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는 책
마중물이라는 말은 나중에야 알았다.
초가삼간에 슬레이트를 얹고 진흙 벽에 시멘트를 발랐으니 근대식 주택이랄 수 있는데 부엌문을 나서면 세로로 외양간이 한 칸 붙어있었으므로 하늘에서 보면 기역자로 생긴 집이었다.
잠에서 깨어 창호지를 바른 격자무늬 방문의 문고리를 내어 밀면 조촐한 마당.
내 시야엔 길게 늘인 지게작대기 같은 바지랑대가 희뿌옇거나 푸르창창한 하늘을 가르던 빨랫줄을 늘 고여 놓고 있었으며 왼쪽으로는 마당과 맞붙은 고동색 흙빛을 띠던 조그만 밭이 채송화, 사루비아, 여린 관목들이 성글게 심겨있는 행렬이랑 경계를 이루었고 그 끝, 마당의 귀퉁이엔 네모난 철제 재떨이처럼 잘 짜인 시멘트 구조물에 수동 펌프 하나가 굳게 박혀있었다.
그 수동펌프는 원래 무쇠에 옅은 녹이 올라탄듯한 검붉은 색이었지만 어느 한 날 아부지가 하늘색 페인트를 칠해 놓아 우리 동네에서는 가장 세련된 색깔을 하게 되었는데 원통형의 몸통 옆에 물이 흘러내리도록 만든 짧고 굵은 코끼리 코가 붙어있고 원래는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불룩하게 수평으로 뚝 잘렸는데 쇠꼬챙이 하나가 원통 가운데서 수직으로 솟아올라 떠꺼머리를 늘어뜨린 듯 팔 벌리고 섰는 펌프 손잡이의 꼭대기에 결합되어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모두들 뽐뿌라고 부르던 이 것은 한 겨울에는 그냥 쳐다보기에도 차갑게 눈을 맞고 얼어붙어 무쇠의 찬 성질을 더욱 승하게 보여주기도 하였으나 봄이 오고 땅이 녹으면 이 펌프는 아부지 엄마가 수시로 즐겨 찾는 것으로 집안 생활과 노동의 근간이 되어 차고 흰 물을 그득그득 빨간 대야에 담아 주던 정다운 것이었으므로, 손잡이를 위아래로 움직이면 저 아래 시꺼멓고 차고 깊은 땅속 어디 바위틈에 흐르는 물을 올려내주었다.
꼭, 주황색 또는 하늘색 바가지에 한가득 물을 떠다가 하늘로 입 벌린 펌프의 머리에 들이부으면 물이 아래로 다 빠지기 전에 손잡이의 상하 운동은 시작되어야 하는 것인데 쇠꼬챙이의 아래쪽은 사발모양의 고무가 물관에 물려있기에 부은 물이 머무르면서 물관과 고무 사이의 작은 틈을 메우고 있을 때 말 그대로 펌프질을 하여 팔 힘으로 물을 뽑아 올리는 것이다.
처음의 저항은 만만치 않아 어른들이 내리누를 때도 체중을 약간 실어야 수월할 정도인데 여기서 만약 펌프를 놓친다면 손잡이가 다시 튕겨 올라오는 반동의 탄력에 얼굴 어디라도 맞을까 조심도 해야 해서 아부지 엄마는 마중물을 넣고 처음 물을 뽑아 올릴 때는 나에게 늘 옆이나 뒤로 물러서라고 말씀하셨었다.
손잡이와 물관에 연결된 쇠꼬챙이의 끽끽거리는 마찰음은 마치 경운기의 시동을 거는 것처럼 느리고 힘겹다가 차츰 빨라지는데 어느 순간 일정한 속도와 리듬으로 걸려 올라오는 묵직한 철제 소음에 물기가 묻기 시작하고 펌프의 윗부분까지 물이 뽑혀 올라오면 그때부터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팔의 리듬에 맞추어 뭉텅뭉텅 코끼리 코로 물을 쏟아놓는다.
나는 그때 수돗가의 시멘트 난간을 밟고 서서 펌프의 열린 수평을 수직으로 내려다보았는데 내렸다 올리는 그 추를 따라서 뭉게뭉게 휘고 돌며 소용돌이치는 지하수 맑은 물을 실컷 보았다.
