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인생의 어떤 장면은 너무 드라마 같아서 오히려 현실성이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드라마 대본으로 써가면 너무 작위적이라고 바로 날릴 것 같은 일들이, 현실 세계에서는 종종 생기곤 합니다. 그녀와 처음 만났던 날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딸내미와 함께 집 근처의 키즈 파크에 놀러 갔습니다. 딸내미는 평소 루틴대로 미니 바이킹부터 타기 시작합니다. 어른들은 못 타니, 아빠들은 주로 손 흔들며 사진 찍어주거나, 그 주변에 앉아서 쉬고 있죠. 그렇게 바이킹을 열댓 번 정도 타고나면 그제야 다른 걸 타러 가곤 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웬 처음 보는 여자아이 손을 꼭 붙잡고 둘이 재잘재잘 거리며 붙어 있습니다. 바이킹에서 내리자마자 둘이 쪼르르 뛰어서 다시 줄을 서는데, 무슨 10년 지기 친구처럼 딱 붙어 다닙니다.
애들이야 뭐 또래들끼리 금방 친해지기도 하니까, 그럴 수도 있죠. 흔한 일은 아니지만, 뭐 특별할 일도 아닙니다. 갑자기 뒷전이 돼버린 아빠는 두 꼬맹이 뒤를 대여섯 발자국 뒤에서 따라가고, 친구의 엄마도 역시 적당히 어색한 거리를 두고 애들을 따라다닙니다. 이미 두 녀석의 세계에서 엄마 아빠는 사라졌습니다.
“따님이 참 붙임성이 좋으시네요. “
”아.. 네.. 뭐.. “
어색한 침묵.
애들은 이제 간식도 나눠먹고, 사진도 같이 찍고 있습니다. 우리 아빠 사진 잘 찍는다며.. 하지만 슬슬 점심도 먹이고 해야 할 것 같아 아이를 부릅니다.
“누구야..”
그런데, 두 녀석이 나란히 쳐다봅니다. 애 엄마도 절 쳐다보고요. 어색하고 묘한 정적이 두 어른과 두 아이 사이에 흐릅니다.
”어머, 저희 딸 이름이랑 같네요. “
”아, 네.. 신기하네요. 둘이 딱 붙어 놀더니.. “
”흔하지 않은 이름인데 어떻게 지으셨어요? “
”오빠 이름에서 한 자, 언니 이름에서 한 자 따왔어요. “
”저는 남편 이름에서 한 자, 제 이름에서 한 자 땄어요. “
무슨 봇물 터지듯 갑자기 말문이 터져서, 애들 데리고 놀만한 데가 없다, 여기 음식값 너무 비싸지 않냐, 저 놀이 기구는 엄마랑 온 애들은 탈 수가 없다, 우리 딸은 낯가리는 편인데 참 신기하다.. 어쩌다 보니 카톡 연락처도 주고받고, 간식도 나눠 먹이며 키즈파크 끝날 시간이 다 돼서야 헤어집니다.
가만 보니,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참 서글서글하니 좋습니다. ’저런 사람과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잠깐 해보다가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오늘 아침에 처음 본 꼬맹이들은 무슨 이산가족처럼 서로 안 떨어지려고 난리고, 다음에 연락해서 또 만나면 된다고 어르고 달래서 겨우 빠이빠이 인사하고 헤어집니다. 다음에 올 때 꼭 서로 연락하자고. 그러나, 막상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시 연락하기가 부담스럽습니다. 아무래도 남의 집 애 엄마한테 연락하기는 서로 좀 불편하죠. 그냥 우연히 애들 이름 똑같고, 죽이 잘 맞는 친구 만나서 신기한 하루였다.. 정도로 끝내고 그냥 잊습니다.
한 달쯤 뒤, 핸드폰 사진 용량이 꽉 찼습니다. 6년 된 핸드폰이다 보니, 사진 좀 찍다 보면 금방 금방 메모리가 찹니다. 사진들을 컴퓨터로 옮기다가 키즈 파크에서 찍은 사진들을 따로 추려 냅니다. 생각보다 두 녀석이 같이 찍은 사진들이 꽤 있네요. 잠시 고민하다가 카톡을 보내 봅니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얼마 전에 키즈 파크에서 봤던 누구 아빠입니다.
애들 함께 찍은 사진들 보내 드립니다.”
