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놀이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빈자리

by 지오바니

아이가 학교를 가게 되면서 10년 만에 엄마놀이를 하는 기분이다. 알람을 맞춰 아이를 깨우고 밥을 차려주며 입고 갈 옷도 골라놓는다. 머리를 빗겨주고 학교까지 데려다주며 오늘 아이가 해야 할 일들을 잊지 않도록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회사에 갈 땐 내 몸 하나만 챙기면 됐었는데, 난 굶더라도 아이 아침은 먹여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일찍부터 부산을 떨어도 세수만 겨우 하고 집 밖을 나서야 할 때가 많다.


마스크가 제2의 피부가 된 지 1년이 넘어가며 피부 화장을 안 한지는 오래지만 문밖을 나설 땐 항상 차림새에 신경을 썼었다. 아이 학교 앞에서 녹색어머니회 조끼를 입고 교통지원을 나설 때도 바로 출근을 해야 했던 나는 스커트에 구두를 신고 곱게 화장을 한 채였다. 긴 롱 패딩을 입고 맨 얼굴에 모자를 눌러쓴 대부분의 엄마들 사이에서 혼자 어색해하면서도 내가 여기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인 것 같은 착각에 우쭐하기도 했었다.

엄마놀이를 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그건 정말 내 착각이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버렸지만... 그나마 난 아이가 하나인데 둘셋을 키우는 엄마들은 아침마다 얼마나 바지런을 떨어야 하는 걸까.


엄마는 내 덕에 아침이 편해졌다며 좋아하시고 잠시라도 엄마를 등교 준비에서 놓아드린 것에 마음이 뿌듯하다. 아이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 다니던 등굣길을 나와 차를 타고 가니 편한 눈치다. 아이의 가방은 생각보다 꽤 무겁다. 그 무거운 걸 매일같이 걸머지고 걸어 다녔던 아이 어깨는 벌써 나처럼 굽어졌다. 안타까움에 끌고 다니는 가방을 사주었는데 친구들이 놀린다며 기어코 어깨에 메고 간다. 하긴 저 때는 친구들의 눈이 제일 신경 쓰일 때긴 하다...


신학기를 맞아 아이가 다닐 학원도 직접 알아봤다. 약속시간에 맞춰 아이와 방문한 그곳은 많은 아이들로 붐빈다. 코로나 여파로 한 분 밖에 남지 않은 선생님이 상담하랴 애들 질문에 답하랴 정신이 없다. 처음 방문한 학원에서 나도 아이도 뻘쭘하고 무엇을 물어봐야 좋을지 모르겠다. 레벨테스트만 보고 다음에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나왔다. 아이는 낯선 학원으로 옮기고 싶지 않다며 울상이고 나도 아이가 싫어하니 별로 마음이 가지 않는다.


이제껏 아이가 다니던 학원들을 직접 가 본 적이 없다. 그냥 할머니에게 카드를 쥐여드리고 집과 가장 가까운 곳에 가서 등록해달라고 부탁드린 게 전부다. 육의 질 같은 거 따져볼 생각도 못 했다. 그냥 남들도 다니니 어디든 보내야 할 것 같아 친구나 만들어주자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오늘 한 곳을 같이 가보니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걸 알게 됐다. 학원도 다 같은 학원이 아니고 선생님도 부모가 신경 쓰는 아이를 더 관심 둘 수밖에 없을 텐데 우리 아이가 그동안 홀대받은 건 아닐까 뒤늦게 걱정이 된다.


이런 나의 자리는 생각지 못 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어느 날은 셀로테이프가 필요해서 디스펜서와 함께 하나 사갔더니 아이가 호들갑을 떨며 "엄마 이거 어디서 났어? 친구들은 다 이거 갖고 다녀서 나도 갖고 싶었는데... 나 가져도 돼?"라고 한다. 1학년 때부터 항상 아이들 준비물엔 테이프와 가위, 자 등이 늘 디폴트로 포함되어 있다. 그때 그냥 집에 있는 스카치 테이프 덜렁 들려 보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테이프 커터기를 갖고 다녔었나 보다.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나한테 사 달라는 말도 못 했을까. 몇 년 동안을...

원래 장난감 가게에 가서도 갖고 싶은 장난감을 빤히 바라만 볼뿐 사달라는 말을 못 하는 아이다. 그런 아이 성향을 알면서도 조금 더 세심히 챙겨주지 못한 내 잘못인 것 같아 속상하다.

렇게 별 것 아닌 듯한 작은 구멍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을까.


이제껏 육아가 뭐 그리 어렵나 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할머니가 계시니 별 문제없다고 믿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주변 엄마들이 어떻게 아이 돌보며 일까지 할 거냐고 걱정해줄 때 뭐가 그리 걱정일까 오히려 의아했었다.


'그동안 나는 최선을 다 하지 못했구나. 일하는 엄마가 만들어 놓은 빈자리를 아이는 어떻게 채우고 있었을까.'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한다고 했는데... 뒤 돌아보면 엄마라는 이름에 주어진 의무들만으로도 허덕이며 지내왔다. 너무도 당당히 난 슈퍼우먼이 아니라며 안에서도 밖에서도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부끄러움의 문제가 아니다. 그 누구도 엄마를 완벽히 대신해 줄 수 없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됐다.


"우리 딸... 이제부터 엄마놀이가 아닌 진짜 엄마가 되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