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형 인간 15 -글을 끝내며-
어떤 아침을 맞고 싶은가?
에서부터 내 삶에 의문을 던지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야하는 곳을 생각만해도 괴로워서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 아침에 너무나 일어나고 싶을 정도로 설레는 그런 장소로 출근하고 싶었다. 그것이 꿈이었다. 그런 곳은 어떤 곳일지 마음 속으로 그려 보곤 했다.
20대 초반 대학생활을 마치고 그 무렵 모두 동기들은 취직준비를 했고 나름대로 이름 댈 수 있는 회사에 취직하는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취직을 할 때 나는 다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적성을 찾아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다.
[우주소년 아톰]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 [데츠카 오사무]는 나의 우상이었다. 사학을 전공했지만 애니매이션 관련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데츠카 오사무의 책 중에 [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라는 책은 제목만으로도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야할 나이에 나는 다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했다. 하지만 막막했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바로 내 인생을 여전히 혼란스럽게 한다는 피해의식도 몰려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 찾게 만든 입시위주의 교육제도 말이다. 막연한 학자의 꿈을 꾸며 진로를 결정했는데 나는 전혀 그런 성향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야 깨달은 것도 딜레마였다.
고민 끝에 졸업 한 학기를 남겨둔 채 휴학 신청을 하고 어릴 적에 화가의 꿈을 떠올리며 그림과 웹디자인을 함께 배울 수 있는 디자인학원에 등록했다. 거의 1년 되는 과정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 IT회사에서 재택근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동안 해왔던 카페 서빙이나 옷가게 판매 알바보다는 수익도 쏠쏠하고 적성에도 맞았다. 나름대로 인문학과의 과제를 하며 쌓은 보고서나 글쓰며 쌓은 실력이 IT회사의 콘텐츠를 만들어 입력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기자가 되거나 스토리텔러가 될 거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은 쉬운 듯 쉽지 않았다. 우선 마음이 쫓겼다.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취직해서 경력을 쌓아 가는데 나는 계속해서 엉뚱한 곳에 가서 삽질하는 기분이었다. 대학교 졸업장이 무색할 만큼 열정페이를 받으며 벤처회사나 중소기업을 전전했다. 배운 웹디자인 기술을 써먹자니 대학 졸업장이 소용없고 대학 졸업 학력을 인정해주기엔 그럴 만한 중소기업이 없었던 애매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웹기획을 배웠고 캐나다를 갈 기회를 얻어 1년간 혹독한 해외 생활을 경험했다. 그 기업들은 나에게 혹독하게 일을 시켰는데 20대 중후반 한국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정신과 건강이 모두 피폐해져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돈 버는 일을 찾아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금융권 직업을 얻어 2년간 생활했는데 정신적으로 항상 괴로웠다.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지 고통스럽기만 했다.
온 몸에 힘이 빠진 채 모든 의욕이 상실됐다. 어느 날 방에 누워 천정을 바라봤다.
‘나와 안 맞는 일을 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 차라리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며 고통받자.’ 회사를 그만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거창한 것 말고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했다. 정신과 건강이 피폐해져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일 죽는다면 그래도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참 우스운 이야기인데 영국 영어를 배우고 싶었다. 영국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학원비를 위해서 파트타임 알바를 했다. 영어 과정이 어느 정도 끝날 무렵 중국어를 배우고 싶었고 영어 과정이 완전히 끝난 뒤에는 일본어까지 병행했다.
그렇게 20대 후반을 보냈다. 그리고 글로벌 감각이 필요한 어떤 유통 전문지에 취재기자로 취업했다. 30대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실컷 써먹으며 해외를 오가는 취재기자 생활을 했다.다국어를 구사하고 해외 출장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일은 매력이 있었다. 부러움과 질투를 사기도 했다. 혹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항상 무엇인가 배우고 싶은 의욕이 가득한 것은 있었지만 남들보다 느리게 습득했고 무엇인가 어설펐다. 특히 영어는 발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래서 그냥 잉글리시가 아니라 콩글리시를 잘 하자고 부족한 점은 인정했다. 발음이 부족하다고 영어를 포기했던 소심한 학창시절을 떠올르며 이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만 하며 미래가 불안한 가운데 나처럼 일본어를 배우는 후배들이 있었다. 그들은 항상 이런 의문을 품었다.
‘이렇게 일본어 배워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취직 될까요? 막상 일본어 찾는 회사 별로 없던데. 그리고 국내 학원만 다니는게 아니라 일본에서도 좀 더 살다 와야 경력이 되지 않을까요.’
그럴 때마다 학원의 일본인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배운 것은 항상 써먹게 되어있다고. 지금은 당장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무엇인가 배우고 실력을 쌓다보면 기회가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배움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하며 아침 점심 버스 안에서는 어학 테이프를 꼭 귀에 꽂고 다니며 열심히 배웠다. 내가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외국어를 써먹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30대 내내 기자 생활을 하며 일본어 기사를 번역하거나 일본 식품 박람회를 취재하거나 실컷 써먹게 될지 그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다. 일본 기관과 협력하기도 하고 맛집 투어를 가도 배운 일본어를 실컷 써먹었다. 부족한 듯해도 일본인 친구들과 채팅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지금 무엇인가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 특히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 불안감은 극에 달할지 모른다. 나는 일단 뛰어들어서 저지르고 보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궤도를 수정하며 30대에는 어느 정도 내 적성에 맞는 카테고리로 들어왔다. 30대 후반은 그렇게 해온 직장을 나와 새로운 40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헤맨 나의 여정이 어떤 그림으로 종합되어 최종 모습이 어떨지는 아직 모른다. 아직도 조각을 만들어가는 중이고 조각조각이 모여 모자이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적성을 일찍 발견해 일찍 시작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나는 너무 느리게 돌아온 거 같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하지만 비교는 금물이다. 근데 모자이크형 인간이 좋은 것은 시간이 갈수록 나만의 조각이 만든 나만의 길은 그 누구와도 비교가 될 수 없는 나만의 세계가 된다는 것이다. ‘특이하다’라고 불리기도 하는 모자이크형 인간들은 그 특이함으로 차별화되고 차별화되어 가치가 있다. 그 가치 덕분에 오히려 빨리가는 듯 보였던 그들과 달리 나만의 가치를 가지고 조금 느긋해질 수 있는 틈이 있다. 그것이 모자이크형 인간에게 주어지는 팁인지도 모른다. 이 글에 공감이 가는 사람이라면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것을 지금 당장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이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사소한 것이 모여 거창한 꿈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모자이크형 인간을 마무리하다보니 새로운 주제가 떠오릅니다.
다음 시리즈는 이런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모자이크형 인간이 갖는 팁!
1. 마음이 원하는 대로 가서 그것이 실현되는 것을 모는 희열
2. 사소한 도전을 성공시키는 보람이 쌓여 큰 보람
3.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내공이 쌓여 점점 느긋해지는 자신감
등등
by asi