서로 괜한 오해 살 일 없도록, 비교적 드라이하게 써서 보냅니다. 다행히 기억하고 있다고 회신이 와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역시 애들 얘기, 돈 버는 얘기, 세상 살기 힘들다 같은 고만고만한 푸념들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이혼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됐다고. 주말마다 애 데리고 놀러 간다고. 다정하고 싹싹한 엄마 같아 보이는데 어쩐 일일까 싶습니다. 한참 망설이다가 실은 나도 이혼한 지 좀 되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이혼이 숨길 일은 아니지만, 뭐 자랑할 일도 아니다 보니, 남들에게 말 못 할 고민들이 늘 있습니다. 이번에는 애 데리고 어딜 가볼까? 뭘 하고 뭘 먹을까처럼 가벼운 것들부터, 애 데려다주고 빈 집에 들어설 때의 그 어색한 적막함까지. 아이 만날 생각에 주말이 기다려지다가도 또 어딜 가서 뭐 하고 놀아야 할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지금이야 딸내미도 좀 크고, 시간도 많이 지나서 좀 무뎌졌지만, 그때는 만나면, 꼭 좋은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는, 다소 강박 비슷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처지가 비슷비슷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어디다 털어놓고 말하기는 어려운 이야기들이죠. 그런 민감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같이 나눌 사람이 생긴 게 참 반가웠습니다.
이혼을 하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충격을 받습니다. 그동안 애썼던 세월이 아까워서, 왜 빨리 정리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 때문에, 내가 너무 한심해 보이고, 한편으로는 서럽기도 해서 한동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일 년 정도 지나고 나서야 몸과 마음이 회복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 시기에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습관이 붙곤 합니다. 밤낮으로 이성을 찾아다니며 관계를 갖는 사람도 있고,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도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달리기에 미쳐서 아침에 일어나 지쳐 쓰러질 때까지 뛰곤 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라톤을 나가고, 수영을 배우러 다닙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운동을 하지 않으면 잠을 못 이뤄서, 정말 죽자고 뛰었더니 1년 사이에 체중이 20kg이 넘게 빠집니다.
옷들이 다 풍덩해져서, 코트를 새로 삽니다. 슬림핏으로 맞추고 미루고 미뤘던 치아교정을 일시불로 끊습니다. 차도 새로 뽑고, 체육관도 등록하고 클라이밍을 배워 봅니다. 계좌를 새로 터서 딸아이 남겨줄 적금을 시작합니다. 양육비로 보내는 돈 보다, 애 만나서 밥 먹고 노는 데 쓰는 비용이 더 많습니다. 제빵 용품도 사고 쿠키도 만들어 봅니다. 여전히 아침에는 수영을 하고, 저녁에는 운동을 다닙니다. 슬슬 예전처럼 잠들면 깨지 않고 푹 자게 됩니다.
그렇게 몇 년 지나서 어느 정도 생활이 본 궤도에 다시 올라왔을 때쯤, 키즈 파크에서 이름이 같은 두 아이의 엄마, 아빠로 그녀를 처음 만났습니다. 함부로 남들 앞에 꺼내놓을 수 없는 얘기들을 나누고, 서로 보듬을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메신저로 이야기만 하다가, 저녁을 먹기로 약속을 잡습니다. 예쁘고 사근사근했다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벌써 한 달이 훨씬 넘은 일이니 얼굴을 잊어버렸습니다. 못 알아보면 어쩌나 하고 시간 맞춰 기다리는데, 먼발치에서 나타난 실루엣만 보고도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괜히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이제는 기억도 안 나는, 한 10년 만에 느껴보는 감정에 스스로도 놀랍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 양반 뭔가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 밖으로 말은 안 꺼내도 한 석 달 정도 같이 일하다 보면 표가 나요. 예전에는 선입견이다 싶었는데, 조금 보태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보니 “사람 말고 집안을 보라”던 어른들 말씀이 무슨 뜻인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녀는 어쩌다 이혼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반듯하고 괜찮았습니다. 멀쩡한 대학을 나오고, 번듯하게 직장 생활하던 사람이고, 성격도 좋고 말투도 바릅니다. 특히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 특유의 행동 가짐이 눈에 띕니다. 같이 있으면 오히려 내가 말실수할까 봐 조심하게 될 정도로..
