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당신께선 행복하시길

by 정소인


어느 날 화장품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아마 기억하기로는 이런 문구로 소개하는 화장품이었다.

‘지친 나의 피부를 위해 ㅇㅇㅇ을 사용하세요!’

그런데 또 엉뚱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휴, 내 피부가 지칠 정도면 오죽 나는 얼마나 지쳤을까?’

나는 사무직이라 하루 온종일 앉아 일만 하는데도 퇴근하고 나면 손가락 까딱하기 힘들 만큼 녹초가 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어쩌면 퇴근 시간부터 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 남아서 더 일을 할 건지, 자기개발을 할 건지, 운동을 할 건지 등. 바쁜 현대인들의 하루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이런 삶들을 살던 중 어느 날 문득 묘한 현상을 관찰했다.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행복을 위해 이렇게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막상 현실에서 행복을 누리는 듯한 사람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당장 아주 잠깐 스스로의 삶만 돌이켜봐도 고개가 끄덕여질지 모른다. 잠시 눈을 감고서 차분한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자. ‘나는 지금 행복한가?’

‘바쁘다 바빠 현대인’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처럼 바쁘게 권장 수면량도 못 채우며 살아가는데, 왜 행복의 결핍을 느낄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각자의 생각이 많기에 많은 대답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그중에 정답은 있을까? 사실 내 생각은 100명의 생각이 있다면 거기에는 100개의 정답이 있다고 믿는다. 각자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 믿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결핍을 느끼는 원인도 여기서 시작한다. 원하는 바를 이루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더 원하는 것이다. 동의하는가?

혹, 내 생각에 동의한다면 다음으로 넘어가 보자. 만약 우리가 오랫동안 행복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최종 목표와의 사이에 작은 원하는 바를 추가하자’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주장이다. 즉, 최종적으로 원하는 바를 점점 더 하위의 목표들로 구성한다면 나눌 수 있다면 그 과정부터가 행복할 수 있다고 난 믿는다.

축구를 예로 들어보자. 리그 우승, 토너먼트 우승과 같은 것들이 분명 그 해의 최종 목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경기의 승리를 목표로 해야 할 것이고, 경기의 승리를 위해선 골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골을 위해선 좋은 수비 한 번, 좋은 패스 한 번들이 목표가 될 것이다.

바로 그 과정들을 달성하며 큰 행복으로 다가가는 것 자체에 행복을 누리고, 작은 것들부터의 행복을 먼저 알아가자는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 우승 못하더라도 좌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번에는 70%만 맛본 행복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전체를 부분으로 나눌 때에 어쩌면 전체에 준하는 행복을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른다.

두 번째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삶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결국 행복은 [바라는 것들의 주어진 합 - 바라지 않는 것들의 주어진 합] 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공식이 맞다면, 삶을 그저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바라지 않는 것들’의 정도를 줄여준다.

나 같은 경우는 대표적으로 무릎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나는 사고로 인해 왼 무릎을 두 번 수술했다. 이로 인해 연골이 거의 다 없어지고 인대가 매우 손상되어 달리거나 하는 일에는 큰 무리가 따른다.

이로 인해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축구를 못하게 되었다.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는 이로 인해 진정으로 삶이 너무 괴로웠다.

나에게 주어진 바라는 것들의 합보다 무릎으로 인해 바라지 않는 상황을 얻게 되는 것이 매우 압도적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에 내가 무릎이 안 좋은 상태이고 축구를 할 수 없는 상황임을 받아들이자, 축구를 할 수 없는 것이 더 이상은 사무치게 힘들지 않았다. 그저 할 수 없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말을 하고 보니 어쩌면 이는 현실 지각 혹은 욕심과 절제의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내 주장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사실 내가 한 말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기에 설득력이 다소 약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괜찮다. 내가 바라던 바는 내가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당신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행복하길 나는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에 대한 생각 그 자체를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의 시작을 제공하고 싶었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당신의 행복을 바란다면, 나로부터 당신의 주변 사람에게 가기까지 있는 사람들 중에 얼마나 더 바라겠는가.

행복은 그저 주어지는 것도,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그리고 당신은 오늘도 웃을 만큼의 행복은 누릴 수 있는 사람이다. 부디 당신께서 매일 웃을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