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가 옷을 찾자마자 하늘로 냅다 올라간 이유는?
한국 전래동화 중에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성인이 되어서도 사실 ‘선녀’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이 두 명까지 낳았는데 선녀옷을 입고 남편과 자식까지 버리고 하늘로 올라간다고요? ‘엄마로서 그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로서 너무 모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 ‘선녀’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천상계에서 성장하고 생활하면서 가진 습관, 문화, 상식, 환경 등 이런 것들과 정 반대로 그녀로서는 지지리 궁상맞게 하락된 삶의 질을 매일매일 경험하며 살았겠지요. 나무꾼은 자신이 쟁취한 것만을 기뻐하고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녀옷을 보자 그녀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번쩍 정신이 들었겠지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본질적인 그녀 자신은 지워진 채 두 아이를 키우고 나무꾼과 생활하면서 알지 못할 우울감과 좌절감 그리고 ‘옷만 없어지지 않았더라면..’ 하는 알 수 없는 분노를 늘 지니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나 자신을 찾아야겠다 생각한 그녀는 현실을 떠나야 했겠지요. 하지만 자녀를 잊는 엄마가 어디 있겠습니까? 결국엔 두 자녀를 데리고 떠나지요. 남편을 데려올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웃음). 결국 동정심에 마지막으로 남편을 데려올 두레박을 내려 주기는 하지만요.
주의력결핍형 ADHD를 가진 남편과 초1 아들, 그리고 이제 막 태어난 딸을 키우면서 저는 매일매일 소진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물론 그 소진은 한 번에 된 것이 아니고 8년의 시간 동안 야금야금 진행된 것일 겁니다. 그래도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감정에 공감을 받고 그리고 일에 몰두하여 인정받으면서 ‘나’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있었지만, 육아 휴직하는 동안 집에 갇혀 늘 깜박하며 대화가 통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성향의 남편과 감정 기복이 있고 역시 머릿속이 산만한 초등학교 1학년 아들, 그리고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냥 아기인 둘째와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생활은 더욱 빠르게 저 자신을 재로 만드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아무도 모르게 미국행 비행기 티켓 하나 끊어 날아가 새로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습니다. ‘나는 거름으로 살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아마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눈에 밟히지 않았다면 이미 그렇게 하였겠지요.
억울한 것은 내 마음이 지쳐있든, 과거의 내 선택을 죽도록 되돌리고 싶어 하든 간에 삶은 계속 굴러간다는 것입니다. 나의 기분과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지요. 그렇다면 화를 내거나 슬퍼만 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내 마음이 만든 지옥 속에서 하루하루 허우적거리던 어느 날, 제 머리를 번쩍 스치며 지나간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나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지 말자’ 그리고 ‘가장 최선의 방식으로 나의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게 모든 것을 재구조화 하자’. 기왕이면 울상보다는 웃상으로 지내는 것이 좋겠지요. 그럼 지금부터 그렇게 살고자 소소하지만 분주하게 파닥거리는 저의 이야기를 한번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