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응급실을 다녀온 아이는 숙소에 오자마자 다시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들었었다. 한숨 돌린 우리 부부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대로 약만 잘 먹이면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문제없이 지나갈 줄 알았다. 그렇게 하루만 숙소에서 편히 쉬자고, 여행은 쉬고 또 하면 된다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이는 전적으로 우리만의 착각이었다. 병원에서 맞은 주사 효과가 떨어지자 처방받은 약을 바로 먹였건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었기에 그저 약만 잘 먹으면 되는 줄 알고 음식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달은 바로 저녁 시간에 일어났다. 병원에서 당분간 먹이지 말라했던 토마토, 초콜릿, 계란 등이 들어있지 않은 불고기 비빔밥을 사 왔는데 내가 먹으려고 함께 사온 떡볶이에 있던 삶을 달걀을 아이가 날름 먹어버린 것이다. 우리 부부가 둘 다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말릴 틈도 없었다. 밥을 먹던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르며 고통을 호소하자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허둥대는 와중에 아이가 소리쳤다. "계란을 먹어버렸어!" 그 소리에 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고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그걸 왜 먹었냐며 안타까움에 소리를 질렀다. 가려움 때문에 어제오늘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못했던 아이가 떡볶이를 보자마자 습관대로 계란에 먼저 손이 간 것. 내손으로 사 온 음식을 누굴 탓하랴. 나를 닮아 키만 컸지 맛있는 걸 보니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깜박 잊은 그저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아이는 이제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울부짖고 온몸과 얼굴, 손바닥, 발바닥까지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고통에 가까운 가려움증에 아이는 거의 혼절할 지경이고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다시 응급실로 가기 위해 우버를 불렀다.
어제 갔던 병원에서는 소아과가 없다며 혹시 또 무슨 일이 생기면 근처에 있던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던 의사 말이 생각나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오늘도 어제처럼 운이 좋기를...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고 진료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10여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눈앞에 보이는 응급실로 뛰어 들어가 어제처럼 아이의 심각한 상태를 어필했다. 벌겋게 부어오른 다리와 얼굴을 보자 간호사는 맥박부터 잰다. 그런데 여권을 주자 본인이 오해했다며 소아과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우리를 다른 곳으로 안내한다. 중학교 1학년이지만 아직 생일이 안 지난 아이는 만으로 12세. 즉 소아였고 소아과 응급실에서만 접수가 된다는 것. 아이는 고통에 몸부림치는데 다시 또 어디를 가야 한다니 벌써부터 걱정에 가슴에 큰 돌덩이가 내려앉은 기분이다. 간호사가 안내해 준 대로 건물 안에서도 한참을 걸어 소아과 응급실에 도착하니 다행히 대기실엔 아무도 없다. 그러나 막상 소아과 접수처에서는 키가 꽤 큰 우리 아이를 보자 몇 살인데 여기 왔냐며 의아한 표정이다. 12살이라고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 손가락을 크게 펴서 '열둘' 이렇게 보여줬더니 그제야 안으로 들어오란다. 급하니까 손짓 발짓 할 수 있는 건 다 하게 된다. 아이의 몸 상태와 목 상태, 열을 재더니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란다. 그 잠시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우리는 또 침이 꼴깍 넘어가고 간신히 영어를 좀 알아듣는 간호사에게 빨리 부탁드린다며 사정을 하고 나왔다.