저녁을 먹고, 이자카야에 맥주를 한잔하러 갔습니다. 저는 워낙 술이 몸에 안 받아서 일 년에 술자리를 가져봐야 한 서너 번, 소주 2잔이나 3잔 정도 마시고 자리를 접습니다. 한 잔만 들어가도 그 동네 술 다 마신 것처럼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녀는 보기보다 주량이 꽤 됩니다. 한자리에서 세 병 이상을 마시는데, 얼굴색도 그대로고, 특별히 말이 꼬이지도 않고, 기억도 다 제대로 합니다. 이 친구는 이혼 스트레스가 술로 터졌구나 싶었어요. 측은한 마음이 반, 왠지 모를 걱정이 반. 그냥 속상한 마음에 폭음을 한 것이겠지 지레 짐작해 봅니다. 하지만 그때도 의심은 하고 있었습니다. 애써 못 본척했던 거죠.
끼니도 제대로 안 챙겨 먹는 것 같아 피클을 몇 통 담갔습니다. 어차피 피클은 항상 담가 먹으니, 그냥 작은 통만 몇 개 더 삽니다. 하나는 양파와 무, 하나는 색깔 피망으로 담가서 그녀가 사는 오피스텔로 찾아갔는데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마냥 기다릴 수도 없어, 잠깐 꾀를 냅니다. 제 차 번호 앞 두 자리를 층수로 하고, 뒤 두 자리를 호수로 삼아 빈 우편함에 넣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피클이야 뭐 없어져도 크게 문제가 될 건 아니니, 몇 층 몇 호에 넣어 놓았다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연락이 닿았는데, 제 차 번호로 넣어 놓은 그 층, 그 호수가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약간 신기하기도 하고, 살짝 소름도 돋습니다. 장난인가 싶기도 했은데, 나중에 초대받아 놀러 가 보니 정말 제 차 번호가 그녀의 호수입니다. 처음 만난 날처럼 너무 신기한 우연에 괜히 기쁘기도 하고, 왠지 멋쩍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생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나는 초여름이 생일인데 누구 씨는 생일이 언제쯤이냐고. 맞춰보니 그녀와 제 생일은 꼭 한 달 하루 차이가 납니다. 둘 다 한번 들으면 절대 잊어버릴 수가 없는 날짜죠. 자기 생일의 달, 일에 1씩 더하거나 빼면 되니까요.
네. 알고 있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는 별 시답지 않은 공통점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고, 조금 비슷한 뭐만 나와도 서로 반색을 합니다. 다른 점은 눈에 안 보이고, 서로의 단점은 덮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 이름이 같은 것도 신기하고, 생일이 딱 한 달, 하루 차이 나는 것도 재밌고, 차 번호와 집 호수가 같은 것은 약간 소름이 돋기도 했습니다. 아재 개그라고 지탄받는 말장난에 진짜로 웃어주는 것도 좋고, 스킨십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어딜 가든 항상 손을 꼭 잡고 다녔는데, 저는 그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손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 하루는 지나가는 말처럼, 표 나지 않게 운을 뗐습니다. 생각보다 술을 너무 마시는 것 같은데, 언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냐고. 생각지도 못했던, 아니 사실은 어느 정도 짐작했던 대답이 돌아옵니다. 이혼한 전 남편이 매일 저녁 반주로 한 병씩 마셨다고 합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무렵부터는 자기도 같이 마시기 시작했고, 햇수로는 한 6년 된다고. 겁이 덜컥 났습니다. 죽은 아버지 생각이 나서, 머리칼이 쭈뼛 섭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그날 자리를 일찍 접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혀 다른 쪽으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손바닥에 땀이 고이고, 가슴에 뭐가 얹힌 느낌에 숨쉬기가 힘듭니다.
’ 내가 진짜로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아버지가 죽고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그 답답함. 네. 나의 아버지라는 인간이 하필 알콜중독이었습니다. 아침 드라마에 나올법한 인간쓰레기. 몸에 좋다는 건 다 처먹어서 골골 한 주제에 잘 죽지도 않던 그 인간. 아버지가 병원에서 죽었다는 소식에 나는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릅니다. 남들 눈치 보고 아들 역할 한답시고 죽는 것 지켜보지 않아도 돼서. 그런데, 정말 기묘한 우연 몇 겹이 겹쳐 만난 사람에게 알콜중독 낌새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그래도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알콜중독에 상당히 관대한 편입니다. 물론, 알콜 중독을 판별하는 여러 기준이 있겠죠.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일단 상당히 위험한 수준으로 봅니다. 자주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고, 술을 마시고 다음 날 회사를 못 나가거나 업무에 지장을 주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미 중증입니다. 술안주로 찬물을 찾는다면…글쎄요. 저는 되도록 빨리 그 사람과 연을 끊을 것을 권합니다.
