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 대책회의 '쓰는 마음'
나는 쓰고 있는 중이다. 왜 쓰려고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뿐이다.
잊혀진 건지 잃어버린 건지. 확실히 알 수 없다. 확인할 수 없으니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잊혀졌다면 알고 있었거나 기억하고 있었지만, 기억나지 않게 되었거나 더 이상 알 수 없어서 일테다. 그렇다면 잃어버렸다는 건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가? 그래서 적어 뒀어야 한다.
왜? 쓰는지 잊어버렸다. 매일 뭔가 쓰고 있었는데 왜 쓰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쓰는 시간이어서 쓰고, 쓰라고 해서 쓰고, 생각나서 쓰고, 재밌어서 쓰고, 계속 쓰게 되니 또 쓴 것 같기도 하다.
무슨 내용인지까지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 내가 쓰는 마음은 '왜?'보다는 '어떻게'라고 해야 한다. 어떻게 쓸 것인가? 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잘 쓰는 사람이고 싶다. 멋진 글을 써서 읽는 이들에게 칭찬받고 싶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글을 보면 싫은 티를 팍팍 내고 싶다. 어떤 글이 좋은지 알 지도 못하는 나는 최고라고 하고 본다. '좋아요'라는 횟수가 몇 개인지 확인한다. 멋진 글들을 훔친다. 원래 내 글인양 적어 본다. 아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오롯이 내 머릿속에 있는 내가 생각한 것들을 쓰고 싶다.
'나의 죽음에게 나를 선물하고 싶다.'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렇게 쓴다. 무엇을 선물할지는 정해져 있다. 어떻게 선물할지가 궁금하다.
내 머릿속에서 쥐어짜진 생각들은 내 생각이다. 책을 읽거나 경험을 해서 집어넣은 것들은 내 머릿속에서 내 것으로 바뀌어 표현된다.
왜 쓰는지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 건 기억이 안 나서가 아니라 내가 아는 것이 부족한 것이다.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고 공부해 봐도 잘 써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는 척과 아는 건 달랐기에 내가 쓴 것을 기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반복해서 읽고 말해 본다. 계속 이어지려고 반복한다. 그러면 될 것 같아 계속한다.
내 머리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내 눈을 통해 들어온 것이었으며 내 입을 통해 내 손을 통해 나올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기가 좋다. 하지만 내 말을 들어줄 상대가 없어 이렇게 적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적은 것이다. 쓰는 것이다.
나를 기록하기 위해 썼던 마음이 이제는 나를 표현하며 쓰는 마음이 되었고 쓰면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나를 드러내고 죽음에게 선물하듯 소중한 삶을 쓰는 마음인 것이다. 어제 했던 것처럼 내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내가 글을 쓰는 마음을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