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10.11 - 2024.12.17
지난주까지도 같이 농담도하고 산책도 했었는데, 오늘 발인이라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장례식장이 어머니 집 근처라 상주인 저는 장례식장을 지키고, 다른 식구들은 모두 아침에 모입니다. 새벽녘에 일어난 뒤부터 식구들 모이는 아침 전까지는 김여사와 단 둘이 있습니다. 그 한 두 시간 동안 댓글도 읽어 드리고, 농담도 하고, 미주알고주알 누나들의 패악질을 일러바치곤 합니다.
큰누나보고 아침에 면도기 좀 가꼬 오랬더니 지꺼 가져온답니다. 누나가 면도기가 왜 있냐고 물어봤더니 지 다리털 밀던 거라네요. 퉤퉤.
병원에서도 그렇고 장례식장에서도 그렇고 큰오빠에 여동생 둘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지들이 더 어려 보여서 다들 여동생인 줄 안다는 얘기를 모든 문상객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아주 LED로 간판 하나 만들 기세입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생긴 것 때문이겠어요? 철딱서니들이 읎어 보여서 그렇겠지. =_=^
화환은 상주 1명당 10개까지만 남기고 치운다고 들었는데, 그냥저냥 별말 없이 넘어갔습니다. 우리 김여사 꽃 좋아하시는데 다행입니다. 한 겨울 강추위인데도 다들 많이 와주셨어요. 늦은 시간에 운전하느라 고생했을 텐데..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다들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요.
어제 사촌 누나가 와서 돌아가시기 전에 함께 기도하셨다고 알려 주고 갔습니다. 하느님을 믿으신다고, 아멘 하셨으니까 천국에 가셨을 거라고. 그런데 왜 장례식장은 불교 단으로 올렸냐고 조심스레 물어보길래, 어? 그랬어? 언제?.. 하다가, 원래 김여사가 테크 트리를 양쪽으로 다 타신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김여사가 사람이 참 한결같아서 수퍼스타 두 분을 골고루 애정하신다고. 며칠 전에는 앨범 찾다가 아들 점 본 메모도 찾았습니다. 쉰 살부터 부자로 잘 산다고 쓰여 있는데, 딱히 아직은 뭐 기미가 안 보입니다. 1년 전 복채 환불되냐고 따져볼 요량인데 점집이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입관하러 들어가서 이제 구만리 먼 길 가실 거라 발 주물러 드리는데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명색이 상주라 억지로 숨만 들이켜는 와중에, 누구 핸드폰인지 경쾌한 하이톤으로 당근, 당근 하네요. 글쵸. 웃어야 견디죠. 웃어야 지나갑니다. 우리 김여사는 참 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서 좋습니다. 밤에 부고 보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부고도 아침에 해 뜨면 보내라고 하실 만큼 시시비비가 딱 부러지셔서, 김여사 앞에서 자식들이 을 때마다 늘 한소리씩 하시는 양반입니다. 어느 놈하나 웃으면서 보내 드리는 놈이 없으니 이놈들 보게 하면서 깔끔하게 당근하나 치고 들어가셨습니다. 개그는 타이밍입니다.
오늘도 날이 춥다고 합니다.
븟 작가님들, 우리 라대왕님, 포대왕님, 고운로 성현님.
모두 웃으시며 견디시길 바랍니다.
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