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만들고 의뢰가 들어왔다!
'혹시 제안서 한 번 보내주실 수 있나요?'
두근두근. '오늘 한 잔, 고?' 다음으로 설레는 말 입니다. 그리고 1주일 뒤. 이메일 전송 버튼 클릭. 그리고 나서 결국...
사실 이 때만 해도 브랜딩 회사 '파도엔시멘트'의 이름을 막 짓던 시기였습니다. 앞전의 글을 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취향은 다르지만 성향은 같은 두 명이 모여 양끼 가득한 기획을 전개하는 브랜딩 회사를 만들게 된 사실을.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결국 회사를 차림과 동시에 5성 호텔과 손을 잡게 되었습니다. 근데 재밌는 이야기는 결과 보다 '과정' 이겠지요.
대체 어떻게, 그리고 어떤 일을 해서 뭘 했는지 그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무언가를 기획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작게나마 영감이 되길, 브랜딩과 마케팅을 좋아하는 분들껜 흥미로운 시간이 되길 바라며 키보드 위에서 왈츠 한 번 춰보겠습니다.
때는 2024년. 다른 업무 때문에 강릉의 5성 호텔, 씨마크 호텔에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간 국내외 200여군데의 호텔을 돌아다녔지만 이 곳을 안와봤네요. 파도와 함께 이 곳에 투숙하면서 살짝 놀랐습니다.
솔직히 이름만 들었을 때 저는 '오래된 곳' 정도로만 생각이 그쳤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아니었습니다.
건축물부터 멋있는 호텔은 국내에 몇 안되는데 우선 유명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가 설계한 건축이더군요. 외관부터 멋들어집니다. 공간 안으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오리지널 가구들이 놓여있더군요.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공간인데 값비싼 오리지널 가구들이 툭툭 놓여있는 이 낭만. 뿐만 아닙니다.
사우나에는 바닷바람 맞으면서 외기욕을 즐길 수 있는 공간부터,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는 인피니티 풀장까지. 여기에 수영장에서 사우나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전용 엘리베이터 등등. 자본과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이었습니다. 아주 귀한 곳이죠.
거기에 호안재라고 해서 귀빈들을 모셨던 한옥 호텔까지 아주 '오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아니 근데 난 왜 여기를 '오래된 곳' 정도로만 생각했을까. (물론 저만 그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을 해보았죠. 공식 웹사이트와, 공식 인스타그램이 나오더군요. 클릭.
오마이갓. 웹사이트는 반응형이 아닌 모바일용, PC용으로 따로 분리가 되어있었고 예약하는 경험마저 옛날 방식이었죠. 약간 과정 보태면 유니텔 느낌.. (유니텔 알아들은 사람은 나이 대충 나옵니다) 좀 놀랐습니다. 그럼 인스타그램은 어땠을까.
지쟈스... 약간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겁나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꾸미는 법을 몰라 그 매력이 감춰진 상태. 뭔가 옆에서 자꾸 뭐라고 하니, 남들이 하는 방식으로 옷을 입어보았지만 썩 어울리지 않는 느낌.
호텔과 브랜드를 사랑하는 파도앤시멘트 입장에선 통탄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뭐 어쩌겠어요... 우리와 연관된 곳도 아닌데 이래라 저래라 말 하는 것도 웃기죠.
그래서 우리끼리 이랬습니다.
"야 우리라면 이거 이렇게 하고, 저렇게 요롷게 해서 브랜드 이미지 싹 바꿨을텐데ㅋㅋ 아쉽네. 다음에 기회 되면 제안서나 한 번 넣어보자'
다음 날. 체크아웃 시간. 잠시 업무 볼게 있어서 라운지에 앉아 노트북을 하고 있었습니다. 슬슬 배가 고파서 초당순두부 하나 싹 말아먹고 서울로 복귀하려던 찰나, 씨마크 호텔 마케팅 팀장님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죠. '어라..? 이렇게 풀린다고?'
팀장님께선 시멘트가 '호텔 체크인 계정'을 운영하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터라 가볍게 인사 나누고 속으론 '에이 그래 뭔 제안이야. 인사만 드리고 가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팠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팀장님의 고민토로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1시간 반 정도.
요지는 이렇습니다.
'씨마크 호텔에 와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좋다고 하는데, 온라인상에선 그게 안담겨서 고민이다.'
그렇게 파도와 시멘트의 눈빛은 빠르게 슥슥 지나갔고, 이 때다 싶어 어제 나눴던 이야기를 쭉 들려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온 말이 바로 '혹시 제안서 한 번 보내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그리고 우린 다짐했습니다. 오프라인 공간으로 넘어오기 전, 고객들이 가장 먼저 브랜드를 접하는 곳이 '온라인'인 만큼, 온라인에서 비춰지는 브랜드 이미지를 다시 바꿔놓겠다는 다짐.
지금부터가 중요하니 유튜브로 넘어가지 마세요...
서울로 복귀. 얼마 지나지 않아 넘어온 씨마크 호텔 브랜드 자료들. 24년 당시, 이 브랜드는 10살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가장 먼저 한 일. 약 10년 전, 이 브랜드를 처음 만들 때 작성된 브랜드 기획 문서를 뜯어보는 것. 이유는 간단합니다. 보통 거기에 브랜드의 척추가 숨어 있기 때문이죠.
사람으로 치면 이 일을 왜 하게 되었고 어떻게 하고 싶었으며 무엇을 만들고 싶었는가와 비슷합니다. 다만 세월이 지나면서 바쁘게 실무를 보다보니 잠시 잊혀져 갔던 것일 뿐.