마음을 굳히고,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최대한 건조하고 짧게 아버지 이야기를 전하고, 술을 끊지 못하겠다면 앞으로 만나지 않겠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한때는 잠시 그런 생각도 해 봤습니다. 혹시 세상에 무슨 섭리나 인연 같은 게 있어서, 사람 하나 살려 보라고 그녀와 나를 짝지어 준 걸까? 하고.. 개소리죠. 세상에 그딴 섭리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런 섭리 같은 게 있었다면, 그 인간과 가족으로 엮인 사람들이 그렇게 힘들게 살 리가 없죠. 정말 계속 술을 마실 거라면, 다신 안 볼 생각을 하고 물었습니다. 의외로 그녀는 선선히 술을 끊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동안은 너무 마음이 허전해서 술을 마셨지만, 이제는 내가 있으니 마시지 않겠다고. 아마, 진심이었을 겁니다. 분명, 그때는 진심이었을 겁니다.
그녀와 만나던 2년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그동안의 수고를 보상이라도 하듯, 고된 프로젝트 끝에 받은 여름휴가 같았습니다. 보라카이에 여행을 갔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구명조끼를 커플로 장만하고 바다에 둥둥 떠서, 해가 지는 하늘을 30분씩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저 말없이 손만 잡고 같은 하늘을 보는 게 참 좋았어요.
평생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몇 개 있죠? 처음 콘서트에 같이 갔을 때, 그녀의 얼굴에 떨어지는 조명과 노랫소리가 굉장히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몸살이 크게 나서 몸 상태가 엉망이었는데, 그녀와 콘서트를 보러 가자고 한 약속을 깨고 싶지 않았습니다. 열은 오르고 몸은 힘든데, 그녀의 옆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그녀는 한창나이였던 때를 생각하며 이승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저는 그녀만 바라봤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집에서 트리를 만들고 같이 춤추었던 기억도 납니다. 춤이라기보다는 그냥 포옹한 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죠. 전 타고난 박치에 절망적인 수준의 몸치라서.. 빈말이라도 그걸 춤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겠네요. 그냥 반짝이던 크리스마스트리와 그녀와의 포옹이 기억납니다. 저도 그렇지만, 어머니가 그녀를 참 예뻐하셨어요. 마음이 놓인다며, 그렇게 예뻐하셨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저를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녀의 어머니도 참 좋은 분 같아 보였습니다. 그녀와 내 인생의 뒷부분은 그렇게 평온하고 조용조용하게 잘 마무리되나 싶었습니다.
만나는 동안, 한 달에 한 번 정도 싸운 것 같습니다. 열에 아홉은 술 문제였던 것 같아요. 같이 여행을 가서 저녁을 먹고 한국인 마트에 들렀습니다. 해외라서 마음이 풀어졌던 걸까, 그녀는 소주 예닐곱 병을 카트에 담습니다. 전 와인이나 한 병 정도 사서 기분만 좀 내려던 거였죠. 소주병을 보고 있자니 그게 왜 그렇게 화나 나는지, 결국은 크게 다투고 말았습니다. 이미 취해서 밤 11시에 집에 가겠다고 캐리어를 챙깁니다. 치안도 안 좋은 나라에서, 말도 안 통하는 사람이.
집 근처에 맛있는 초밥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작은 사케를 한 병 시켰는데, 이게 화근이 됩니다. 술은 술을 부르고, 평소에 얌전했던 그녀는 술기운을 빌려 섭섭했던 일들을 쏟아 냅니다. 내가 분명 잘못했구나 싶은 것들도 있고, 잘잘못을 따져봐야겠다 싶은 것들도 있고, 이건 좀 억울한데 싶은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술주정으로만 느껴집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공포.. 는 아니고, 숨 막힘. 아니 체한 것 같은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이미 취해서, 자기는 술 생각이 없었는데 왜 술을 시켰냐며 따지고 듭니다. 평소에 얌전하고 웃음이 많던 그녀는 사라지고, 분하고 심통 나고 소란스러운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술은 자기가 먹고, 내 탓을 하네..’
어떻게 술 마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패턴이 같을까요? 그만 마시라고 말릴 때는 화를 내더니.. 결국은 또 크게 싸우고 맙니다.
