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런 마케팅 용어에 속지 마세요
얼마 전부터 좋고 나쁜 회사를 선택하는 큰 기준 중에 하나가 “워라밸”이 되었다. 일(working)과 라이프(life) 간의 밸런스가 지켜지느냐가 중요한 척도가 된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개인 시간이 하나도 없는 삶이란 듣기만 해도 지친다.
하지만 13년의 회사생활을 하면서 요즘 친구들이 ‘워라밸’이라는 개념을 너무 남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근이라도 하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주말에 혹시 일이라도 하게 되면 어디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냐며 침을 튀기며 분노한다. 물론 계속 이런 삶을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세상이 말하는 마케팅적인 ‘워라밸’이라는 말에 속아서 스스로를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끄집어 내리고, 혹은 힘든 일은 피하려고 하면서 미래를 위한 초석을 부실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때는 바야흐로 9년 전, 영업 점포에 있던 내가 대기업 본사로 발령이 났다. 회사 No.2 전무를 보좌하는 자료를 만드는 것부터 의전까지 모든 것을 다하는 팀의 막내로 발령받은 것이다. 회사에서 높고 높은 임원들을 하도 봐서 이제 임원이 앞을 지나가도 일어서지도 않고 자기 일을 계속하는 그런 팀이었다.
보통 이런 팀에 발령받는 사람들은 대형점포에서 점장을 위해 이런 일에 숙련이 되어 본부에 일 잘한다 이름 좀 날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업무를 하던 사람이 아니었고 숫자나 자료 만드는 것에 기본적인 업무 상식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학벌과 프로필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혹스러운 발령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팀은 너무나 힘들어서 그만두는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팀장은 개민수(가명)라고 불리는 폭군이었다. 모든 자료와 숫자가 본부장을 비롯한 사장까지 들어가는 자료를 만드는 것이다 보니 예민할 수밖에 없긴 했다. 그런 나에게 일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 없이 매일 아침마다 각 영업점과 각 부문의 실적 추이와 부진사유, 온/오프라인 실적을 분석해서 보고하라고 하였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이틀 동안 전임자가 설명을 해주었으나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나는 이제 갓 입사하여 2년 채 되지 않았고 해당 업무 경험도 없는데 갑자기 혼자 다 도맡아서 하라니…. 2명이서 하던 일을 혼자 하라니, 너무나 억울했다. 하지만 ‘뭐 저런 게 들어왔어?’라는 말을 듣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아직도 기억난다. 부모님 사무실에서 새벽 2시까지 혼자 전임자가 만든 자료를 뒤지며 공부를 했다. 왜 이런 건지 어떻게, 어떤 스타일로 작성해야 하는 건지, 답답하고 가슴이 터져 미쳐버릴 거 같았다. 아는 사람에게 매달려서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데뷔일이 되었다. 나는 전임자보다 늘 한 시간 더 일찍, 새벽 6시에 출근해서 브리핑 자료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다는 vpn 접속 권한을 통해 몇 시에 퇴근하든 집에 가서 또 작성을 하며 완벽을 기했다.
실수를 하면 험악한 분위기가 되고 쌍욕이 날아오는 팀이었기에 늘 긴장된 상태로 살았다. 단 한치의 오타와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본부가 쪼개지는 일이 있었는데 가장 에이스들이 제1 본부에 남게 되었다. 그때 내 위에 있던 선배들을 제치고 내가 발탁이 되었다.
이렇게 아름답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으면 좋으련만.. 이런 삶은 끝이 없었다. 심지어 모든 임원들이 다 모여하는 반기행사를 세팅하느라 새벽 4시에 퇴근해도 나의 업무는 끝나지 않았다. 토요일은 기본적으로 일하는 것이었고 일요일 밤에도 일해야 했다. 주말 실적을 당일 아침에 모두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에 일 년 365일 중에 내가 유일하게 쉰 날은 명절 전일과 당일 총 4일뿐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PPT라고는 대학 때 만든 것이 전부인 나에게 그 팀에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원회의에 쓰일 장표 하나를 만들어 오라고 했다. 한 장이라고 하니 굉장히 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기업 사장 회의에 쓰일 1장의 장표를 만드는 데는 몇 시간 어쩔 때는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정확한 팩트와 분석이 들어간 간결하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도식과 멘트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 슬라이드는 1장이어도 백자료는 엄청나게 만든다.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샘플도 없이 이제 막 발령받은 나를 포함하여 개민수(팀장)가 밤 11시까지 만들어오라고 밤 9시에 지시를 했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고 눈앞이 깜깜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그렸다. 내가 봐도 엉망이었다.
