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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이 마음

(글 쓰는 마음을) 기대는 책

by JinSim



어느 가을날.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천에서 대구로 이사를 했다.

대구는 내가 태어난 곳이지만 유년시절은 거의 인천에서 보냈고 동생도 인천에서 태어났다. 명절이나 아버지의 휴가 때 잠시 들렀던 대구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된 것이다.



대구로 전학 온 첫날,

떨리는 마음으로 3학년 3반 교실에 들어섰는데 교실이 텅 비어있다. 한참을 우두커니 기다린 것 같다. 땀과 먼지 범벅인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오더니 나를 보고는 첫마디가 "아이고~ 욕봤다!"였다. 가을운동회 단체 율동 연습으로 모두 운동장에 있다가 마치고 돌아와서는 혼잣말처럼 뱉은 말이었겠지만, 인천에서 전학 온 나는 초면에 '욕봤다'는 말에 잔뜩 얼어붙어버렸다. 무슨 소리지? 고작 10살짜리 어린아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무서운 말을 뱉어내는 아이들이 좀 무서웠다.


아이들의 말투도 낯설고, 주거환경도 낯설었다.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주택살이는 처음이었다. 심지어 우리 집은 단독주택 2층이었는데 1층 주인집 아주머니가 은근히 잔소리가 많으셨다. 장난꾸러기 동생은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매번 이런저런 이유로 혼나기 일쑤였고, 어머니는 늘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1년 정도 그곳에서 살다가 안 되겠던지 어머니는 집을 알아보시고는 작은 단독주택을 구입해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1년 동안 친한 친구도 사귀고 나름 적응을 잘하고 있었는데, 다시 전학을 하게 되어 다시 적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머니는 외로운 타향살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주변 아주머니들 포섭에 나섰다. 호박범벅을 끓일 때면 커다란 곰솥에 큰 늙은 호박 한통을 다 끓여 큰 대접 가득 담아 이웃집에 배달을 했다. 아버지가 미국 출장길에 사 온 반죽기로 팬케이크를 굽는 날은 계란 한 판을 다 넣은 쟁반만 한 팬케이크를 집집마다 배달했다. 손 큰 어머니는 동네방네 음식 조공을 했고 이웃 아주머니들은 그 쟁반에 각자의 집에 있는 먹거리를 돌려보내주었다. 서울내기 새댁이 생글거리며 "언니언니~" 하며 따르니 아주머니들이 마음을 열었다. 정이 넘치는 동네가 되었다. 어느 순간 우리 집은 늘 사랑방처럼 북적였고, 아버지가 퇴근하기 전까지는 엄마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교 후 집에 돌아와도 엄마는 내게 관심을 갖기보다 눈에만 띄면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켰고, 그런 엄마가 좀 미웠다. 나만의 공간이 전혀 확보되지 않는 것이 어린 마음에 불만으로 쌓여갔다.


어머니는 동네 '핵인싸'였지만, 나는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기 어려웠다. 4학년쯤 되고 보니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혼자 노는 즐거움을 알아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조금 조숙한 초등학생이었나? 마침 우리 집 옆집이 작은 만화방이었다. 사면이 책으로 빼곡하게 둘러싸인 그 공간은 묘하게 퀴퀴하지만 매력적이었다. 만화방은 불량학생들의 아지트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고 몇몇 거뭇한 아저씨들이 좀 무섭긴 했지만, 읽고 싶은 만화책을 옆에 쌓아놓고 책 속으로 빠져들면 무서움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만의 소심한 반항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름 지정석을 정해놓고 그 자리에 누구라도 앉아있으면 되돌아 나오기도 했다.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딸들>, 황미나의 <레드문>... 그 시절 나오는 순정만화는 전부 섭렵했던 것 같다.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쩌면 다들 비슷한 내용 들이었겠지만, 그 아름다운 그림체는 잠시 나도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해 주었다. 천계영의 <언플러그드 보이>, <오디션>은 최애 작품이었다. 신간이 나오면 만화방 사장님이 매일 출근도장 찍는 내게 먼저 알려주기도 했다. 부끄러움이 많은 소녀는 조용히 한구석에서 만화책을 후루룩 읽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 시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어려운 소녀에게 나만의 세계를 마련해 준 작은 만화방.


어쩌면, 그 책들이 외로웠던 나의 기댈 곳이었고, 꿈꾸게 해 주었고, 행복하게 해 주었다.






나의 사춘기 초입을 되돌아본다.

요즘엔 초등학교 4학년만 되면 사춘기 앓이를 시작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고,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부모들은 못마땅하다. 부모의 눈에는 아이들이 어설프고 서툴기만 하다. 한 번도 자의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 일주일 내내 빠듯한 학원스케줄에 엄마와 통화내용은 "엄마, ㅇㅇ 학원 마쳤어, 다음엔 어디로 가야 해?" 그럼, 엄마들은 이제 스케줄정도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며 귀찮아한다. 아이들이 바라는 건 엄마가 따스하게 "수고했다. 수업은 어땠는지, 배고프진 않은지, 열심히 잘했네."일 텐데...

나 때는 그래도 혼자 몰래 만화방도 갈 수 있었구나... 그 시절 엄마는 엄마보다 자기로 사는데 더 몰두했구나. 그것도 그 나름대로 괜찮았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주성을 길러주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아이 키우기> 조안듀랜트

요즈음 내가 기대는 책은 '긍정적으로 아이 키우기'이다.

'부모교육 강사'일을 할 때 좋은 참고 서적이 되어준다. 책 속에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많은 경험과 지식들이 차곡차곡 축적되어 있고, 명료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까지 되어있다. 그 속에 기대어 일을 하고 돈을 번다.


책의 내용에 기대어 타인에게 전달을 하는 역할로 시작한다. 같은 내용의 강의를 반복하지만, 참여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 느낌이 축적되고 강사인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치가 쌓여간다.


쌓인 경험치들을 나만의 글로 남겨본다.

글 속에 나의 마음을 담아본다.

차곡차곡 나만의 이야기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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