그래서 새롭게 무언가를 창조해내기 보단 그간 얽힌 실타래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핵심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문서에서 힌트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핵심 내용을 간추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진정한 쉼이 있는 곳. '절대 휴식'을 통해 자기 회복을 할 수 있는 곳. 더이상 상대와의 비교우위에서 상대적 가치에 행복의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만족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느끼는 행복. 자신을 돌아보는 시각으로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자연 속에 존재하는 자신을 스스로 확인하는 '회복'의 공간 ]
이 뿐만이 아닙니다.
[ 단순한 형태, 뉴트럴 톤의 색상, 자연적인 질감의 소재, 최대한 자연채광으로 다스려지는 실내, 자연 그대로. 지역과 함께 ] 라는 말도 있었죠. 10년 전에 기록된 자료 입니다.
위의 문장들에 씨마크 호텔의 본질이 그대로 담겨있었지요.
단순히 멋진 모습만을 나열하기보다 이들이 추구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 것들이 쌓여야 '나도 저기 가고 싶다' 라는 느낌을 전달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세상에 멋진 공간을 갖춘 곳은 많거든요. 저희가 중점적으로 보았던 것은 '가고 싶다는 그 느낌' 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브랜드가 추구했던 모습'과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야 수 많은 호텔들 사이에서 '차별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아, 하나 더 있네요.
각잡고 멋지게 찍은 사진보단 살짝 힘을 빼고, 자연스러운 사진들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게 좀 더 뉴트럴하고 따뜻하잖아요. 삐까뻔쩍보단 묘하게 느껴지는 정겨움을 공략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사람이 사람을 볼 때 더 눈길이 가는 것 처럼 말이죠. 그리고 사람이 나오면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눈코 뜰새 없이 제안서를 와다다 작성하고 다시 메일 전송 클릭.
그렇게 몇 차례 미팅 자리를 가지고 결국...인감 날인. 계약 완료.
업무 범위는 웹사이트는 우선 예산 이슈로 보류하고, 인스타그램부터 개편하는 걸로. 자, 이제 제안서대로 실행을 옮기는게 중요하겠지요?
브랜드의 소셜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할까요. '나 맛져!'를 보여주는 수단이 되기도, '우리 이런거 했다 짱이지?'를 이야기하는 수단이기도, '이거 만들었으니까 사!'라며 홍보를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다 맞아요. 결정적인건 소셜 미디어에서 프로필 링크로 전환을 시키는 것이지 않을까요.
멋진거 잔뜩 보고 거기서 끝나면 너무 아쉽습니다. 팔로우 안해도 괜찮으니 '오 나도 가볼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서 웹사이트까지 넘겨줘야 합니다. 씨마크 호텔 또한 마찬가지. 브랜드의 인스타그램은 하나의 작은 메뉴판이란 생각으로 접근했습니다.
우선 프로필 영역.
'더보기' 버튼이 뜨지 않는 '3줄' 안에 표현해야 합니다.
여긴 뭐하는 곳이며, 어떤 것을 중점으로 밀고 있는지. 한 방에 알 수 있어야 하죠. 뭐 거창한 말론 '첫인상'이라고 하지만, 가장 맨 위에 있기도 하니까 여기를 잘 써두는게 좋겠죠?
씨마크 호텔의 경우는 어떤 경험을 주고 싶은지와 프로필 링크 클릭을 이끌기 위한 문구를 넣었습니다. 문구는 시즌에 맞게 바뀌기도 해요. 새해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도로.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호텔이 저런 문구 하나로 부드러워질 수도 있으니.
다음 하이라이트.
이건 사실 간단하죠. 모아놓고 싶은 정보들을 카테고리화 해서 정리하면 됩니다. 단, 브랜드 계정인만큼 '고객이 모아서 보고 싶어할 정보'가 되어야겠지요. 숙소 쪽은 비슷합니다. 시설, 행사/이벤트, 주차여부, 자주묻는 질문, 리뷰 등.
여기서 더 나아가면 브랜드의 무드를 보여줄 수도, 현장에서 불철주야 발로 뛰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여줘서 신뢰도를 높일 수도, 근처 맛집 정보를 모아둘 수도 있죠. 물어보면 다 알려주는 컨시어지 역할이라고 보면 쉽겠네요.
다음 콘텐츠.
앞서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몇가지 키워드를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자연, 회복, 자연적인 질감, 우아함, 뉴트럴 톤]
이 키워드에서 벗어나지 않는선에서 이 호텔에서 담을 수 있는 '공간', '프로모션', '사람', '자연' 위주로 담기로 했습니다. 촬영은 모두 파도엔시멘트가 직접.
예산상 유료광고와 인플루언서 초청 그리고 팔로워 대상 이벤트를 할 수 없었습니다. 순전히 콘텐츠로만 밀고가야 했던 열악한 상황이었죠. 그렇게 4계절이 지난 지금.
이렇게만 보면 갑자기 팍! 하고 올라간것 같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3개월간은 쏟아붓는 기간이었고, 그 다음 성수기 시즌인 여름에는 자연스럽게 올라가다가, 예상치 못하게 강릉 가뭄사태가 발생하면서 핵심 시설인 수영장,사우나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죠.
이 위기 상황 때 콘텐츠 방향을 틀어서 '씨마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조명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콘텐츠의 목적은 '그만큼 우리는 진심을 다한다'를 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때 반응이 좋았습니다. 정기 콘텐츠로 확정짓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글 길어질까봐 쓰진 못했지만 별의별 일이 다 있었습니다. 그래도 1년 넘게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겼네요. 그리고 여전히 파도엔씨멘트는 씨마크 호텔의 소셜 미디어 이미지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때론 새로움보단 기존의 것을 정리할 때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한 줄만 기억하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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