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주년 큰 역사에 걸맞은 축포
꿈만 같았던 두 경기 직관을 마친 우리는 출국 전 주말 일정을 비워둔 채 여행 계획을 세웠다. 일찍 숙소와 교통수단을 예매하면 크게 비싸진 않지만, 경기 일정이 발표되어야 하기에 우리는 6월 중순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정이 발표되기 전 숙소 예약 사이트를 매일 들락날락하며 마음 졸이고 있었다. 첫 계획에서 변동사항이 있지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주말에는 무조건 축구만 보는 것이었기에 지금 생각해보자면 약 70% 정도 성공이었다.
지난 주말에는 토트넘의 경기를 보고 며칠 지나지 않아 맨체스터로 넘어가 유로파리그를 본 뒤 리버풀에서 하루를 맛보고 안필드까지 들린 후 다음 날 영국 현지시간 9월 21일 토요일 우리는 또다시 맨체스터로 향했다. 새로 잡은 맨체스터 숙소에 짐을 놔두고 곧바로 맨체스터 시티 홈구장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맨체스터 서쪽에 위치한 올드 트래포드의 반대편, 동쪽에 위치한 이 구장은 맨체스터 피카들리 역에서 트램을 타고 이동했다. 피카들리 역에서 경기장으로 향하는 블루라인을 타고 10분도 안 걸린 채 도착했다. 에티하드 캠퍼스 역에 내리게 되면 계단을 오르면 곧바로 경기장이 눈 앞에 펼쳐지게 된다. 경기 시작 전 여유 있게 도착해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붐비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구단 스토어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모든 상품에는 맨시티의 엠블럼이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계산대 번호 대신 이번 시즌 선수단의 등 번호 순서대로 이름이 붙여진 계산대였다. 계산대의 직원이 다음 분을 부를 때 다른 곳이면 숫자를 말할 테지만 이곳은 이름을 부르며 안내한다. 난 페르난지뉴 계산대에서 계산했는데, 친구 부르듯이 ‘페르난지뉴!’를 외치며 이리로 오라고 했었는데 그 소리가 신기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하면 좋겠지만, 구단 스토어가 크지 않아 힘들지 않을까 싶다.
경기장 주변에는 맨시티의 역대 우승과 구단 역사를 나타내는 구조물들이 있었다. 최근 리그 우승, 리그컵 우승 당시 사진들을 걸어 두었는데, 무관의 토트넘 팬이었던 난 ‘우리도 우승했다면 신구장에 저런 것들이 있었겠지’라고 생각했다. 특히 선수들이 입장하는 콜린 벨 스탠드 쪽 입구에는 ‘Home of the Champions’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가장 부러운 대목이었다.
챔피언의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맨시티 선수단이 이 문구를 보며 경기 전 승리의 다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경기장 구조물에 시즌권을 구매한 모든 사람의 이름이 붙여져 있었고 맨시티를 응원하는 공식 팬클럽의 국가의 국기까지 부착되어 있었다. 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써놓는다는 것이 팬들에게 주는 감동이 큰지 잘 알기에 그들이 써 놓은 듯하다.
이 날은 맨시티의 첫 공식경기 이후 125주년을 기념하는 경기였다. (물론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일정이 맞아 예매했다.) 경기 시작 전 큰 깃발을 흔들며 관중들이 비틀즈의 ‘Hey Jude’를 함께 부르며 축하 행사를 진행했다. 누구나 다 알기에 나는 영상을 찍고 같이 부르며 분위기를 함께 즐겼다. 정말 큰 행사기도 했고 흔들리는 깃발은 웅장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줬다.
이후 시작된 경기는 킥오프 직후 다비드 실바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전반 18분 만에 5번이나 골망을 흔들며 125주년을 축하하는 축포를 끊임없이 쏘아 올렸다. 옆에 계셨던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 경기 10골 터질 것 같다’고 말하며 행복해하셨다. 우리도 쉴 새 없이 터지는 골에 이게 무슨 경기인가 싶었다. 슈팅을 할 때마다 곧바로 골로 이어지니 무자비로 난사하는 폭죽을 보는 듯했다. 전반은 맨시티의 파상공세였다. 그중 단연 최고는 케빈 더브라위너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패스였다. 눈 앞에서 본 그의 경기력은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경기장을 헤집고 상대 수비를 녹이는 모습은 마치 축구도사를 방불케 했다.
후반에도 맨시티의 무차별 폭격은 이어졌다. 원정팀 왓포드의 수비진은 완전히 처참하게 찢겨나가는 듯했다. 특히 후반 3분과 15분 베르나르두 실바의 골로 현장에서 느끼기에 왓포드 수비수들의 무기력함 그 자체였다. 경기는 8-0. 큰 점수 차로 마치 야구 경기 결과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팀 롯데도 큰 점수를 내고 무실점으로 이기는 경우가 없는데...)
125주년이라는 숫자를 쪼개서 모두 합치면 8이 되는데 이날 맨시티 선수단이 계획했을까 싶을 정도의 막강한 공격력이었다. 정말 이런 역사적인 경기와 행사를 볼 수 있다는 것에 신기함과 큰 점수 차를 직접 내 눈으로 봤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되었다.
우리는 경기가 끝나고 다음 날 바로 런던으로 넘어간다. 연달아 경기가 있는 주말이라 다음에 볼 경기는 첼시와 리버풀의 맞대결로 라운드 최대의 경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