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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메이커 체크인 Dec 21. 2020

독서를 할 수 밖에 없는 곳이네요

보안 스테이 투숙기


한 번 사는 인생, 나도 성공하고 싶다.

항상 궁금했다. 도대체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했길래?


그래서 호텔을 세우기 위해 호텔 리뷰를 하겠다고 맘먹음과 동시에 그들의 생각을 파 해쳐 보기로 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워렌 버핏과 같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부터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우리나라 사람들까지.


그런데 몇 가지 공통점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중 계~속, 끊임없이 나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뭐일까.


바로 '책 읽기'였다.


이왕 책 읽는 거 분위기도 중요할 것 같다.

흔들의자에 앉아 앞뒤로 천천히 몸을 흔들거리며 책을 한 장 한 장 넘긴다. 그러다 살짝 갈증이 날 때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정갈한 찻 잔에 차를 따라 한 입씩 홀짝 거린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창 밖엔 비가 떨어진다.


뭐 책 하나 읽는데 너무 각 잡는 거 아니냐, 배보다 배꼽이냐 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직접' 준비해야 한다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만약 앞서 말한 모든 것들이 모두 갖춰져 있다면?

그냥 몸만 가면 된다면?


여긴 통의동에 위치한 문화 예술공간인 보안여관.
그 안에 있는 '보안스테이'이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9월


한 달에 3권 이상은 읽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동안 나를 살펴보니 1-2권 정도밖에 읽지 못했다. 어떤 달엔 아예 읽지 못한 경우도 있더라. 이 곳에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가방에 넣어두고 간다.


보안 스테이와 가까워질수록 자동차와 사람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시끄러운 소음에서 한 발짝 벗어나 점점 조용해진다. 하늘 높이 솟아 있던 건물은 점점 낮아진다. 경복궁을 애워싸는 담장과 서촌 특유의 고요함만 남아있다.


이때 당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일까. 괜히 더 운치 있는 듯하다.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았지만, 왠지 보안 스테이가 어떤 곳일지 느낌적인 느낌이 온다.


사무실에 막상 자리 주인은 없지만 자리의 책상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적으로 판단이 가능하다. 이처럼 호텔 또한 마찬가지다.


보안 스테이. 왠지 기대된다.


보안 스테이 가는 길




#웅? 이건 뭐여


그렇게 주변을 구경하며 가다 보니 보안 스테이 앞에 도착했다.

1층엔 꽤나 운치 있는 카페가 있다. 우선 짐을 좀 들고 있으니 얼른 체크인부터 하기로 한다. 체크인은 별도로 프런트 데스크에서 진행하지 않는다. 문자로 객실 번호와 객실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려준다. 즉, 카드키를 발급받는 형태가 아니라는 것.

보안스테이 1층 카페


 

난 어쩌면 이게 더 편하다 생각한다. 카드키를 굳이 불편하게 들고 다닐 필요가 없기도 하고, 이거야 말로 언택트 서비스의 시작인가 싶다.


아무튼, 내가 예약한 객실은 보안 스테이에서 가장 넓은 객실인 ROOM 41.


호텔로 치면 펜트하우스 급 객실이다. 4층에 있으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보안 스테이 층별 구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보통은 수많은 객실 문들이 보인다. 하지만 여긴 엘리베티어 기준 왼쪽, 오른쪽 이렇게 딱 2개의 문만 보인다. 당황스럽다.


뭐지.. 뭘까..

왼쪽문의 비밀번호를 치고 문을 연다. 그리고 한 번 더 놀란다.


공용 공간이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이제야 진짜 객실 문이 있다. 박스를 열어도 또 다른 박스가 계속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심지어 여기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저기 동그라미 친 곳이 객실 번호


낯설었다. 예전 하숙집처럼 거실을 다 같이 쓰고 객실에선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형태이다.
기분 나쁜 낯섬이 아니다. 신선하고 새로웠다. 오히려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나 혼자 왔다면 같은 층을 사용하고 있는 모르는 사람과 공용 공간에서 이야기도 해볼 수 있겠구나.


일반 호텔은 본인들 객실로 뿔뿔이 흩어지기 바쁘다. 그래서 옆 객실에 누가 들어와 있는지 조차 알 수도 없고,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설령 복도에서 마주쳤다 한들 괜히 모른 척한다. 하지만 이 곳은 살짝 다르다.


인간미가 묻어 있는 느낌이다. 혹여나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라며 가볍게 인사를 할 수도 있다. 아니면 객실에 있기 답답해서 공용 공간으로 나와 책을 읽다가 옆 객실 사람과 소소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살짝 낭만적인 느낌.

하지만 누군가와 마주치는 것을 선호하지 않거나, 정말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겐 단점으로 작용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보통 우리가 호텔/스테이를 예약할 때 어떻게 되어 있는지 미리 살펴보고 간다. 즉, 이 곳의 공용공간의 존재를 알고도 간다는 것은 이 낯선 경험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게 아닐까.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무색하게,

1번도 옆 객실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다.


아무튼, 이제 진짜 객실로 들어가 보자.




