갈 때마다 내가 싸움닭으로 변신하는 것 또한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많다. 신나게 상대방에게 퍼붓고 나면 며칠간은 집에서 이불킥을 해야 한다. 불혹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 했는데 외부 자극에 대해 매번 이렇게 반응하는 건 나잇값을 못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비록 내가 옳았다고 해도 말이다. 혹시 내가 이렇게 매번 존재감을 과시해야 나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나?라고 되뇌어 봤다. 그러나 어떤 계산에 의해 나온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나의 흔들림 없는 직언과 확신에 찬 비난은 너무나도 즉각적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트리거가 확 당겨진 느낌이랄까. 


 분명 전에 다녔던 몇몇 회사에서는 강력한 행동이 필요했다. 엄격한 상하 관계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나를 즈려 밟고 가시려는 동료들이 즐비한 그곳에서 난 언제나 존재감을 드러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지금 성과가 나온 이번 프로젝트는 나의 공이라는 것을 목소리 크게 외쳐야 내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정글 같은 곳. 그러나 현재 회사에서의 나는, 정글에서 자란 늑대 소년이 평화로운 마을에 와서도 여전히 습관처럼 울부짖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내 공을 뺏기는커녕 언제나 나의 노력에 대해 칭찬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동료들이 있는 이곳. 그들은 내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진지하게 함께 생각을 모아주고 도와줄 부분이 없는지 찾아보는 노력을 기울인다. 성취해야 할 모두의 목표를 위해 기꺼이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가슴 벅찬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이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이만하면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충분히 각인시킨 것 같으니 이제 늑대 소년은 그만하자. 순한 양들이 무리 지어 있는 목장에서 늑대는 불청객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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