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놀고 들어오는 아이 얼굴이 심상치 않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얼굴이다. 무슨 일이냐 물어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데 아무 일도 없다기엔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엄마, 아빠, 할머니, 전부 무슨 일일까 가슴을 졸이고, 아이는 밥도 안 먹고 방 안에서 고개를 떨군 채 앉아있다.
가까스로 입을 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눈물방울부터 떨어뜨린다. 밖에서 학교 친구와 동네 언니들과 함께 놀던 아이는 친구에게 무시를 당했다며 그 애가 날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고 단정한다. 친한 친구를 꼽으라면 항상 제일 먼저 이름이 나오던 아이인데 그 아이가 무슨 영문인지 자기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언니들한테만 친한 척을 했단다. 자신이 기분이 안 좋아 혼자 있었는데도 쳐다보지도 않고 결국 집에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니 나도 마음이 안 좋다. 바로 어제까지 우리 집에 와서 신나게 놀던 아이니 곧 화해를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아이의 태도다. 아이는 자꾸만 자신을 이 상황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그 아이가 자신을 싫어하게 된 것이라며 가장 친한 친구인데 어떡하냐며 침대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너무 무겁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분명 무슨 오해가 있을 테니 그 오해를 풀면 된다는 말 뿐이다. 지금 아이의 귀엔 들어오지도 않겠지만...
아이를 보니 오래전 중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난 말이 별로 없고 조용한 아이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여자 중학교는 같은 반에서도 끼리끼리 어울리는 여러 개의 그룹이 있었다. 어디 한 그룹에라도 끼어야 점심을 같이 먹을 친구도 생기고 쉬는 시간에 대화할 아이도 있게 되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러다 보면 딱히 어느 그룹에도 끼지 않는 아이들끼리 또 다른 그룹을 만들기 마련이다. 난 그런 기타(?) 그룹에 끼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던 아이들 무리에 끼려고 열심히 그 무리를 쫓아다녔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그룹 중 가장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게다가 반장이었던 아이와 내가 어색해지는 일이 생겼다. 난 그저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그 아이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했을 뿐인데 내가 그 아이를 무시하는 말을 했다며 주변 친구들이 그 아이에게 고자질을 했다. 성격 좋은 그 아이는 나에게 화를 내거나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대했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달라져 있었다. 예민한 나는 그 달라진 낌새를 단번에 알 수 있었고 소심하기까지 했던 나는 그 아이와 대면하여 문제를 해결할 용기도 없었다. 나에게 물어만 주었다면 해명을 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저 그렇게 자연스레 그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나는 기타 그룹 아이들 틈에 묻어 더 조용히 남은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지금 내 아이를 보며 그 시절이 떠오른 건 그 당시의 나도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렸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말을 잘못 전한 친구들을 탓할 생각도 못했다. 그저 이런 상황을 만든 내 자신을 원망하며 자존감을 야금야금 갉아먹었었다. 그렇게 해결하지 못하고 덮어 둔 일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떠올릴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왜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을까.'
나를 닮아, 아니 나보다 더 예민한 우리 아이가 앞으로 입을 마음의 상처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건 닮지 말라고 기도했었는데 나와 똑같은 아이를 보며 마음이 무너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을 쉬고 있으니 아이가 겪고 있고 또 앞으로 겪을 일에 항상 곁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어릴 땐 혼자서 가슴앓이를 했을 뿐 부모님에게든 누구에게든 털어놓을 생각을 못했다. 얘기를 나눌 용기만 있었어도 조금은 덜 힘든 시기를 보낼 수 있었을 텐데...이런 성격은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데 오랜 시간 걸림돌이었다.
적어도 우리 아이는 혼자서 이런 일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도록 꼭 옆에 붙어서 아이가 하는 모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꼭 자신의 잘못은 아님을 알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