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보다 오로지 축구
PSG의 홈경기가 얼마 지나지 않은 현지시간 9월 27일 금요일 프랑스의 KTX인 고속열차 TGV를 타고 남서부 와인의 본고장인 보르도로 향했다. 오로지 축구만 보고 보르도에 온 터라 도착 한 뒤 계획을 짜 나갔다. 그중 하나가 '시내에 위치한 팬 샵에서 유니폼을 구매하고 마킹까지 하자’였다. 지난 경험으로 마킹하는 시간이 꽤 걸려 허비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팬 샵에서 나와 친구들은 유니폼 등을 포함해 약 50만 원어치를 구매했다. 그리고 팬 샵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끔 만든 공간에 마네킹 단 하나가 있었는데, 그 마네킹이 입고 있던 유니폼에 황의조의 마킹이 되어있어 구단에서 많이 신경 쓰는 것 같았다.
팬샵에서 물건들을 사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허기가 진 우리는 그제야 구글 지도를 켜 맛집을 검색했다. 여행으로 보낸 시간이 어느덧 3주가 되었을 때 우리는 빵이 아닌 다른 음식이 정말 먹고 싶었다. 한식당을 보르도에서 찾는 것도 이상하지만 유럽 음식이 아닌 다른 식사를 절실히 원했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 시국이지만 일본 음식을 먹었다. 내부가 넓지 않아 잠시 기다린 뒤 들어갔는데 식당 특성상 아시아 분들이 일하시나 싶었다.
그런데 주문을 할 때 정말 반갑게도 ‘혹시 한국분이세요?’라고 직원분이 여쭤보셨다. 다른 지역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한국분들과는 다르게 생소한 지역인 보르도이다 보니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분은 유학생이셨는데 우리가 축구를 보러 보르도로 왔다고 시작해 여러 이야기를 듣고 좋은 정보들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시내 스타벅스에서 황의조 선수를 본 적도 있다고 이야기하셨는데 되게 반가웠던 순간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지롱댕 보르도의 홈구장인 마무트 아틀란티크로 가기 전 대여할 수 있는 자전거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증금만 있다면 얼마 안 되는 금액과 함께 하루 동안 빌릴 수 있는데, 우리는 그걸 타고 경기장으로 가기로 했다. (Vcub이라는 자전거 대여소가 곳곳에 있다. 다른 대여 방법 중 가장 싸다.) 검색 결과 숙소에서 약 9.7km, 30분이 넘게 걸렸지만 큰 국도 옆에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있어 무사히 갈 수 있었다. 갈 때 유니폼을 입고 갔었는데 중간중간 보르도 팬분들이 ‘의조! 의조! 황!’을 외치거나 보르도의 응원가를 부르며 반가움의 표시를 했었다.
경기장은 새하얀 색들의 구조물로 만들어져 있는데 보게 되면 감탄사만 연발했고 여태까지 갔던 경기장 중 가장 아름다웠다. 맑은 날에 걸맞은 햇살과 푸른 하늘과 어울리는 구조물이었다. 그 앞에는 여러 행사가 즐비해 있었는데 그중 먼 길을 날아온 아시아인은 우리뿐이었다. 큰 태극기를 메고 다녀서 그런지 다들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경기 한 시간 전 양 팀의 선발 라인업에 황의조라는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한 분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사진 찍어도 되겠냐고 보르도 인스타 담당자인데 너희 사진을 찍어서 올려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기꺼이 촬영에 응했고 그 사진이 얼마 안 되고 보르도 공식 인스타그램의 스토리에 올라갔다. (햇빛이 너무 센 날이라 눈을 잘 못 떠서 그런지 사진은 잘 나오지 않았다.)
이날 경기에서 우리 자리는 선수단 피치 중앙 맨 앞자리였는데, 티켓 예매 오픈 시간에 맞춰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매했다. 가격은 100유로(한화 약 13만 원)라는 큰 가격에도 불구하고 고민 없이 예매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어디서든 잘 보이는 위치에 태극기를 설치했다. (우리 말고 태극기가 조금 보였지만 우리의 태극기가 가장 컸었다.)
