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요즘 궁금한 나는 누구인가? #4
브런치를 하면서 알게 된 작가님 세분과 나란히 메인에 걸린 날이 있었습니다. 깨방정을 떨며 찧고 까불던 그날, 김여사는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입원을 해야 할 상황인데, 김여사는 이제 곧 갈 사람인데 자식들 비싼 돈 들면 안 된다고 한사코 버팁니다. 꼬박 하루를 설득해서 날 밝으면 입원하기로 하고, 아마도 식구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 마지막 식사일지 모르는 저녁을 먹습니다. 다들 눈이 벌게서 천장만 보며 깨작거리다, 안방에 나란히 누워 김여사 어릴 때 얘기를 듣습니다. 까무룩 잠이 듭니다.
일이라고는 해 본 적 없던 할머니는 김여사와 어린 동생을 혼자 키우기가 너무 벅찼습니다. 끼닛거리가 없어 굶는 날이 점점 많아졌고 수돗물에 간장을 쳐서 끓여 먹는 날도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겨우겨우 일자리를 찾으면 내가 이런 일이나 할 사람이 아니란 소리를 하다가 미움을 샀고, 솜씨도 서툴러 사나흘을 못 가 쫓겨나곤 했습니다. 집안에 눈치 빠른 어른들은 약국집도 차리고 공장도 세웠지만 김여사의 형편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열여섯 살 무렵, 남은 패물도 없고 가진 돈도 없던 할머니는 두 딸을 데리고 하꼬방 같은 단칸 월세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김여사도 공장에 나가 일을 했는데, 워낙 바지런하고 싹싹해서 어디서나 예뻐했습니다. 꾀 안 부리고 일 잘해서 옆 공장에서 빼가려 한다는 소문이 나자, 사장님은 공장 주임을 시켜 아침마다 집까지 데리러 오고 저녁에는 데려다주게 했습니다.
공장에는 비슷한 처지의 또래 동무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유난히 예쁜 동무가 있었는데, 하루는 사장님이 김여사와 그 동무를 불러 맛있는 저녁을 사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김여사가 너무 일을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고 하더니, 동무와는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동무에게는 금 가락지며 금 시계며 사장님이 사주었다는 패물들이 늘었고, 어느 날 갑자기 공장을 그만두고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날 이후로 사장님도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어느샌가 다시 공장에 나왔는데, 그즈음부터 사모님이 공장 살림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모님은 예쁘장했던 동무와 가장 친했던 김여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 보곤 했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자 점점 누그러지더니, 나중에는 김여사를 가장 예뻐했습니다. 나중에 김여사가 시집갈 때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장롱과 문갑을 해주었습니다.
김여사를 매일 집까지 바래다주었던 공장 주임은 김여사에게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른 동무를 시켜 김여사에게 쪽지를 전해 줬는데, 김여사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건실한데 목도 짧고 얼굴도 시커먼 게 꼭 떡두꺼비 같았습니다. 그래도 대놓고 거절할 수는 없는지라 같이 극장 구경을 갔더니 글쎄 이 떡두꺼비가 슬며시 손을 잡더랍니다. 김여사는 너무 기분이 나빠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떡두꺼비는 미안하다고 쩔쩔매며 김여사를 쫓아 나왔습니다. 지금 보면 남편감으로 딱인데, 인물이 없던 김여사는 생전 연애란 걸 못했고, 그래서 고른 게 얼굴이 하얀 오 남매의 장남이자 동네에서 알아주던 술주정뱅이였습니다. 그렇게 인물만 보고 팔자를 꼬았지만, 훗날 김여사가 낳은 아들은 꼭 생긴 게 떡두꺼비 같았습니다. =_=;
할머니는 김여사가 벌어오는 돈을 차곡차곡 잘 모았습니다. 하지만 공장일은 힘들었고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던 김여사는 할머니에게 짜증을 부렸습니다. 전쟁 나기 전까지 있는 집 마님이었던 할머니는 김여사의 짜증을 받아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구요. 모녀 사이는 날로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십 년이 지나자 다른 친척들은 새 집을 올리고, 공장을 늘리느라 바빴는데 김여사의 노루 꼬랑지만 한 봉급은 세 식구 먹고, 월세내고 나면 도무지 모이지가 않았습니다. 일자리가 넘쳐나던 때라 부부가 함께 벌면, 눈에 띄게 살림이 펴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김여사도 그렇게 집안을 다시 일으키고 싶었습니다.
어떤 놈이 중신을 넣은 건지, 아니면 오다가다 만났는지.. 통 얘기를 안 하니 알 수는 없지만, 김여사는 어느 날 아버지에게 반했습니다. 그 곱상한 얼굴이 생각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다 떨리더랍니다. 듣는 사람은 혈압이 치솟지만, 아무튼 그렇게 김여사는 아버지를 만나며 팔자를 한번 더 꼬고, 풀리지 않게 칭칭 묶었습니다. 연년생으로 낳은 두 딸은 이 팔자를 더 조였고, 텀을 두고 태어난 아들은 쐐기를 박았죠. 40년쯤 뒤에 김여사가 이혼을 선언했을 때, 자식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지만, 하필 또 그때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8년을 끌던 이혼은 결국 물 건너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