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배운다- 글쓰기 동아리 "시간 또는 시계"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매일 하는 일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사소하지만 매일 하는 것들,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그래도 하면 좋은 것들. 오랫동안 매일 해 왔지만 오늘은 하기 싫었다. 거실에 있는 막내딸 이우의 전화기에서 알람소리가 들린다. '끄러 갈까? 가기 귀찮다.' 멜로디가 끝날 듯하면서 또 울린다. 내 왼쪽 손목시계를 보니 7시 15분이다. 깨우러 가기 귀찮다. 알아서 일어나길 바란다.
그런데 '왜 귀찮지?'라는 의문을 한다. 침대에 누워 있으니 게으름이겠지만, 할 필요도 없는 고민을 애써 해 보는 것 같다.
'왜? 이런 고민을 하는 걸까?', '이게 고민거리이긴 한 건가?'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하는 것이 고작 스마트폰 보기다. 화면으로 뉴스를 손가락질할 뿐이다. 관심 있는 뉴스를 보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시간 때우기 위해 손가락으로 화면을 올릴 뿐이다.
'이걸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닌데. 왜 이럴까?'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손가락질을 더 빨리 한다. 그럴수록 전화기 속으로 더 깊게 나를 빠트린다.
전화기 화면에서 알림이 뜬다. 미리 살짝 보여주는 알림은 볼지 말지 미리 결정하게 하는 듯하다. 보기로 했다. 글쓰기 모임 단체 대화방에서 빨간 'N'이 떴다.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온 것이다.
'마지막 날입니다~ 이따 뵙겠습니다^^'라는 짧은 문장이 선생님의 말하듯 상냥하게 들린다.
'아! 마지막 시간이었지.' 알고 있었지만 몰랐던 듯 과한 표정으로 당황한 척 연기해 보는 것 같다. 아쉬워서 그런 거다. 목요일 글쓰기 마지막 수업이다. 아침에 이런저런 망설임과 고민들은 '마지막 날'이라는 단어를 보고 침대에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내 몸이 귀찮아지고 쓸데없는 고민을 하게 만든 건 마지막 때문인 듯하다.
'마지막은 끝이잖아. 끝은 이제 없는 거니까. 나도 없는 거고 그 시간들도 없는 거잖아.', '아니지 내가 마지막을 함께 하지 않으면 나는 끝난 게 아니니 나의 마지막은 아니잖아.'
생각한 게 고작 도망치겠다는 거다. 이럴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창밖의 하늘은 흐리다. 회색구름을 찾았다. 한참을 보고 구름인지 하늘인지도 분간할 수 없어진다. 하늘이 흐지부지하다. 마지막을 흐린 하늘처럼 흐지부지하게 보내려고 한다.
'언제부터 이랬던 걸까. 그때였던 건가.'
2년 전 그날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벚꽃이 떨어질 때 만났고 단풍이 물들 때 헤어졌다.
이름조차 기억해 내려고 노력해야 떠오르는 그 여자. 뜨거운 바깥공기는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증발해 버리듯 내 머릿속에서 증발해 버렸다. 같이 했던 모든 시간과 함께.
짧은 기간 강렬했던 그 시간들. 하지만 증발해 버린 날들. 헤어진 그날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의 날씨마저 흐린 날이었던 가. 하지만 그 시간. 그 장면은 기억난다. 단물 빠진 껌을 뱉어 버린 날이었다. 누가 뱉은 건지 확인할 수 없을 뿐이다.
"그만 마시고 싶어."
찌그러진 차를 사흘 만에 찾고 정비소에 맡겼다. 돌아오는 길에 메시지를 보냈다.
"난 술 마시는 게 유일한 삶의 낙이야. 술 안 마시는 사람을 만날 이유가 없는데."라는 답장이 왔다.
"우리 둘 다 술 끊고 다른 취미를 찾는 건 어때?" 대답이 없다.
"주말에 만나서 얘기해."라고 보내고 지워졌다.
2년이 지났을 며칠 전이었다.
아침 산책을 하던 중 흔들리는 사진이 생각났다. 어제 잠깐 DSLR카메라
"여기까지입니다. 지금부터는 혼자이십니다."라는 음성 메시지가 들리는 상상을 한다. 마지막인지 몰랐다.
"울지 않는다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니잖아. 안 그런 척하는 것뿐이지. 나도 이렇게 끝나는 게 좋지 않아. 왜 그렇게 가는 건데." 뒤통수에 대고라도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용기가 필요한 거라면 없었던 거고 다른 게 필요한 거라면 그것 또한 없었던 거다. 그저 가지고 있던 건 자존심이었 던 것이다. '내 잘못은 없어. 다 네 책임이야.'라고 떠 넘기려고 했던 비겁한 자존심이었다.
눈물을 떨어 뜨리고 싶지 않았다. 별이라도 보려고 올려다본 하늘에는 불빛인지 별빛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들이 반짝거리기는 했었다. 내 눈이 흐려졌다. 선명한 하늘을 흐려진 내 눈이 보고 있었다. 나의 헤어짐도 흐지부지했고 흐리멍덩했다. 모든 게 흐린 날의 하늘과 구름 같았다.
마지막 수업을 서로 아쉬워하는 메시지가 톡톡 거리며 올라온다.
'아니에요. 글은 퇴고가 중요합니다.'
고쳐 쓰고 또 고쳐 쓰지만 잔소리로 들렸다. 수많은 작가들이 말하는 퇴고의 중요성을 보고, 듣고, 읽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내 앞에서 하는 말에는 '아니야, 내 글은 고치고 싶지 않아.'라는 고집만 남길 뿐이었다. '마지막 날'이라는 데 몸도 고집부린다. 출석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시계에서 울린다. 나가려고 창밖 하늘을 보니 짙은 파란색에 하얀 구름이 뚜렷하게 보인다.
'오늘은 흐린 날이 아니구나!'
서둘러 달려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