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도 없이 써보는 도서 리뷰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나?
나는 다정한 어른인가?
몰랐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온벼리 작가님은 여느 부부들처럼 티격태격하는 일상과, 소소한 고냥이 목공방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유쾌한 작가님인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한동안은 목공방 이야기도 온벼리 작가님의 자전적인 경험이리라 지레짐작 했었구요. 그래서 작가님의 책이 왔을 때, 출퇴근길에 봐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방에 챙겼습니다. 제가 지하철을 타는 시간대에는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습니다만, 그날은 웬일로 자리가 났더군요. 고냥이처럼 우아하게 궁디부터 디밀고 책을 꺼내 처음 몇 장을 넘겼다가, 바로 덮었습니다.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출퇴근 길에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우리의 지하철 문화는 머리가 희끗한 마흔 끝물 아재가 책 읽으며 우는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잖아요.
저는 작가님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별이 다르다는 태생적인 한계도 있고, 주변 상황들 역시 같은 선 위에 놓을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늘 칼날 같은 말을 뱉는 형제들과 알콜 중독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힘이 부칠 때 딱히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잘 압니다. 바르게 살아보려는 발버둥과, 부당한 손가락질의 억울함과,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행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도 어느 정도는 짐작합니다.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제풀에 지쳐 터덜터덜 쳇비퀴 속으로 돌아갈 때의 기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으른의 무게를 담은 책장을 한 번 넘길 때마다, 담담하게 전하는 이야기 속에 숨은 무게가 묵직하게 전해 집니다. 어쩌면 이제껏 내가 겪어온 일들은 그래도 견딜만했다 싶은 생각까지 들구요.
누구든 시달리고 치이다 보면 결국은 깨져 나갑니다. 그리고 깨진 자리는 항상 날카롭습니다. 깨져나간 크기랑은 상관없이 하나같이 날카롭지요. 그렇게 한번 깨지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걷잡을 수 없이 부서져 나갑니다. 날카로운 단면은 가시가 되어 옆 사람을 찌르고, 머잖아 나한테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깨진 자리는 점점 더 날카로워집니다. 당연히 이렇게 뾰족뾰족한 가시와 서늘한 단면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에게도 다정할 수 없죠. 말을 뒤집으면 다정한 사람은 날카롭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옆에서 보듬어 갈아줬든, 혼자 삭여서 갈아냈든 말이죠. 어느 쪽이든 결코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마지막 장을 읽고 나면, 4월에 어울리는 다정한 프로필 사진이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실제로 온벼리 작가님을 만나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머릿속에 그린 작가님의 모습과, 실제 작가님은 큰 차이가 날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제 글을 읽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저의 모습과, 실제 생김생김이 사뭇 다르거든요.) 하지만 계절을 한 번 돌아 다시 새봄을 맞은 작가님의 일상이 사진 속의 다정한 모습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
새봄이가 스스로 버스를 탄 날, 작가님이 혼자서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 날,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가방끈을 느슨하게 풀던 날. 그런 날들이 모여서 작가님의 겨울을 녹인 것일 겁니다.
작가님의 봄날을 응원합니다.
덧 붙이는 이야기
온벼리 작가님의 고냥이 목공방이 알고보니 가까운 곳이라 목공을 배우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오른손에는 못자국이 생겼고 왼손에는 귀티가 반갑다며 쭈욱 긁은 상처가 있습니다. (이걸로 마나님께 예수님 드립을 쳤다가 살해 당할뻔 했습니다.)
지난 수업때 만든 상자에 온벼리 작가님의 책과 예쁜 문진, 그리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편지 몇 장을 넣어 두었는데.. 정말로 만감이 교차하네요. 온벼리 작가님, 실제 목공방의 주인이신 공예 작가님, 그리고 귀티. 저는 인연이나 전생 같은건 아예 안 믿는 사람인데도 어쩌면 진짜로 뭔가 있을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