그리고 11시 모두를 회의실로 불러 모았고 장표 한 장씩을 보다가 점점 화가 난 개민수는 내 슬라이드 장표를 보고 뚜껑이 열렸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공포의 분위기였고 내가 만든 장표는 집어던져졌으며 쌍욕이 날아들어왔다. 너무 억울했다. ‘나한테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뭘 만들어야 하는지 알려준 적도 없었잖아! (심지어 물어볼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이후에 어떻게 됐냐고? 그 팀에서 임원진들 자료를 만드는데 늘 선두에 서서 만들고 자료 하나 그리고 만드는데 일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새벽까지 퇴근하지 못한 날들, 변기통 위에서 숨죽이며 꺼이꺼이 눈물을 흘렸던 날들, 다 퇴근하길 기다렸다가 부서함에 들어가 뒤지며 어떻게 만드는 건지 어떻게 만드는 것이 잘 만든 자료인지 혼자 연구하고 베껴보며 만들었던 셀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그 팀에 있는 동안 출근은 새벽 5시 반에서 6시, 퇴근은 기약이 없었다. 그 커다란 사무실의 불을 켜고 들어가는 사람도 끄고 나가는 사람도 나였다. 나라고 왜 그만두고 싶지 않았겠는가? 지금 돌이켜봐도 정상적인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초과수당 같은 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할 수도 있겠다. 회사 전체의 분위기가 그러했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었다. 그 팀이 그러하였고 그중에서도 나에게 할당된 업무가 힘든 업무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만두었다. 그렇게 가장 먼저 그만둘 것 같은 내가 가장 그 팀에 오래 남은 사람이 되었고 가장 맷집이 강한 사람이 되었으며 그 팀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팀을 옮겨달라고 2번이나 본부장 결재를 올렸으나 무산되었다.
다시 돌아가서 한다면 너무 끔찍해서 못할 것이고 그렇게 남아있었던 것은 어쩌면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오기와 결단을 내리지 못한 우유부단함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회사에서 개XX로 통하는 사람들 아래에서 (하지만 일은 정말 잘했음) 버티고, 배우고,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나를 지금껏 먹여 살리는 자산이 되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의 스타일이 육아와 공존하긴 힘들 것 같아 외국계로 이직하면서도 그 시간이 더욱 값지게 다가왔다.
일단 외국계스타일은 한국 같은 사수가 없다. 특히 굴러 들어온 돌에게 더욱 알려주지 않는다. 각자 알아서 해야 했고 경력직은 웜업의 시간 없이 바로 업무에 착수하여 성과를 보여주어야 했다. 나는 기획팀으로 들어갔는데 새로운 조직분위기와 전혀 다른 문서 스타일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일주일 내로 업무파악이 되었고 계속 고성과를 내었다. 양식이나 시스템, 형식은 다를지 모르지만 본질은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팀으로 옮겨졌지만 두렵진 않았다. 숫자, 분석, 보고자료 만드는 데 있어서 어느 회사 어느 팀에 가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계속 고속 승진을 하였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주임-대리 시절에 했던 지옥 같은 그 시간 동안 배운 것들 때문이다. 회사 생활의 7할은 대리-과장 시절에 배운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이 되면 물어보기도 민망하다. 스스로 판단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
그래서 요즘 회사를 들어가는 친구들, 대리이거나 갓 과장을 단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워라밸’이라는 미신적인 용어에 속지 말라고. 그 시간에는 정말 능력자들이 많이 있는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며 배워야 하는 시간이다. 편한 곳에 있다가는 금방 집에 가서 아예 편하게 된다. 아니면 후에 쓴 눈물을 삼키거나 굴욕을 당하게 된다. 회사란 올라갈수록 더욱 냉혹한 곳이다.
그 시간 동안 정말 나는 최선을 다했고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나의 주임-대리 시절이다. 물론 나처럼 할 필요는 없다. 지금 생각해도 회사가 내게 요구한 것은 도가 지나쳤다. 수당을 받았냐고? 전혀. 오히려 야근수당 올리면 팀장 평가가 떨어진다고 단체로 잡들이를 당한 적도 있다. 11시 야근이 끝나고 술 좋아하는 상사 잘못 만나면 계속 끌려 다니면서 머릿속으로는 “빨리 들어가서 작업해야 하는데..” 하는 걱정으로 몰래몰래 시간을 체크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회식 때 어쩔 수 없이 고량주를 마셔도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새벽 4시에 일어나 작업하고 회사에 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직한 곳에서 자기 일 좀 해봤다고 방귀 꽤나 뀐다고 하는 사람들 말을 들으면 마음 한 컨에 “웃기지 마. 나처럼 죽도록 일한 사람 여기에 한 명도 없어.”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게 하나의 자신감의 발판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한다. 부디 한 살이라도 어린 시절에 많이 배울 것. 삶을 망가트릴 정도로 괴롭게 만들고, 누가 봐도 혼자만 부당하고, 인격적으로 모욕당하며 노력한 것의 보람도 대가도 없는 것이 아니라면, 해라.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배우라. 몇 년 뒤에 큰 자산이 되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무기가 될 것이다.
ⓒ 금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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