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보고 써보는 도서 리뷰..응? 뭐라고??!
저는 포도송이 x 인자 작가님을 포대왕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응원을 해 주신 분이었거든요. 누가 내 글에 응원을 하랴 싶어서 당당히 응원에 체크해 놨다가, 정말로 응원이 들어왔길래 깜딱 놀랬었어요. 그리고는 뭔가 제 발이 저리면서 슬몃 쫄리는 마음이 들어 바로 응원을 막아 놓았습니다. 즉, 앞으로는 저에게 응원을 하고 “대왕님” 호칭을 받으실 수 있는 분은 이제 없다는 얘기지요.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에 글을 찾아 읽다가 포대왕님 브런치의 올라간 모든 글들을 차근차근 읽어 보았습니다. 꿈 많은 문학소녀가 현실에 치이다 유쾌하고 장난끼 많은 중년의 아지메가 된, 흔하지 않지만 그닥 다르지 않은 작가님인 줄 알았습니다. 글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철부지 같은 소녀의 모습, 재정 문제가 없는 사람들 특유의 갬성, 말투에 배어있는 관리직 사투리. 한동안은 포대왕님 인생에 가장 큰 고민은 떼떼거리는 사춘기 딸내미와의 결전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글들을 다 읽고 난 뒤에, 그 유쾌함이 어떤 과정을 통해 빚어진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포대왕님이 다른 작가님들과 책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사실 저는 책 편식이 몹시 심해서 가지고 있는 책 대부분이 역사 아니면 전설이나 신화에 관련된 책들입니다. 그 외에는 일하는데 필요한 매뉴얼, 기술서, 그림이 가득한 도감류가 대부분입니다. 거의 몇십 년 만에 에세이를 산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삶은 도서관은 저도 한 권 사고, 철 좀 들었으면 하는 동생에게도 한 권 선물해 주었습니다.
포대왕님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그동안 제가 진 짐들을 온 힘을 다해 내팽게치고, 이제는 양쪽 어깨에 남은 짓눌린 자국까지 지우려 하고 있습니다. 이건 너무 부당하다며 온 힘을 다해서 부딪치고 죽자고 싸워서 부숴내는 과정이었습니다. 반면, 포대왕님은 그 묵직한 짐을 나눠지고 그 안에서도 웃음과 기쁨을 찾아내고 있었습니다. 브런치에 담아낸 사연들을 따라가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고, 가끔은 같이 한숨 쉬었습니다. 그러다 포대왕님이 도서관 이야기를 책으로 내신다는 소식에 내 일처럼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 포대왕님이 견뎌낸 삶의 무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포대왕님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돌려 그들과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더욱 마음이 놓입니다.
책은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웃음의 서가는 포대왕님이 초보 사서이던 시절, 젓가락 살임마를 포함한 각종 민원에 부딪치며 규정과 인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일화들입니다. 포대왕님에게는 심각한 일들이지만, 우리야 뭐.. 그저 재미나게 읽을 수 있죠. 저는 뭐 정리할 일이 있어서 청바지에 워커를 신고 스패너와 목공톱이 삐죽이 튀어나온 백팩을 메고 있었습니다. 핑크색 핸드북과 찰떡 매치인 거친 사내의 패션입니다. 웃음의 서가를 읽으며 안 웃으려고 부들부들거리다 크흐흐읍 하고 잦은 숨을 넘겼더니 주변 분들이 다소 무서웠나 봅니다.
인생의 서가에서는 어느덧 한 사람의 인생을 꿰뚫어 보게 된 포대왕님의 시선을 읽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정보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시선으로 다른 이를 바라보고, 마음으로나마 그 사람의 인생을 응원하는 포대왕님의 적당히 뜨뜻한 배려가 있습니다. 너무 뜨거워서 부담스럽지도 않고, 얼음장처럼 서늘해서 깜딱 놀라게 되지도 않는, 딱 알맞은 온도입니다.
알록달록한 예쁜 케이크 진열장 뒤에는 바삐 움직이는 제빵사들의 노고가 있듯, 도사관 역시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안에서 돌아가는 시스템이 다릅니다. 새 책들을 진열하려면 꼭 그만큼의 공간이 더 필요합니다. 새로운 책장이 들어오는 경우보다는 낡은 책을 치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렇게 해서 도서관은 젊음을 유지하고,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활력이 돕니다. 서가의 안쪽 이야기는 새로운 책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잊혀진 책들의 이야기입니다. 대학 다닐 때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 직장인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 있는 지금, 서가의 안쪽 이야기가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끔 말도 안 되는 우연과 차마 말로 꺼내기 힘든 실패들이 갑자기 추억으로 다가오는 날이 있습니다. 이마에 뾰루지가 다닥다닥하던 때에는 대체 실연의 달콤함이란 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참 바보 같았다 싶을 때가 있죠? 고작 짜장면을 먹겠다고 겁도 없이 8차선 도로를 건너는 예닐곱 살의 꼬꼬마들. 내 떡볶이에 송구락 하나라도 올리면 아예 손모가지를 찍어 버리겠다는 앙칼진 문학소녀. 하늘하늘 강수지가 못내 아쉬웠는지 노래방 파일을 들고 수업을 듣는 여대생. 세세한 디테일은 잊었지만, 강렬한 장면으로 뇌리에 찍힌 젊은 날의 사집첩은 추억의 서가 한 켠에 올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오후. 해 질 녘 도로로 날아든 검은 나비 한 마리. 몇 번의 펄럭임 끝에 짧은 생을 마감한 나비를 바라보며, 포대왕님은 그 죽음의 순간을 기록하려 합니다. 나비는 폭우에 날개가 떨어질 수도, 거미줄에 달라붙거나 게걸스러운 사마귀의 칼날에 붙잡힐 수도 있습니다. 용케 잘 살아남았다 해도 겨울을 넘기지는 못할 운명입니다. 하지만 그 나비는 포대왕님의 카메라에 그 마지막 순간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활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다 바스러지겠죠. 하지만. 한동안은 여러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을 겁니다. 저는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네. 그런 꿈이면 됐죠.
'는적거리다.'라는 표현을 보고 '흐느적거리다.' 혹은 '뭉기적거리다.'에서 오탈자가 난 줄 알았습니다. 급하게 예전에 포대왕님이 올렸던 브런치를 찾아보니 약간 표현만 바뀌었을 뿐, 역시 '는적거리다.'가 그대로 나옵니다. 그제야 우리말 사전을 열어보고 찬찬히 읽어 봤습니다. 옆구리에 베개를 끼고, 커피가 반쯤 담긴 잔을 스툴에 올려놓은 위태한 자세로 는적거리면서요.
배실배실 웃으며 시작했던 책은 조용한 끄덕거림을 지나 묘한 한숨과 함께 끝났습니다. 완전히 쌔삥한 새책이었는데, 김 여사님 댁 청소하고 짐 정리하는데 가지고 다녔더니 벌써 찍히고 손 때가 묻었습니다. 지우개로 옆구리만 살살 지웠는데 찍힌 자국은 도리가 없네요.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타블렛을 잡았더니 인상이 안 잡히네요.
실제로 작가님은 이렇게 날카로운 인상은 아니셨는데..
뭐..
작가시니까 좀 날카롭게 그려도..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