#객실


객실 비밀번호를 치고 문을 연다. 객실을 바라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 정도면 1년에 책 1권 읽을까 말까 한 사람마저 책을 읽고 싶어 할 것이다.
난 다음번에 한 번 더 온다면 그땐 정말 '책'만 가지고 올 거다. 하루 종일 책만 봐야지!
이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다.


이상하게 처음 왔지만 익숙하다.
우리가 호텔을 갈 때 완전히 새로운 공간 안에 들어가는 재미가 있다. 우와! 하면서 구경하는 재미와 평소에 접하기 힘든 공간에서 하루를 살아보는 재미를 뜻한다.


즉,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을 하기 때문에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여행 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보안 스테이는 '비일상적'이지 않다. 보안 스테이는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다는 . 뭐랄까 깔끔하게  놓고 사는 친구의 자취방에  듯한 기분. 분명 난 이 곳에 처음 왔지만 아주 빠르게 스며든다. 이 공간에 말이다. 


보안 스테이 ROOM41의 전체적인 분위기
보안 스테이 ROOM 41
보안 스테이 ROOM41


그렇게 공간에 스며들어 가던 도중 재미난 것을 하나 발견한다.



바로 흔들의자.

일단 흔들의자 자체를 너무 오랜만에 본다. 모던한 디자인으로 빠진 요즘 흔들의자 말고, 정말 아방가르드하게 생긴 흔들의자.


누워서 책을 보자니 정확히 10분 안에 잠들 것 같고, 의자에 앉아서 보자니 허리 아플게 뻔하다.

하지만 흔들의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해답을 주지 않을까. 바로 앉아본다. 천천히 앞 뒤로 움직여 본다. 아 그래 이거다. 확실히 편안하다. 가져온 책을 슬쩍 집어 든다.

 


뭔가 어른이 된 기분이다. 사색에 잠기는 느낌이 이런 느낌인가 싶다. 괜히 목소리도 살짝 낮게 깔아야 할 것 같다. 스스로 무게감이 생긴 것 같은 이 기분. 이 묘한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리고 이때까진 몰랐다.


진짜 여기는 

' 읽기' 진심인 공간이구나 라는 것을.


아래의 사진을 보자.


창문에 걸터앉아 차 한잔 할 수밖에 없다


창문과 무쇠 주전자

이건 말 다 했다. 때마침 이때가 여름 장마 시즌이었다. 역시나 창 밖에 비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창 문 바로 앞엔 걸터앉을 수 있다. 이건 나의 추측이 아니다. 왜냐하면 방석까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여기에 앉아서 책을 보세요' 라며 나에게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엔,


무쇠 주전자가 있다. 참 기가 막히다. 창 문 앞에 어떻게 이 무쇠 주전자를 갖다 놓을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뭘 좀 아는 사람이 이 공간을 설계한 듯하다. 현대식 커피포트 보다 몇 배는 어울린다. (물론 커피포트도 따로 구비되어 있긴 함)



묵직한 바위(?!)에 감싸진 전기 코일 위에 올려진 주전자. 이거 사용할 수 있긴 한 걸까? 하고 묵직한 바위의 콘센트를 플러그에 꽂아본다. 오. 작동이 잘 된다.


코일이 점점 빨개지더니 금방 열이 오른다.

이 곳은 빠르게 내려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단 천천히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깊어지는 '차'가 어울린다.


난 1일 2 커피 아니면 안 되는 편이지만, 이 날만큼은 차를 마시기로 한다. 왜냐하면 차를 마실 수밖에 없는 찻 잔까지 세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찻잔 예사롭지 않다. 알고 보니 보안 스테이 설명에 의하면 연파 신현철 선생님의 작품이라 한다. 이분은 40년 가까지 도예의 길을 걸어오신 '명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귀한 잔에 차를 따라 마실 수 있다니. 살짝 손 떨리 긴 하지만 색다른 경험이다.


보안 스테이 찻잔 디테일


이렇듯 보안 스테이의 색깔이 점점 뚜렷해지는 이유는 공간의 규모, 화려한 디자인, 특이한 컨셉 때문이 아니다.


이 공간과 어울리는 작은 디테일들이 하나둘씩 모여 공간의 밀도를 높여준다.


그리고 이번엔 조금 큰 디테일이 있었다.



커다란 나무 책상

사실 객실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이 책상부터 눈에 들어온다. 나무를 반으로 갈라서 그대로 들고 온 듯한 느낌이다. 전통 찻집에 가면 볼 수 있을 법한 분위기이다. 올드한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이 책상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 여긴 이게 어울리지'라며 말이다.



이 객실 안에 놓여있는 모든 사물들이 같은 '톤'을 유지하고 있다.
그 덕에 공간의 색이 더욱 짙어지고 뚜렷해졌다. 오랜 시간을 들여 가공을 해야 하는 자연 소재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는 점이 인상 깊다.


만약 이 공간이 콘크리트와 대리석과 같은 도시적이고 인공적인 소재들을 활용했다면 과연 이런 분위기를 낼 수 있었을까.

 

'이 곳에서 책을 읽으세요'라는 문구 하나 없지만,
이 곳은 '책 읽다 가셔라'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간이 나서 책을 꺼내는 날도 있지만

시간을 내서 책을 꺼내는 날도 있다.