그리고 보고 또 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깊은 곳으로부터 내게 오는 신비를 느꼈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우리 몸이 물로 되어있음에 기인한 것은 아니었는지... 솟아올라 몸을 채우는 생의 원천에 대한 친근한 경외는 아니었는지.
원천과 원류에 대한 꿈은 꼭 한 바가지의 물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그 물은 메마른 통로와 그 통로를 통해 시원한 물을 흠뻑 머금고 싶은 갈증의 틈을 메워주는 것이고 거기서 생긴 압력과 저항을 활력이라고 바꿔 마음먹게 되면 스스로의 손아귀와 팔뚝에, 어깨에 흥겨운 힘을 주게 된다.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날여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 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응달쪽 외따른 산옆 은뎅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연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같은 봄비 속을 타는듯한 여름 빛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 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 길여났다는 멋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재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아버지가 오는 것 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큰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은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음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이런 시가 내게 불현듯 왔다. 백석의 시였다.
'국수'라는 제목을 설핏 보고 읽기 시작한 시는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말라서 갈라진 논 바닥을 적셔가는 봇도랑의 물처럼, 나의 열려있으나 비어있던 메마른 공간을 마중물로 채워갔으니 잊지는 않았으나 잇지 못했던, 나를 시작했던 흙의 정서와 운문이 가지는 내재율과 말과 글의 아름다움을 퍼올리고 싶다는 강렬한 흥분에 휩싸이게 하였으니 그것은 거슬러 오르려는 것의 회귀 본능이었고 생의 의문을 들춰보려 껌종이 모서리를 손톱으로 긁어 은박을 벗기는 아이의 마음이었고 육체는 쇠락하여 소멸로 가고 있으나 정신은 하루아침에 흩어지지 않는다는 불가지론의 신앙 앞에 무릎 꿇은 자의 기도하는 손 같은 것이었다.
그때는 십여 년 전의 어떤 날들이었고 교과서와 토익과 전공서적의 틈바구니는 이미 지났었고 마케팅과 자기 계발서의 쑥대밭을 건너는 중이었나 보다.
멋진 차, 멋진 차림에 매료되던 시절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거기엔 허영과 왜곡된 의도가 섞여있다는 것도 알아갈 즈음이었나 보다.
나는 목이 말랐으므로 몸 전체가 푸석푸석하였을 것이고 아마 뇌의 크기도 쪼그라들었을 것이라서 누가 하나를 얘기해 주면 그 반도 알아듣지 못하는 시절이었나 보다.
시가 좋아졌다. 시가 좋아지니 다시 글과 책이 좋아졌다.
수분의 공급을 위해서는 내 마음의 공간에 물이 아주 없어지지 않을 정도의 지속적인 독서와 끄적거림의 펌프질이 필요했지만 이제 나는 스스로 주황색이나 하늘색 바가지에 시를 부어 마중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다시 불모의 땅으로 날려가지는 않을 거라는 낙관이 생겼다.
백석의 시들을 계기로 왜 좋은지 모르면서도 시가 좋아졌고 성년이 되기 전에 읽었던 시들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서점의 시집 코너에서 자주 목격되었으며 인터넷의 어느 문학 카페에서 시를 따라 시인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가방 메고 버스 타고 짧은 머리를 하고 옆의 여학교에 관심도 많았던 중고등학생 시절에 읽었던 시들, 국어 선생님은 채찍이라는 시어에 밑줄을 긋고 그 단어는 일제의 강점과 시대의 암울을 뜻하는 것이라고 오지선다를 대비해 주셨었지만 다시 돌아오는 시들은 예전의 모습으로만 오지는 않았고, 새로 오는 시들도 어렵지만은 않았다. 속였고 속았고 순수했으나 때 탔고 욕심을 드러냈다가 감춰본 사람으로서 또는 인생은 대충 이렇고 결혼과 이성은 이렇고 친구는 필요 없다는 근엄한 압축에 수긍해 가던 사람으로서 누구나 지나며 비슷하게 외피가 딱딱해지는 지점에서 이제는 없을 줄 알았던 다시 한번의 탈피를 꿈꾸고 있는 지금.
시는 그렇게 나의 몸과 영혼을 적셨다는 것이다.
마중물로부터 길어온 물은 어느덧 내 삶의 주위를 습윤하고 포근하게 싱그러운 윤기로 감싸게 되었으니 그 물은 이제 수돗가의 난간을 넘쳐 주위에 작은 연못도 이루었나보다.
나는 이렇게 시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