그냥 헤어졌어야 했는데, 너무 그녀가 좋고 너무 아쉽기도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누군가를 만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술 말고는 정말 다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 어머니께 연락을 해서 어머니 사시는 동네의 커피숍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간의 상황을 다 말씀드렸습니다. 사람들이 쳐다보면서 계속 수군거리는데, 눈물이 계속 흐르더군요. 알콜 중독 치료는 가족들에게 알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극복할 수가 없어요. 그녀의 어머니 역시 그녀에게 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왜 모르시겠어요. 아무리 전화로 이야기한다고 해도 목소리 듣고, 잠깐 얘기해 보면 바로 표 나는데. 곧바로 정신과에 수속을 하고 상담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느낌이 좀 이상합니다.. 왜 나는 상담에 안 부르지?.. 그러다 어느 날, 차 앞 좌석 캐비닛에서 약봉지가 한 무더기 나옵니다. 그녀의 약입니다. 제가 하도 난리를 치니까 병원까지는 같이 갔는데, 약은 제 차에 숨기고, 그나마 받은 상담도 알콜중독이 아니라, 우울증 같은 걸로 받은 것 같습니다.
이제 화도 안 납니다. 술은 못 끊습니다. 이제껏 누구든 술 끊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술과 노름은 목숨 끊어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못 끊는다고.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새벽에 이유 없이 잠을 깨고, 꿈에 죽은 아버지가 나타납니다. 자기 제사 좀 지내달라고, 빈 밥상머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평소처럼 불쌍한 척하면서. 한 10년 만에 꿈에서 아버지 본 것 같아요. 언제 죽었는지 날짜도 기억을 못 하는데 제사는 무슨. 멱살을 잡아서 패대기를 쳐 버리려고 허우적대다가 깼습니다. 가위에 눌려서 어어어.. 하다가 깼더니, 옆에서 자고 있던 그녀가 더 놀랜 것 같습니다. 사람 환장하죠.. 다른 사람들은 가위눌릴 때 귀신 나온다던데. 생각해 보니 귀신은 맞네.
한 2-3주 간격의 폭음과 술주정. 이걸 둘 중 하나가 눈 감을 때까지 봐야 한다고? 그래, 아마 세상 어딘가 받아 줄 사람도 있겠지. 누군가는 이해해 주고 보듬어 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못 할 것 같다. 차라리 혼자 살다가 쓸쓸하게 죽을지언정, 술 취해서 횡설수설하는 모습은 정말 더는 못 보겠다. 20년을 넘게 봐 왔는데, 이제 겨우 끝났나 싶었는데, 못 한다. 부모는 내가 고르는 게 아니어서 끝까지 참았지만, 더는 못 한다.
마음을 다잡고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습니다. 밤마다 눈물이 흐르는데, 묘하게 잠은 잘 잡니다. 사진들 지우고 추억이 담긴 물건들 버릴 때마다, 한 시간씩 울음이 터지는데 이게 그녀가 불쌍해서 우는 건지, 내가 불쌍해서 우는 건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얼결에 그녀 전화번호를 누르고, 잠깐 딴생각하다 보면 내릴 역을 지나쳐 가고 있습니다. 입생로랑 매장을 지나갈 때마다 기웃거리게 되고, 카카오톡에 남은 선물 리스트는 지워보려다, 지워보려다 결국 포기합니다. 그런데, 꿈에 아버지도 다시 안 나타나고, 잠은 또 잘 잡니다.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습니다.
술은 이제 끊었을까? 정말 끊었기를 바라지만, 아마 못 끊었을 겁니다. 누군가 내 주변에 처음으로 술 끊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녀였으면 좋겠습니다. 끼니는 잘 챙겨 먹나, 발톱 치료는 잘 받나, 치과는 날짜에 맞춰 잘 가나, 회 좋아하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는데 데이트할 때 횟집에 자주 갈걸, 인센티브 나오면 입생로랑 핸드백 사주기로 약속했었는데.. 파운드 케익 하나 오븐에 넣고, 빵 굽는 냄새 맡으며 이런저런 얘기하던 생각이 납니다. 한 김 식으면 먹자고 꺼내곤, 호호 불면서 뜨거운 빵 그대로 잘라먹곤 했었습니다. 담요 한 장을 둘이 나눠 쓰고, 커피도 한 잔으로 나눠 마시며. 이마트 문 닫기 직전에 가서 할인 스티커 두 장 붙은 걸 찾으면 득템 했다고 좋아하던 기억도 납니다. 늦은 저녁거리는 치킨이든, 초밥이든, 연어든, 그렇게 할인 스티커 두장 세장 붙은 것들로 담아 오곤 했습니다. 둘이 손잡고 앉아서 가만히 노을 지는 걸 바라보던 기억이 납니다. 모르는 아주머니가 둘이 참 다정해 보인다고, 그렇게 늙었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네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는 다 부질없죠.
그래도, 끊었기만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