이 커다란 태극기를 보고 유튜브 고알레 분들이 찾아오셔서 인터뷰와 함께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제일 가까이 있는 친구가 가장 말을 많이 했는데, 내가 말하면 오디오가 겹칠걸 알고 말을 아꼈다. 그리고 마침 친구의 별명이 경주황의조였기에 가장 많은 오디오를 담당했다. (이때 경주황의조라는 친구는 유튜브 슛포러브에서 0순위 여행 편에 나온 친구다.)
보르도의 선발 라인업에는 당연히 황의조를 포함했고 PSG는 지난 랭스 전보다 힘을 실었다. 그렇지만 양 팀의 경기력을 보고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계속 공격을 만들어 냈지만 결과물이 없는 원정팀 PSG, 빌드업과 찬스 자체를 만들지 못하고 미드필더진에서 흐름이 끊겼던 보르도였다.
경기 도중 나는 전광판에서 다른 화면으로 바뀐 것을 눈치채 바로 고개를 들었더니 전광판에 나오고 있는 건 큰 태극기와 우리였다. 내 고개가 경기장이 아니라 전광판으로 향하자 친구들도 같이 보게 되었는데 곧바로 손을 흔들며 기뻐했다. 어쩌다 보니 이날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각국의 방송사들까지 우리의 얼굴을 비추게 되었다. 경기가 끝나고 핸드폰 알림에는 너 경기에 잡혔다며 캡처한 사진들이 우르르 쏟아졌다.(내 뒷자리에 유사 포체티노까지...)
이어서 경기는 후반 중반 PSG의 주축 음바페가 부상에서 복귀해 교체로 나섰다. 그러자 경기는 음바페 중심으로 흘러나가 결국 네이마르의 득점까지 이어지며 PSG의 승리 1-0으로 끝이 났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황의조의 이름을 연신 부르며 응원했었다. 종료 휘슬 후 남아있던 태극기는 3개였는데 그중 맨 첫 번째 분에게 유니폼을 던져주며 황의조는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황의조를 부르던 우리는 바로 옆에 로리스 베니토가 있었는데 존재조차도 몰랐다.)
경기장을 벗어난 뒤 선수단이 퇴근하는 길에서 다른 한국분들을 만나게 되어 같이 황의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또다시 고알레 분들을 마주하게 되어 같은 영상에 우리는 두 컷이 나오게 되었다. 그 이후 계속 기다린 끝에 친근한 기아차가 나왔는데 그 안에 황의조를 드디어 가까이 마주했다. 아마 태극기를 보고 차를 세운 듯했다.
우리의 앞에 딱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리자마자 그 순간 현지 팬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달려들었다. 나는 친구인 경주황의조가 사진 찍는 걸 돕기 위해 그 현지 팬들을 막아냄과 동시에 진짜 황의조와 가짜 황의조의 만남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현지 팬들의 혼란스러움에 우리 중 나만 빼고 모두 사진을 찍었다.)
황의조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경기장에서 만난 한국분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뒤 하루를 마무리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런던, 맨체스터, 파리, 보르도에서 펼쳐진 6경기를 TV가 아닌 내 눈으로 직접 마주한 3주가 끝났다. 여러 경기들 그 이후 나는 2주 동안 유럽을 여행하며 다른 나라를 돌아보았다.
한 달 넘게 가까운 나라도 아닌 먼 땅인 유럽에서 여러 새로움을 맛봤다. 우리는 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아직 지구는 돌아볼 아름다운 곳이 넘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 해볼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 건 반드시 해야 후회가 없다. 그리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기에 뭐든지 시도해 봐야 한다. 난 이 유럽을 통해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함을 가지게 되었다.
그 아쉬움을 그나마 달래고자 지금이라는 시국이 빠르지 않더라도 안전하게 종식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