그렇게 10분쯤 흘렀을까. 아이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접수처에 모여 앉아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는 간호사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뿐이다. 인상을 찌푸리고 간절한 얼굴로 자꾸 그들과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하고 있던 그때 젊은 의사 한 명이 나오더니 어색한 발음으로 아이 이름을 부른다. 부리나케 쫓아 들어간 진료실. 어제 그 병원에서 했던 대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먹은 약들을 보여줬다. 이번엔 수액 없이 엉덩이에 항히스타민 주사 한방을 크게 놓는다. 그렇게 한두 시간쯤 약 효과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다행히 차츰 편안해지는 아이의 얼굴. 그러나 어제 이미 겪었듯이 이 약의 효과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마음은 여전히 너무나 무겁다. 고민하던 끝에 설명을 들으려 만난 의사에게 입원 가능 여부를 물었다. 돈이 얼마가 들든 새벽에 약 기운 떨어져 또 고통을 겪는 것보다는 차라리 병원에서 경과를 지켜보는 편이 아이에게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그래야지 새벽에 무슨 일이 생겨도 바로 대처가 가능할 테니까. 다행히 의사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당연히 가능하다며 단 보호자는 한 명만 상주 가능하단다. 그렇게 아이와 내가 입원을 위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얼마 안 있어 2인실의 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많이 편안해졌지만 아직 군데군데 발진이 남아있는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난 예정에 없던 밤샘철야에 들어갔다. 그동안 꼼군은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들을 챙기러 돌아갔고 돌아오는 길에 저녁 난리 통에 그때까지 쫄쫄 굶고 있던 내게 밥도 가져다준다. 본인도 굶었으면서 내 밥을 챙겨 온 그를 보자 안쓰러움에 눈물이 핑 돈다. 본인은 괜찮다며 다 식은 비빔밥을 비벼주는 그와 함께 병원 입구 길바닥에 앉아 같이 허겁지겁 허기를 때웠다. "언제 로마 길바닥에서 비빔밥을 함께 먹어보겠냐며 나름 낭만 있다"라고 이 와중에도 우스개 소리를 하는 그가 오늘따라 정말 듬직하다. 다시 한번 혼자가 아닌 둘이 있을 때 이런 일이 터져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생각보다 약 효과는 빨리 떨어졌고 아이는 자면서도 다리, 허리, 허벅지 등 온몸을 닥치는 대로 긁어댄다. 긁을수록 두드러기는 번지는 경향이 있고 특히나 긁다가 상처가 생기면 감염의 우려가 있어 긁지 못하도록 밤새 수건으로 냉찜질을 해줘야 한다. 잠시 졸다가도 아이가 뒤척이는 소리가 나면 벌떡 깨어 찬 수건을 갖다 대주길 몇 시간, 벌써 시간은 새벽 2시가 넘어간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원래 내 계획 대로라면 아이는 내일모레 나와 함께 피렌체를 거쳐, 베니스, 밀라노 등 주요 도시를 2주간 더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하루 이틀 만에 극적으로 좋아진다고 해도 재발의 우려가 높은 이 질병을 갖고 있는 채로 과연 마음 편히 여행할 수 있을까? 의사 말로는 햇빛에 아이를 있게 하면 안 된단다. 매일이 폭염 경고인 이탈리아에서 햇빛을 쐬면 안 된다는 건 밖을 다닐 수 없다는 얘기와 마찬가지. 설사 억지로 여행을 강행한다고 해도 내일모레 꼼군이 돌아가고 나면 나 혼자 이 모든 사건 사고에 대응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한 일일까? 불 꺼진 병실에 조용히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결론은 위험성이 너무 크다였다. 이렇게 불안 불안한 상태로 여행을 지속한다 해도 결코 즐거울 리 없고 즐길 수 없는 여행을 계속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결론은 하나다. 물론 내 속은 엄청 쓰리다. 사실 쓰리다 못해 억울할 지경이다. 일 년간 주어진 모든 휴가일수를 이 여행을 위해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았고 거의 8-9개월 전부터 이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3주간의 루트를 짜고 지역별 호텔을 검색하고 리뷰를 비교하기를 수개월, 각 도시별 예약된 투어까지 치면 환불되지 않는 비용도 수백만 원에 이른다. 그래도 아이가 내 손이 필요한 이때 한국으로 돌아가 아이가 빨리 회복하도록 돌보는 것 외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옵션이 무엇이 있을까.
7시간 시차가 나는 한국은 이미 업무를 시작한 시간. 바로 항공사부터 전화를 걸었다. 비행기 스케줄을 바꾸고 혹시 피치 못할 사정임을 감안하여 조금이라도 환불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을지 예약했던 투어 프로그램과 호텔마다 이메일을 보냈다. 환불 불가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노력은 해봐야 하니까. 온몸을 긁어 대며 선잠에 든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읇조린다.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우리 얼른 집에 가서 빨리 낫자"
3주 예정이던 아이와 이탈리아 여행은 이렇게 로마에서의 일주일 천하로 끝이 났다.
비록 아쉬움이 가득한 일주일이 되었지만 우리 세 가족은 어려움을 함께 겪고 이겨내며 더 끈끈해졌고 아이는 더 건강한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갖겠다며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지만 우리 가족의 건강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니 더 고민을 할 시간도 필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