이 곳에선 뭐가 되었든 상관없다. 앞서 말했 듯 독서를 하기 위한 환경은 모두 갖춰졌다.

몸과 책만 오면 된다. 아니다. 하다못해 책도 없어도 된다. 보안 스테이 2층에 서점이 있기 때문이다.


보안 스테이 2층엔 이런 서점이 있습니다!






이들만의 표현 방식에 스며들던 도중 캡슐커피를 발견한다. 차를 끓여 마시는 것보다 커피를 한 잔 하고 싶은 사람들까지 고려한 듯하다.

그런데 잠깐.

캡슐 커피 머신이 객실 안에 없는데??




#깜짝 놀란 공간 : 공용 주방


세상에.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이다.

이런 공간이 있는 줄은 몰랐다.


애초에 호텔을 갈 때 온몸으로 온전하게 느끼고 싶어 사전조사를 하지 않고 가는 편이다. 그래서 아마 이 공간을 보고 더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공용 주방.

공용 거실에 이어 이들은 공용 주방의 개념을 스테이 안에 녹여놨다. 어쩌면 이 곳은 게스트하우스 같기도 하면서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호텔 같기도 하다.


뭐라 한 단어로 정의를 내려버리는 것은 이 공간의 다양한 매력들을 가두는 느낌이다.


보안 스테이 공용 주방


공용 주방엔 온갖 식기류들과 싱크대, 원형 테이블과 의자, 조리기구 그리고 토스트기까지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캡슐 커피 머신까지.


화이트톤으로 맞춰진 이 공간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괜히 설렌다. 보안 스테이에서 투숙하는 또 다른 누군가를 마주쳐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설렘. 혹은 가볍게 인사 정도 주고받는 인간미 넘치는 분위기.(물론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급적이면 마주치지 않는게 좋지만)


'나는 수줍음이 많아서 낯선 사람과 부딪히는거 별론데' 할 수 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모두 존중하기로 하자.


공용 주방 바로 뒤엔 야외 테라스까지. 비가 와서 못 나감


하지만 이 주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주방 분위기에 매료되어 여기저기 구경하다 뒤를 돌아섰다. 그리고 이 공간의 핵심을 찾을 수 있었다.


야외 테라스가 있다.


코로나 이전엔 이 곳에서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파티들이 열렸을까 상상을 해본다. 게스트 하우스에 가면 모르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다. 낯선 사람에게서 얻는 영감도 꽤 신선하다. 가끔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보다 더 편할 때도 있다.


이 곳에선 낯선 사람과 저녁 요리를 함께 해가며 야외 테라스로 나와 맥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다. 생각만 해도 느껴지는 그 설렘과 머릿속에 그려지는 낭만.


야외 테라스를 보니까 과거의 활기찼을 법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현재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문을 닫고 나간다. 하루빨리 과거의 '당연했던' 것들을 다시 되찾을 수 있길 바라며.




#기계를 잠시 내려놓는다는 것


보안 스테이에서 느낀게 있다.

'우린 정말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


어두컴컴하고 퀭한 분위기보단 창 밖을 훤히 볼 수 있게 창문이 크게 뚫려 있고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는 곳에서 일을 더 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 일이 더 잘 되는 기분마저 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밥을 먹더라도 이왕이면 공간이 잘 되어 있는 곳에 가면 음식이 더 맛있고 청결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처럼 우린 공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호텔 또한 마찬가지이다. 호텔마다 '투숙객들이 이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것들이 모두 다르다. 이를테면 완전 '자연 속 휴식'에 집중한 호텔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비즈니스', 또 다른 곳은 '액티비티'에 집중한 곳이 있다. 

보안스테이 전체 사진


보안 스테이는 '독서와 사색' 이 어울린다. 
때마침 위치도 느린 마을이라 불리는 '서촌'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는 빠른 행위가 아니다 (다독가의 경우 제외). 천천히 시간 여유를 가지고 한 줄 한 줄, 한 단어 한 단어를 느낀다. 영감을 받기도 하고,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됐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고 행복해한다.


그래서일까. 책과 서촌은 묘하게 잘 어울린다. '빠름'을 추구했던 문명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도 좋다. 손바닥 안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자. 적어도 보안 스테이 안에서 만큼은.

느리게 그리고 천천히 행동해보면 어떨까.


오케이. 

그러면 객실에 들어와서 1시간 동안 

열심히 사진, 영상 다 찍고 인스타에 올리기까지 하고 


폰은 잠시 가방 속에 넣어두자.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독서의 몰입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바로 그때,

비로소 보안 스테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 보안 스테이의 비하인드 스토리


이 곳은 1942년부터 2005년까지  '보안 여관'으로 운영이 되었다. 보안 스테이에 의하면 실제로 '서정주, 김동리 등의 문인들이 ‘시인부락’이라는 문학동인지를 만든 한국문학의 산실이었다.'라고 한다.


그래서 더욱 '책' 이 떠오르는 곳이 었을까.

다시 한번 더 되뇌어 본다.

보안 스테이 ROOM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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